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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도쿄 재판 재해석…쇼와 히로히토 천황은 처벌받지 않았다

[비즈엔터 홍선화 기자]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이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하종문 교수와 前 아사히 기자이자 진보 지식인 나리카와 아야와 씨가 함께 다각도의 시선에서 도쿄 재판과 처벌받지 않은 천황(쇼와 히로히토)에 대해 재해석했다.

10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처벌받지 않은 천황(쇼와 히로히토)이 주는 나비효과, 그것이 지금의 한일관계에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1945년 8월,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비로소 길고 길었던 전쟁의 막이 내렸다. 8월 15일, 천황의 종전 선언으로 우리 민족도 독립을 맞이하고, 이듬해인 1946년 전쟁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단죄의 장이 도쿄에서 열렸다.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도조 히데키를 비롯해 전쟁 범죄자로 기소된 이들은 총 28명의 전범. 그러나, 그곳에는 전쟁 핵심 인물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쇼와 히로히토. 천황이었다.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도쿄 재판, 전쟁 범죄를 심판하다

전 세계를 전쟁의 상흔으로 뒤덮은 세계대전. 독일 뉘른베르크 재판 뒤를 이어 1946년 5월 도쿄에서 일본 전쟁 범죄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도쿄 재판이 열렸다. 도쿄 재판장에 기소된 인물은 수상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총 28명. 연합국을 비롯한 11개국 판사 참여, 증인 총 419명 공판 조서만 약 4만 장이 넘는 대규모 세기의 재판이었다.

전쟁의 책임을 물었던 도쿄 재판정을 그대로 재현한 모습과 도쿄 재판장에 섰던 인물들의 면모, 그리고 천황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도조 히데키의 궤변까지. 스튜디오를 화기애애하게 만든 특별 손님과 함께 도쿄 재판의 요모조모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 천황이 처벌받지 않은 이유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난징 대학살을 주도한 마쓰이 이와네 등 일본의 침략 전쟁 범죄자 28명이 도쿄 재판장 피고석에 앉았다. 그러나 기소장 어디에도 전쟁의 총책임자 히로히토 천황의 이름은 없었다. 전쟁의 개전과 종전 모두에 깊이 관여된 인물 히로히토. 그가 도쿄 재판장에 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은 국내는 물론 국외의 힘까지 빌려 천황의 전쟁 책임을 막기 위해 힘을 썼다고 하는 후문. 2차 대전 이후 혼란스러웠던 세계정세가 스민 도쿄 재판의 한계를 파헤쳐봤다.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 역사의 심판에 선 도쿄 재판

현재 일본의 보수 진영 측은 ‘도쿄 재판’이 승전국 연합국이 진행한 일방적인 재판이라고 주장하며 ‘도쿄재판사관’이라는 비아냥을 서슴지 않고 있다. 더불어 일본 정치인들은 전범이 잠들어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는 등 국제 정세에 역행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홍선화 기자 cherry31@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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