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김하영 기자]
클래식 음악의 거장, 베토벤이 뮤지컬로 부활했다. 솔직한 후기를 말하자면 장점이 확실하지만, 아쉬운 점도 뚜렷한 작품이다.
지난 12일 화려한 막을 올린 '베토벤 ; Beethoven Secret'은 EMK뮤지컬컴퍼니의 다섯 번째 창작 뮤지컬이다. '레베카', '모차르트!', '엘리자벳'을 만든 세계적인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7년 동안 준비한 신작으로 월드프리미어를 통해 국내 관객들과 만났다.
뮤지컬 '베토벤'은 베토벤 사후 유품 중 발견된 불멸의 편지 한 통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이 시작됐다. 19세기 오스트리아 비엔나,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평가받던 베토벤은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지우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토니를 만나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다. 토니는 청력을 상실한다는 불치병 진단을 받고 절망에 빠진 베토벤을 위로하고, 둘은 사랑의 감정을 키운다. 하지만 토니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베토벤과의 이별을 선택하고 베토벤은 다시 실의에 빠지게 된다.
뮤지컬 '베토벤'은 미하엘 쿤체, 실베스터 르베이, 길 메머트 등 내로라하는 창작진과 박효신, 박은태, 카이, 옥주현, 윤공주, 조정은 등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개막전부터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막상 개막 후 '베토벤'을 향한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엇갈리고 있다.
직접 뮤지컬 '베토벤'을 관람하니 이 작품만의 강점과 2% 아쉬운 점들이 공존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나누어지고 있는 이유 역시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완벽에 가까운 캐스팅 라인업
캐스팅 라인업은 뮤지컬 '베토벤'의 가장 큰 강점이다. 어떤 페어를 선택해 봐도 아쉬움이 없는 화려한 출연진이다.
지난 25일 공연은 배우 카이와 조정은이 각각 베토벤과 토니 역할로 활약했다. 배우 카이는 성악 발성을 적절히 활용하며 클래식한 넘버들을 웅장하게 소화했다. 카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와 베토벤의 냉소적인 모습이 높은 싱크로율을 이루며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다.
시종일관 무대 위에서 베토벤을 따라다니는 혼령 역할 배우들의 움직임과 연기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이들은 베토벤의 음악을 시각화해 리드미컬한 안무를 보여주며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토니 역의 배우 조정은은 또 하나의 '인생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배우 조정은이 가지고 있는 따뜻하고 우아하지만 강한 이미지가 토니라는 역할을 만나 극대화됐다.
뮤지컬 '베토벤'의 50개가 넘는 넘버 모두 베토벤의 곡을 편곡해 제작했는데 '엘리제를 위하여', '월광', '비창', '운명 교향곡' 등 클래식의 거장 베토벤의 음악을 뮤지컬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1막 마지막 장면의 무대 연출은 뮤지컬 '베토벤'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베토벤이 토니를 만나 마음의 벽을 허무는 장면이 실감 나게 묘사되는데 전체적인 무대 구성과 카이의 연기가 실로 압권이다. 또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를 표현한 무대가 공중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무대 위 표현된 카를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황홀한 감정이 든다. 한 번쯤 극장에서 꼭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카토벤' 카이는 마치 베토벤의 재림이 아닐까 착각이 들게 한다. 탄탄한 연기력과 성악 발성을 통한 편안한 넘버 소화력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베토벤 역할에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박효신, 박은태 모두 각각 지닌 매력이 뚜렷한 배우들이고, 토니 역할의 배우 옥주현, 윤공주, 조정은 역시 모두 믿고 보는 배우들이니 어느 페어로 관람해도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 실력을 볼 수 있다.
◆ 모두 잡으려다 대부분 놓쳤다
뮤지컬 '베토벤'의 아쉬운 점은 '과유불급'이다. 베토벤의 생애, 사랑, 감정, 음악 등 모든 것을 한 작품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표현된 것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뮤지컬 '베토벤'은 베토벤과 토니의 사랑을 '불멸의 사랑'으로 표현했지만,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의 개연성은 굉장히 떨어진다.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서사와 플롯은 아쉽고, 개연성 없는 스토리 구조는 감동이나 울림을 선사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미하엘 쿤체는 "사랑이 보여주는 힘, 사랑의 한계, 사랑에 의해서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라고 말했지만, 설명이 부족한 서사는 관객들을 설득할 만한 힘이 없었다.
결국 극이 끝나는 순간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또 베토벤의 음악을 모든 넘버에 사용한다는 시도는 좋았으나, 클래식의 웅장함도 잃고 트렌디한 느낌마저 놓쳐버린 느낌이다. 물론 모든 넘버가 듣기엔 좋았으나 공연장을 나오는 시점에 기억에 남는 '킬링 넘버'가 없는 것이 아쉽다.
뮤지컬 '베토벤'은 천재 음악가로 평가받던 베토벤의 업적보다는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베토벤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월드프리미어으로 국내에서 첫 여정을 시작한 창작 뮤지컬 '베토벤'이 초연이 진행되는 동안 아쉬운 점들을 보완해 앞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거듭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편, 뮤지컬 '베토벤'은 오는 3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