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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칼럼] '썰전' 노회찬 신발, 당신을 기억함

[이시우 여행작가]

집회 때였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거리 행진을 시작했었죠. 혼자 갔던 집회였는지, 아내와 함께였는지 기억이 가뭇합니다. 누군가 먼저 시작한 구호도 따라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그랬어요. 서울광장에서 청계천을 거쳐 종로 쪽으로 향할 때였나. 아니, 을지로 어디쯤이었나. 도로 위를 따라 걷고 있는데 옆에 낯익은 사람 한 명이 서 있더군요. 당신, 노회찬이었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당신은 내게 눈인사를 건넸어요. 난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요. 그 잠깐 순간, 왜 그랬을까요. 당신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등산화더군요. 투박한 디자인, 옷은 노타이에 양복이었는데 말이죠. 집회가 끝나면 거리로 나가 한참을 걸을 거라 예상한 차림이었습니다.

당신을 ‘직접’ 만난 기억은 이날뿐이었어요. 나는 당신, 정치인 노회찬을 알지만 당신은 날 알지 못하겠지요. 그날 그 짧은 악수를 기억할 리도 없고요. 나와 잠깐의 인사를 나눈 후 당신은 당신을 반겨하는 많은 이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들과 스스럼없이 셀카를 찍던 당신의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였습니다.

정치인 노회찬을 처음 알기 시작한 건 이제는 전설이 된 ‘삼겹살 불판’ 발언 때부터였어요.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부패한 정치의 실체를 어찌 저 쉬운 단어로 정의할 수 있었을까요. 듣자마자 무릎을 탁 치고 말았죠. 삼겹살 불판 발언은 예고편에 불과했다지요. 이후에도 주옥같은 언어를 폭포수처럼 쏟아내셨으니.

당신의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마치 상대가 심각하게 상처받기만을 바라는 것마냥 공격하는 수많은 정치인의 독한 언행과 당신의 말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잔뜩 벼르며 토론장에 앉은 상대 정당 사람들도 노회찬의 말 앞에서만큼은 당신의 지적을 인정하듯 머쓱하게 웃고는 했지요.

유시민 작가가 떠난 '썰전'(JTBC)의 한쪽 자리를 당신이 앉을 거란 소식을 듣고 반가웠습니다. 매주 당신이 설명해줄 쉬운 정치 이야기와 때로 보여줄 특유의 유머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첫 출연부터 ‘진보의 입’이란 별명을 증명하더군요.

“왜 자유한국당에는 친박, 비박만 있느냐? ‘친국민’은 왜 없습니까? 원래 보수는 ‘반국민’입니까? 보수는 ‘비국민’입니까? 보수도 ‘친국민’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날 게스트로 출연한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 앞에서 한 얘기입니다. 당신의 날선 비판 앞에서도 한마디 하지 못하고 민망하게 웃기만 하던 안 의원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몇 주째 이어지던 독한 무더위에 지쳐가던 어느 월요일 아침 들려온 소식. 오보이기를 바랐던 건 저뿐만이 아니었겠지요. 비현실적인 기사 제목을 읽고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항상 거기 있을 줄로만 알았거든요. 언제든 집회에 가면 불현듯 옆자리에 나타나 호빵맨 닮은 미소를 보여주고는 총총히 사라질 그런 정치인이라 생각했지요. 뿐이겠어요.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날에도 주인공으로 당당히 무대 위에 서 있을 거라 생각했었죠.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일주일쯤 감정이 복잡했습니다. 누가 툭 건드리면 눈두덩이 주변이 뜨거워질 것 같은 며칠이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온갖 상스런 욕설이라도 내뱉고 싶은 날들이었어요. 정치를 시작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롯이 ‘우리 편’이었던 사람을 어찌할 도리 없이 보내야 하는 현실이 믿겨지지 않아서 말이죠. 우리에게 정치인이란 늘 절반쯤은 온전히 저쪽 편만 드는 자들이거나, 나머지 절반은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지조 없는 집단일 뿐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당신은 무던히도 우리 편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를 않았어요.

그러고 보면 ‘뻔뻔함’은 때로 부끄러움의 반대말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하나도 뉘우치지 않고 잘 먹고 잘사는 짓거리’의 동의어로 외워도 좋겠구나 싶습니다. 어떤 놈은 수백 억, 수천 억을 받고도 잘만 사는데…, 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요.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자신의 인생에서 지우고 사는 자들과 당신을 비교해서야 되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말이 당신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래도 안타깝고 야속한 이유는 당신의 말을 더는 듣지 못해서입니다. 이론서의 딱딱한 문장이 아니라 시장통에 흐르고 떠다니는 몇 개의 단어로 정적을 무장해제시키는 그 아름다운 말씀을 이제 듣지 못해 당신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보입니다.

당신을 보내는 자리에 많은 이들이 함께 했습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당신을 싣고 가는 버스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무더위를 무릅쓰고 길에 서 있었다지요. 모두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노회찬을 기억하려는 이러저러한 움직임도 보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붙인 재단과 정치학교를 설립한다는군요.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도 여전히 열심히 활동 중이고요. 몇 주 방송하지 않던 ‘썰전’도 원년 출연자였던 이철희 의원이 들어와 다시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여전합니다. 답답함과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충돌해 시끄럽지요. 이곳의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노회찬 님, 당신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 노회찬(1956. 08. 31.~2018. 07. 23.)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시우 여행작가 shu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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