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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THE 송강호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송강호를 생각해본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장면을 별것인 것처럼 만드는 리듬의 조율사, 작품에 끼어있는 전형성을 비틀어 독창성을 부여하는 승부사, 감독들로 하여금 “매 테이크마다 연기가 다른데 그 장면들이 편집에서 기가 막히게 다 붙는다”는 찬사를 이끌어낸 연기 귀신, 1억 명의 관객을 울리고 웃긴 신뢰의 아이콘.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 ‘넘버.3’(1997)를 통해 충무로에 길이 남을 레전드 장면을 남기며 본격 등판한 송강호는 이제 한국영화의 능선을 관통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그런 송강호가 지닌 재능과 그를 향한 대중의 신뢰가 만나, 여전히 괄호로 남겨진 5.18이라는 구불구불한 길을 함께 동승해 나가는 작품이다. 역사 앞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택시운전사 만섭의 딜레마는 송강호라는 질감을 통과하며 풍부해진다. 송강호가 품은 회한과 연민과 고뇌의 표정은 ‘택시운전사’의 엔진인 셈이다.

Q. 가슴에 달고 계신 택시운전사 브로치가 잘 어울리시네요.(웃음)
송강호:
색감도 그렇고 너무 귀엽죠? 1973년식 기아차 ‘브리사’라는 기종입니다. 그 택시를 어렵게 구했어요. 단종 된 녀석이라 일본 중고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서 돈을 많이 주고 가져왔죠. 수리에도 돈이 꽤 들어갔을 거예요. 촬영 후 클래식 카를 수집하는 금호상사에서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Q. 당시 ‘브리사’와 양대산맥을 이뤘던 게 ‘포니’죠?
송강호:
맞아요. 태술(유해진)이 타는 택시가 1976년식 포니죠. 당시 차들 대부분이 실내가 참 좁아요. 지금 우리 몸집이 커져서 더 작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네요.

택시협회 홍보대사로 위촉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송강호:
하…전혀, 아직까지는.(웃음)

# ‘어떻게 잘 할 것인가’→‘무엇을 말할 것인가’

Q. 최근 ‘관상’(2013)을 시작으로 ‘변호인’(2013) ‘사도’(2015) ‘밀정’(2016) ‘택시운전사’까지. 시대물에 연이어 출연하고 계십니다.
송강호:
일부러 시대물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한국 영화계도 시류가 좀 있는 것 같아요. 한때는 현대물이 거의 90%를 차지했죠. 현대물 소재가 고갈되면서 사극으로 갔다가 지금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이 많이 제작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시대물 출연이 많아진 것이지, 딱히 선호하는 건 아닙니다. 각각의 정점들이 있어요. 시대물이 원초적 매력을 지녔다면, 현대물에는 지금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이 있죠.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충무로의 많은 시나리오들이 당신에게 향하는 것으로 압니다. 하나의 장르가 잘되면 우르르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아쉬움은 없으신지요.
송강호:
그런 분위기가 분명 있기는 하죠. 그런데, 뭐. 아쉽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Q. ‘변호인’과 ‘택시운전사’ 모두 이전 정부 당시 제작된 영화입니다. 그로인해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는데요.
송강호:
제가 어떤 정치적인 의식이 뚜렷하다든지, 남들보다 사회적 소양이 더 특별해서 그런 작품들을 선택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럼에도 저만의 기준은 있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떻게 잘 할 것인가’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염두에 두는 건 ‘그럼 무엇을 말할 것인가’고요. ‘변호인’이든 ‘택시운전사’든 일련의 선택들은 정치적 성향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배우로서의 기본적인 의식에서 출발한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Q. ‘택시운전사’는 어떤 의식의 출발이었나요. 처음엔 출연 제안을 고사했던 것으로 압니다.
송강호:
고사라기보다는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제가 과연 이 거대한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있었죠. 제가 사실 충무로에서 대답을 가장 빨리 해주는 배우예요. 매니저가 너무 빨리 대답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느냐고 할 정도죠.

Q. 하하. ‘가오’ 때문일까요?
송강호:
‘가오’라기보다는…허허허.(웃음) 그런데 저는 그게 안 돼요. 성격이 급한 것도 있지만, 그게 제작자와 감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거든요. “잠시 생각해 보겠다”고 하는 분들도 많긴 한데 저는 그것도 힘듭니다. “가타부타가 있어서 잠시 생각해 보겠다”는 건, 제게 있어 100% 하겠다는 의미거든요. 기다리게 해놓고 차마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쩝.(일동웃음) 그래서 처음엔 정중하게 거절을 한 거죠.

Q. 수락보다 거절이 더 힘들잖아요?
송강호:
힘들죠. 그래서 빨리해요.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웃음) 거절의 경우 미안해서라도 빨리 드리는 편이죠.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작품 수락도 그렇겠지만, 거절하는 작품에도 기준이 있으실 텐데요.
송강호:
제안 받을 때 제 마음의 문이 열려 있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작품이 이야기 하는 지향점이나 여러 부수적인 이유들도 작용하고요. ‘택시운전사’의 경우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고 느꼈던 감정들이 점점 생생하게 다가오더군요. ‘변호인’도 그랬어요. 그래서 다시 하겠다고 한 거죠.

Q. 영화 초반과 후반, 만섭이라는 인물은 완전히 달라져 있어요. 그런 캐릭터의 다채로운 변화도 ‘택시운전사’에 끌린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송강호:
솔직히 말씀드리면 ‘택시운전사’의 경우, 캐릭터의 매력보다는 영화가 지니고 있는 깊이감과 무게감에 더 끌렸어요. 물론 평범한 사람이 진실을 목도하고 변화하는 것도 매력적이죠. 하지만 ‘택시운전사’는 작품이 지닌 결들이 더 크게 와 닿았어요.

Q. 결국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깊이감이라 함은 소재일 텐데요. ‘광주의 아픈 그 날’ 말이죠.
송강호:
소재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시선’이기도 하죠. 우리가 80년 광주를 이야기할 때, ‘아픈 비극의 현대사를 기억하자! 잊지 말자!’고 이야기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죠. 다만 40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80년대 광주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새롭게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그동안 광주를 소재로 한 숱한 영화와 문학작품들이 있었지만 ‘택시운전사’는 조금 차별화 됐으면 했어요. 제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이와 연관이 있죠.

Q. 말씀하신 희망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군요.
송강호:
광주 민주화운동은 물론, 1987년 6·10 민주 항쟁 그리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촛불집회 등은 아픈 역사, 잘못된 역사를 시민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희망을 외쳤나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택시운전사’의 만섭은 거창한 정치적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소시민이죠. 이런 사람들이 결국 역사를 바꾸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전 ‘희망’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Q. 언론시사회 때 ‘부채감’이라는 단어를 쓰셨어요. 개인적으로 ‘변호인’의 엄청난 흥행엔 국민들의 부채의식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택시운전사’에도 그런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송강호:
‘변호인’의 경우, 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영화에 분명 반영됐을 거예요. 반면 ‘택시운전사’에는 전 국민이 5월 광주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미안함과 고마움의 부채의식이 있죠. 안타깝게 희생된 분들의 그 정신이 지금을 살아가는 밑바탕이 됐으니까요.

# 봉준호-송강호 VS 박찬욱-송강호 VS 김지운-송강호

Q. 시나리오를 제외하고, 작품을 선택할 때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판단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송강호: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하긴 한데요, 그걸 제외한다면 아무래도 감독이 아닐까요? 감독의 명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저에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Q. 그래서 묻고 싶네요. 그동안 봉준호-박찬욱-김지운 감독님의 여러 작품들을 함께 하셨습니다. 봉준호-송강호 VS 박찬욱-송강호 VS 김지운-송강호, 이 관계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은데요, 세 분 감독님과의 작업은 많이 다른가요?
송강호:
다르죠. 궁극적인 소통에 있어서는 비슷하지만 그 분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인으로서의 빛깔이 굉장히 다르기에 작품도 매번 다릅니다. 달라서 재미도 있고, 어렵기도 하죠. 책임감과 부담감도 느낍니다. 이 감독님과는 잘했는데, 이 감독님과는 못할 수 없잖아요? 공평하게 잘 해야죠.(일동웃음)

Q. 뭐라고 해야 할까요. ‘밀당’이라는 단어가 조금 그렇긴 한데, 세분 중 티격태격하면서 작업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경우도 있는지요.
송강호:
하하하. 아뇨. ‘밀당’은 딱히 없어요. 다들 20년 이상 관계를 이어온 분들입니다. 대 감독이기도 하고 선배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죠. 오랜 세월 작업을 해 왔지만 이 분들과의 소통은 늘 즐거워요.

Q.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세 분 모두 자신들만의 세계를 일군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죠. 가까이에서 지켜 봐 온 입장에서, 그런 자리에 오르는 감독들의 공통점이랄까. 그럴 게 있을까요?
송강호:
감독으로서의 재능, 예술가로서의 재능. 분명 있으시죠. 그걸 차치하고라도, 세 분이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나 지향점들이 지금의 위치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세상에 바라보는 어떤 시선이랄까요. 어떤 일에 대해 부단히 고민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느꼈죠. 그에 비하면 저는 뭐~(웃음)

Q. 세 분이 이번 ‘택시운전사’ 촬영에도 많은 응원을 보냈다고요.
송강호:
박찬욱 감독님은 촬영장에 한 번 다녀가셨어요. 봉준호-김지운 감독님은 바빠서 전화로 응원을 해 주셨고요. 작년 여름, 다들 아시겠지만 찜통이었잖아요? 박 감독님이 하필 가장 더울 때 오셔서 고생을 하셨죠. 토마스 크레취만이 마침 박찬욱 감독님 팬이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맥주타임을 가졌던 기억이 나네요.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박찬욱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토마스 크레취만이 울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웃음) 당시 상황이 궁금하군요.
송강호:
하하하. 토마스 크레취만 하면 대표작이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2002)잖아요? 대화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었죠. 흥미롭게도 박 감독님이 로만 폴란스키와 인연이 있으시더라고요. ‘올드보이’(2003)로 칸에 가셨을 때, 시상식 전 날 산책을 하다가 로만 폴란스키를 만나셨대요. 그때 폴란스키 감독이 “행운을 빈다”고 덕담을 해 주셨다네요? 박 감독님은 또 너무 존경하는 분이 덕담을 해 주니까, 좋으셨나 봐요. 실제 수상 소감도 그 에피소드로 시작하셨어요. 수상 첫마디가 “어제 존경하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을 만나서 격려를 받았다.”였죠. 그 얘길 하니까 토마스가 울더라고요.(일동웃음) 폴란스키 감독님이 보고 싶기도 하고, 당시 추억도 떠오르고 해서 울었던 것 같아요. 대단히 순수한 감성의 소유자구나, 생각 했죠.

Q. 당신도 칸의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만나고 싶은 감독이나 배우가 있나요?
송강호:
저도 칸을 비교적 많이 가 봤어요. 참 많은 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했는데, 저는 특별히… 유명 배우들이 지나가면 “어어~ 저 사람. 어디 나온 사람 아니냐?” 거의 관객의 마음이 될 뿐입니다.(일동웃음)

Q. 이번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유해진-류준열 씨와는 어땠나요.
송강호:
유해진 씨는 20년 지기인데 어쩌다보니 이번에야 처음 만났어요. 워낙 좋은 배우잖아요? 예상대로 성실하고 따뜻했죠. 류준열 씨는 첫인상이 강했어요. 눈매에서 좀 까칠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촬영을 하다 보니 영락없이 구재식(류준열 극중 이름) 같은 친구더군요.(웃음) 두 분의 공통점은 연기 욕심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물론 많은 배우들이 그렇지만, 두 분은 아주 치열해요. 사실 두 분 모두 이젠 주연도 하시잖아요? ‘택시운전사’는 만섭과 피터가 중심에 있는 영화다보니, 타 작품에 비해 두 분의 비중이 좀 적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보여 준 열정은 놀라웠죠.

#. 만섭의 딜레마, 배우의 딜레마

Q.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어린 송강호는 어땠습니까.
송강호:
생생히 기억해요.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80년대엔 TV가 있는 집이 많이 없었어요. 라디오 시대였죠. 당시 중2였는데, 라디오 뉴스에서 ‘군인들이 새벽 4시를 기해서 폭도를 진압했다’는 방송을 들었어요. ‘어휴 다행이다.’ 하면서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그 시대가 암흑이었죠. 이후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면서 5월 광주의 실제 사진이나 비디오테이프를 직·간접으로 보면서 실상을 알게 됐죠.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아래 질문과 대답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Q.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피터를 두고 서울로 향하던 만섭이 다시 광주로 택시를 돌릴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껏, 사람이 믿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면 ‘도망치거나, 돌파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떤 엄청난 진실’ 앞에서는 그 조차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만섭을 보며 했습니다. 그는 돌파함으로써 도망가는 사람 같았거든요.
송강호:
그렇죠. 자신이 지켜야 할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거죠. 사실 아빠로서는 직무유기가 되는 겁니다. 딸과의 전화 한 통으로 아빠로서의 책임을 잠시 미루고 광주로 다시 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마음의 평화를 위함이죠. 물리적으로는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마음의 평화를 위해 도망가는 것일 수도 있어요. 자유를 위한 유턴일 수 있고요.

Q. 네. 저도 그렇게 봤어요.
송강호:
저는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딸은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안전하잖아요.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다시 광주로 가는 게, 어떻게 보면 도망가는 거죠. 그 딜레마가 만섭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진정한 자유를 그는 원했던 것 같습니다.

Q. 차를 돌리기 전 만섭의 표정. 송강호 연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회한과 연민 고뇌 모든 걸 표정 하나에 담아내더군요. 그런 표정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송강호:
슬픈 장면이든, 기쁜 장면이든, 유머러스한 장면이든, 감정의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중요하지 ‘전에 이렇게 웃겼고 이렇게 표현했으니까, 이번엔 조금 다르게 해 볼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매번 다를 수도 없고요. 가끔 “저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실 수 있는데, 그건 당연한 거죠. 똑같은 배우가 연기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그렇게 치명적인 게 아닙니다. 배역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장 진심어린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핵심이죠.

Q. 아까 만섭의 딜레마를 얘기하셨는데, 배우가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딜레마는 뭘까요?
송강호:
작품마다 다르긴 한데, 뭐랄까. 연기라는 게 어찌됐든 보여주기 위한 거잖아요? 1차적으로는 감독-스태프들 앞에서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중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들을 대상으로 하죠. 그랬을 때, 나의 진심은 어떻게 보여질까, 나의 진심은 통할까, 통한다면 그것은 대중이 원하는 진심일까. 그런 여러 딜레마가 생겨요. 늘 그 딜레마를 안고 작품을 합니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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