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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살인자의 기억법’,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비즈엔터 라효진 기자]이 기사에는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주)쇼박스 제공)
(사진=(주)쇼박스 제공)

인간은 기억에 의지해 살아간다. 세상에 혼자 남더라도 생존을 위한 행동들을 기억해서 반복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사회 속에서는 더욱 기억해야 할 것이 많다. 때문에 누구나 나름의 기억법이 필요하며, 망각은 대개 고통으로 이어진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속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 분)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열다섯 나이에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죽인 후 세상에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청소’해 왔다. 누군가의 비밀이 서려 있을 것 같은 대숲은 그가 살해한 사람들의 시체 위로 자랐다. 그러나 병수는 17년 전 마지막 살인을 끝내고 당한 사고의 후유증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만다. 그에게도 기억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이었다.

17년 동안 살인 충동을 억누르며 수의사로 살아왔지만, 기억을 잃는 병은 그에게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해치도록 만들었다. 병수가 항암제 투여 시간을 잊는 바람에 연속으로 약물을 주입당한 강아지는 목숨을 잃었고, 딸 은희(김설현 분)는 가끔 피멍이 들 만큼 목을 졸렸다. 희미해지는 기억은 본능이 돼 버린 살인 습관을 제어하지 못했다. 망각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 신뢰까지 지워 갔다.

그러나 병수에게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딸 은희다. 그는 은희 때문에 기억들을 필사적으로 종이와 녹음기에 옮긴다. 살인 습관이 딸을 비켜가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병수가 또 다시 발생하기 시작한 연쇄 살인 사건에 묘하게 이끌린다. 그러면서 자신을 ‘살인자로 태어난 사람’이라 일컫는 병수의 살인 습관이 다시 깨어난다. 살인범의 심리에 자신을 이입해 움직이다 보면 그 자리에 또 한 명이 죽어 있었다. 이번 연쇄 살인은 누구의 짓인지 헷갈릴 정도다.

(사진=(주)쇼박스 제공)
(사진=(주)쇼박스 제공)

병수는 우연히 안개 속에서 태주(김남길 분)와 마주치고 그가 최근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읽어 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수는 태주가 붙잡히기를 바란다. 태주는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하는 병수 앞에 딸의 남자친구로 다시 나타난다. 병수는 태주가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들을 수집하지만, 이상하게도 돌아 보면 이 모든 것이 스스로 한 일처럼 다가온다. 처음에는 태주가 자신의 살인 행각을 감추기 위해 그리 몰아가는 것이라 믿었지만, 더 이상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순간까지 다다른 병수는 대혼란에 빠진다. 이제는 숫제 관객들까지 현실과 병수의 망상 속에서 헤매게 된다.

김영하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텍스트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태주라는 인물은 입체화됐고, 병수에게는 기억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생겼다. 영화에만 존재하는 병수와 태주의 대결 구도는 한 인간의 뇌내에서 발생하는 기억과 망각의 사투를 훌륭히 시각화했다. 병수 뿐만 아니라 보는 이들까지 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토록 끔찍한 기억을 딛고 살아 온 병수에게는 망각이 고통 아닌 축복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네 기억을 믿지 마라”는 병수의 마지막 읊조림은 서늘한 충격과 동시에 연민까지 자아낸다.

이처럼 색다른 형식의 범죄 스릴러 ‘살인자의 기억법’은 지난 6일 개봉 후 흥행 시동을 거는 중이다. 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전날 14만 3459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라효진 기자 thebestsurplu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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