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주희 기자]
처음에는 한지민-남주혁의 판타지 로맨스로 출발했다. 시간을 돌리는 시계로 인해 70대 노인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시간을 다시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이 과정에서 가족의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 이제 25세의 혜자(한지민 분)만 준하(남주혁 분)의 곁으로 돌아오면 해피엔딩일 것 같았던 이 이야기는 10회부터 의외의 반전을 선사하며 전혀 다른 장르로 끝을 맺었다.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
혜자(김혜자 분)의 기나긴 꿈이 끝나고 드러난 이야기는 25세의 혜자의 이야기들이 현실 속 혜자의 과거였다는 사실이었다. 1970년대, 20대의 혜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시대의 아픔으로 남편을 잃었다.
다리를 다친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 했다. 밝고 따뜻했던 혜자는 그렇게 평생 차갑게 살았고, 죽음을 앞두고 나자 모든 게 후회로 남았다. 그래서 그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갔다.
25세의 혜자는 준하와 못 다한 데이트를 했고, 아버지(안내상 분, 사실은 아들)의 다친 다리를 부여잡고 울기도 했다. 총 12회로 이뤄진 ‘눈이 부시게’(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ㆍ김수진, 제작 드라마하우스)에서 10회까지는 70대 혜자의 망상과 현실이 모호하게 이어졌던 것. 딸이 아버지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보였던 이 신은, 사실 현실에서 한 번도 따뜻한 말을 하지 못했던 엄마가 아들을 걱정했던 모습이었다.
‘치매’란 젊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소재이고, 아름답게 말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는 사라지는 기억을 시간 이탈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치매에 걸린 70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간을 그려냈다. 후회와 추억으로 뒤섞인 혜자의 상상 속 이야기(1~10회)들은 눈이 부셨고, 지난했던 혜자의 인생(11~12회)은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렇게 ‘눈이 부시게’는 판타지 로맨스 장르를 빌려 치매를 소재로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며, 말 그대로 ‘인생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기억 안 나면 기억 안 해도 돼요. 행복한 날만 기억하세요.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지만 어머닌 자신의 가장 행복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아들이나, “내 삶은 때론 행복했고 때론 불행했습니다. 인생은 한낮의 꿈이라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을 사는 당신은 매일 이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라고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어요. 후회스러운 과거와 불안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망치지 마세요. 눈이 부시게 살 자격이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70대 혜자의 이야기는 오늘도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을 걸며 위로를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