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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m:人] 새로움에 대한 갈망, 부천영화제 모은영 프로그래머

[비즈엔터 라효진 기자]

(사진=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사진=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20대 초반. 귀찮았던 주변의 잔소리가 갑자기 멎고 자유가 밀려든다. 대신 일거수일투족에 낯선 책임감이 따라 붙는다. 스스로가 아직 아이인지, 어른이 됐는지 정체성은 혼란스럽고, 전혀 달라진 주변의 시선에서 오는 불안감이 버겁기까지 한 시기다.

올해 스물 한 살이 된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프로그래머 3인을 영입하며 신선한 피를 수혈했고 이례적인 시도들도 많았지만, 그 새로움에 누군가는 ‘부천답지 않다’며 우려 섞인 말곁을 보태기도 했을 터다.

그러나 축제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해부터 선보인 코리안 판타스틱 섹션은 보다 에너지 넘치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부천의 밝은 미래를 점치게 했고, 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배우 전도연 특별전은 국내외 영화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부천, 앞으로의 부천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모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모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제21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폐막식을 앞두고 만난 모은영 프로그래머는 “‘새로움’을 발굴하는 것이 이번 영화제의 목표였죠”라며 지난 아흐레 간의 일정을 돌아봤다. 폐막 이후에도 깜짝 앵콜상영 ‘BIFAN 러쉬’ 등의 프로그램들을 남겨 두고 있다며 웃던 그는 올해 부천에 수혈된 ‘신선한 피’ 중 한 명이다.

앞서 정지영 조직위원장은 지난해의 호평과 쓴소리를 반영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모 프로그래머는 “세 명의 프로그래머를 영입한 것, 권역별로 프로그램을 나눠 프로그래머들이 좀 더 책임감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이 20회와 21회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젊음, 그리고 초심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맡았다. 지금까지 부천과 국내 영화계가 소원했던 점을 언급한 모 프로그래머는 “욕심을 부렸어요. 한국 영화를 많이 하고 싶었죠. 다행히 주변에서도, 내부에서도 격려를 많이 해 주시더라고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젊은 감독님들을 부천으로 모시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덕분에 ‘코리안 판타스틱 : 장편’ 부문에는 비경쟁초청부문이 신설되기도 했다.

“경쟁 부문에서는 한국 영화의 장르적 다양성과 가능성을 봤어요. ‘어둔 밤’의 심찬양 감독은 단편으로야 이미 알려진 감독이었지만 장편은 첫 작품이었죠. 채승철 감독의 ‘인질극’도 처음 만든 장편이지만 아이디어가 매우 훌륭했고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해 장르 영화의 판을 깔아 보자는 마음이 컸습니다.”

장르 영화의 지평이 확대되고 재능 있는 감독들의 설 자리가 넓어지면 전체 한국 영화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리라는 것이 모 프로그래머의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저평가됐던 한국 상업영화들을 재조명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대표적인 예가 ‘코리안 판타스틱 : 장편’ 비경쟁초청부문을 통해 다시 소개된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이다.

“다시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개봉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해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국내 장르 영화 가운데는 드문 판타지 영화기도 하고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윤기 감독의 ‘어느날’, 김준성 감독의 ‘루시드 드림’ 등도 부천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봤다. 여태껏 ‘장르 영화’하면 스릴러물만을 떠올렸다면,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램들은 색다른 장르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했다.

차인표, 조은지, 허준석, 남궁민 등 배우 출신 감독들의 작품도 많이 발견됐다. 모두 직접 출품을 해 와서 놀랐다고 말한 모 프로그래머는 “네 분 다 자기반영적인 작품들을 보내 주셔서 좋았어요. 남궁민 감독의 ‘라이트 마이 파이어’는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해서 ‘장편 있으시죠?’라고 슬쩍 여쭤 보기도 했어요. 조은지 감독의 ‘2박3일’은 그 솔직함이 정말 좋았고요.”

부천 데뷔,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갈망

“첫술에 배는 안 불렀던 것 같아요.”

언급했듯 모은영 프로그래머는 제21회를 시작으로 부천에 데뷔했다. 이전에는 EBS ‘시네마천국’, ‘애니토피아’의 작가로 활동하다가 프로그래머로서 한국영상자료원에 몸 담은 것이 10년 가까이다.

그와 함께 김봉석, 문석 프로그래머가 이번 영화제에 영입됐다. 세 사람 모두 오랫동안 글을 써 왔다. 이 같은 경력이 프로그래머 활동에 도움이 됐는지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좀 더 비평적 견지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제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던 것이 ‘아는 영화, 화제작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영화제는 새로운 영화들을 만나는 곳이라는 생각이예요. 이미 평가된 영화들에 다시금 의미를 부여하는 곳에서 일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웃음), 낯설더라도 부천에 와서 미래의 감독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올 초부터 대두된 한한령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듯했다. 처음 부임한 해의 가장 큰 시련이 됐을 법도 했지만, 오히려 대만 등 다른 중화권 영화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전도연에 접속하다’를 진행하면서는 한 배우가 20년 동안 멜로의 흐름을 만들어 가면서 스스로 장르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고.

▲모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모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이 특별전과 관련해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한 말이 있어요. ‘당시는 몰랐지만, 전도연과 한국 영화계의 가장 빛나는 시대를 함께 했었구나’ 싶었다고요. 배우 전도연의 20년을 훑으면서 한국 영화사 20년도 정리가 된 듯했어요. 다른 곳에서도 이런 시도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천에서 왜 이 감독을 다루느냐’는 의문과 마주해야 했던 ‘현실을 넘어선 영화 : 홍기선’ 특별전에 대해서는 도리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해 작고한 故홍기선 감독은 독립영화 1세대이자 대표적인 ‘운동권’ 감독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별다른 추모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 모 프로그래머는 이 특별전이 추모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기선 감독의 영화들을 복원해 보면서 저도 편견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셨지만 대중적인 화법을 써서 관객에게 전달하려 하셨던 분이셨죠. 작품에 장르적 야심이 엿보였어요.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현실을 영화라는 판타지를 통해 투영하려 하셨던 홍기선 감독이 계속 기억됐으면 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본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다고 덧붙인 그는 ‘영자원 프로그래머’로서 진행했던 수많은 프로그램 가운데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처음 영상자료원이 자리를 잡게 됐던 프로그램이기도 해요. 당시 전 세계 순회 상영을 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동원됐다고 하더라고요. ”

안종화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를 변사 공연으로 재탄생시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는 모 프로그래머의 최대 관심사가 ‘새로움’임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단순히 고전 영화를 다시 소개하는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시대를 복원하는 방식이었다.

신기술과 여성, 새로운 화두

▲모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모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프로그래머가 아닌 관객으로서, 해외 영화 중 추천하는 작품에 대해 물었다. 이에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로우(Raw)’라는 즉답이 돌아왔다. ‘피에 젖은 데뷔작’이라는 수식이 꼭 들어 맞는 이 영화는 강렬한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켜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올해 해외 영화제를 다니면서 ‘여성’에 무게중심을 둔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부천에서 소개되기도 했지만, 베를린에서 먼저 화제가 됐던 제이콥 라스 감독의 ‘타이거 걸’이라는 작품은 정말 멋졌죠. ‘여성’이라는 화두는 전 세계적 대세인 것 같아요.”

여성성이 공포의 핵심을 이루는 작품들로 구성된 ‘무서운 여자들 : 괴물 혹은 악녀’ 특별전은 세계적 조류를 반영한다. 각각의 작품을 봐도, 장현상 감독의 ‘커피 느와르 : 블랙 브라운’이나 전체 관람가 영화 위주로 꾸며진 ‘패밀리 존’의 ‘생쥐야 어딨니?(시몬 반 뒤셀도르프 감독)’ 등 여성이 중심이 된 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났다. 올해는 이 같은 화두의 변화를 보여 주는 시점이었다면 내년에는 더욱 본격적으로 여성을 다루겠다는 것이 모 프로그래머의 포부다.

부천에서는 VR 체험존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뉴미디어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모 프로그래머는 이 역시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지적하며 내년에도 이 같은 기획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사진=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VR도 그렇지만, 초청작 가운데 ‘내일부터 우리는’도 태생이 웹드라마입니다. 변화한 플랫폼에서 먼저 나온 작품이 극장으로 왔을 때는 또 어떨 지 보고 싶어서 극장판 상영을 결정하게 됐죠. 넷플릭스 드라마도 다뤄 보려 했는데,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제는 조금 더 변화를 빨리 반영해야 하는 장인 것 같습니다. 이번 칸 영화제의 ‘옥자’ 상영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고요.”

이처럼 새로움에 대한 모 프로그래머의 고집이 반영된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내년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그는 부천영화제가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냐는 질문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올해는 여러가지로 혼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사람도 많이 바뀌고, 프로그램도 낯설어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내년에 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합니다. 관객과의 접점도 많이 만들고, 여러 점검해야 할 부분들도 챙겨 보려고 해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부천영화제가 ‘내년에 오고 싶은 영화제’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라효진 기자 thebestsurplu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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