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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터널’을 데우는, 하정우℃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Zstudio 김재윤)
(사진=Zstudio 김재윤)

터널이 무너졌다. 한 남자가 갇혔다. 그는 버텨야 한다. 싸워야 한다. 고독과, 시간과, 두려움과, 불신과, 자기 자신과, 그리고 죽음과.

이견이 있을 수 있나. 영화 ‘터널’은 주연 배우의 표현과 뉘앙스가 작품 전체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주연 배우에게 할당된 지분이 절대적인 작품이라는 뜻이다. 배우입장에서는 분명 탐나는 캐릭터, 동시에 두려운 캐릭터다. 욕심을 낼 수는 있지만 욕심에 준하는 성취를 보여주긴 쉽지 않을 테니까. 부담이 적지 않은 난해한 캐릭터를 받아들고, 터널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 이는 도전을 즐기는 하정우다. 그리고 그는 126분 동안, 자신이 영화라는 4각 프레임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배우인가를 증명해 낸다.

‘터널’에서 하정우가 돋보이는 것은 결코 출연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다. 내지르는 연기가 좋은 연기로 평가받기 쉬운 시대에, 하정우는 곳곳에 널린 유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오버’하지 않는다. 촬영 전 치밀하게 짜 둔 정수(하정우)의 감정 그래프 곡선 위를 리드미컬하게 오르내리며 희로애락을 조율하다가가, 종국에는 긴 여운을 스크린 안에 남기고서 잠잠해진다. 만약 하정우가 감정을 뜨겁게 쏟았다면,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더 많은 눈물을 쏟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쉽게 달아오른 만큼 쉽게 꺼지지 않았을까. 극장을 빠져 나온 후에도 정수의 얼굴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 것은, 잔잔하게 불을 지펴 깊숙이 스며든 ‘하정우라는 배우의 온도’ 때문일 것이다.

Q. ‘터널’ 홍보하랴 ‘신과 함께’ 촬영하랴…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계시네요.
하정우: 요즘 거의 뒤죽박죽이에요. 오늘도 인터뷰가 끝나면 밤 촬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Q. 체력 관리가 관건이겠군요.
하정우: 그래서 요즘 공.진.단.을 먹고 있어요.(일동웃음) 투자배급사에서 선물해 주더군요. 그거 말고는 ‘족욕’ 정도… 술도 좀 자제하고 있어요. 아쉽죠. ‘터널’ 감독님-제작자와 손 붙잡고 함께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이 쫀득쫀득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촬영 때문에 쉽지 않으니 말이에요.

(사진=Zstudio 김재윤 )
(사진=Zstudio 김재윤 )

Q. 요즘 ‘일희일비’ 하시는군요.
하정우: 네. 어제(4일)는 다행히 ‘일희(一喜)’했어요. ‘뉴스룸’ 나가길 잘했다, 하면서요.(웃음) 낮에 엄청 긴장했거든요.

Q. ‘뉴스룸’은 참 여러 배우를 긴장시키는군요.(웃음)
하정우: 두 번째 출연인데도, 긴장이 되더라고요.

Q. 손석희 앵커와 친분이 있지 않나요?
하정우: 네. 손석희 앵커가 ‘더 테러 라이브’ 뒤풀이 때 오셨어요. 그때 함께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도 ‘뉴스룸’은 어렵네요. 오랜만에 ‘무릎팍 도사’에 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Q. 매해 여름, 배급사 대표 주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스크린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기에 나서는 기분은 어떻습니까.
하정우: ‘일희일비’ 하는 것에 대해서 이젠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죠. 고통과 살 떨리는 시간들에 단련이 됐습니다.

Q. 다행이군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캐릭터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가는 스타일이시죠? 이전 인터뷰에서 “감독의 디렉션까지 미리 신 바이 신으로 예측해서, 나에게 무슨 디렉션을 줄 것인지, 초 목표가 무엇인지 다 체크를 한 후 촬영에 들어 간다”고 하신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터널’처럼 1인극이 요구되는 작품의 경우 캐릭터 접근법이 좀 다른가요?
하정우: 전작이 ‘아가씨’였다는 게 이번 작품에 영향을 좀 미쳤어요. ‘아가씨’는 한 컷 한 컷 세공하면서 찍은 영화에요. 배우 연기부터 카메라 워킹까지 모든 것들이 박찬욱 감독님의 치밀한 계획아래 진행됐죠. 그에 반해 ‘터널’은 거칠게 촬영이 진행됐습니다. 김성훈 감독님이 카메라를 ‘턱’ 놓더니, “즉흥연기를 마음껏 해도 된다. 애드리브도 마음껏 구사해라. 그 안에서 내가 골라서 쓰겠다”고 하더라고요. ‘더 테러 라이브’ 때보다도 편했던 것 같아요. ‘더 테러 라이브’는 그래도 스튜디오 안에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터널’에서는 진짜 혼자였어요. 의식이 흐름이 아니라, 무의식의 흐름에 따라 몸이 이끄는 대로 연기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다기보다, 내가 느끼는 나를 한 번 써봐야겠다는 접근이었던 거죠. 비슷한 패턴이라면 ‘멋진 하루’, ‘비스티 보이즈’, ‘러브 픽션’을 떠올릴 수 있겠네요,

(사진=Zstudio 김재윤 )
(사진=Zstudio 김재윤 )

Q. ‘치밀하게 짜 둔 계획을 현장에서는 릴렉스하게 풀어내는 기존 연기방식’과 달랐다고 보면 되나요?
하정우: 기본적으로 정해놓은 룰은 있었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정수(하정우)의 감정을 그래프를 정밀하게 그렸죠. 붕괴 후 정수는 쇼크로 당황하고, 감정의 폭이 확 올라와서 화를 내다가, 구조대장 대경(오달수)과의 통화 후 진정을 해요. 중반까지의 정수는 ‘일주일만 버티면 터널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죠. 하지만 극 중반, 어떤 사건을 계기로 ‘힘들 수도 있겠구나’를 깨달으면서 다시 공포에 빠져요. ‘감정의 하락↘ 릴렉스→ 상승↗ 분노↑ 좌절⇊’ 등을 치밀하게 세운 후, 그 안에서 변화를 줬죠.

Q. 어떤 감정에 특히 주목했습니까.
하정우: 감독님과 합의했던 건 ‘정수의 고통보다 생존기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였어요. 말이 안 될 수도 있어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마 기절했을 거예요. 숨도 못 쉬고. 그런데 감독님의 의도는, ‘삶의 의지를 가진 캐릭터가 긍정적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걸 보여주자’였어요. 그리고 정수는 터널 밖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안과 밖의 상황을 모두 조망하고 있는 관객 입장에서, 긍정적인 정수의 모습과 점점 악화되는 현실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아이러니 효과가 커지리라 생각했죠.

Q. 배우의 표현과 뉘앙스가 작품 전체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영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드리브도 중요하게 기능하죠.
하정우: 비좁긴 했지만, ‘제 공간(정수 차 안)’에 적응이 되자 연기가 굉장히 편했어요. 감독님이 또, 카메라를 제 눈이 띄지 않는 바위틈에 세팅했어요. 카메라와 스태프가 안 보이니까 집중도가 생기더라고요.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가 그 공간에서 느끼는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배우로서 상당히 짜릿한 순간이었죠. 그런데 중간에 강아지 탱이를 만나면서, 공간의 확장이 이루어집니다. 앞차를 발견하는 거죠. 내 공간에 앉아서 편하게 찍어서 좋았는데, 그때부터 환풍기를 통해 앞 차를 오가야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한 번 다녀오는데 체력이 꽤 요구돼요. 힘들죠. 앞차에 갔다가 돌아 온 후 “아, 집에 왔네!”는 자연스럽게 나온 대사였어요. 실제 제 마음이었던 거죠. 그런데 거기에서 관객 웃음이 터지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부분이에요.

Q. 그 진심이 진짜 느껴져서 더 큰 웃음이 나왔나 봅니다.(웃음) ‘터널’의 어떤 점에 가장 마음이 끌렸나요.
하정우: 저는 작품을 고를 때 캐릭터를 먼저 보지는 않아요. 이야기가 재미있느냐 없느냐, 관객의 공감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를 보죠. 그랬을 때 ‘터널’은 극영화로서의 재미가 충분한 작품이었어요. 무엇보다 재난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유머를 구사하겠다는, 이 영화의 색깔이 굉장히 마음이 들었어요. 톰 행크스 주연의 ‘게스트 어웨이’가 가장 먼저 생각났죠.

Q. 정수가 보여주는 낙관적인 모습은, 당신 특유의 긍정의 에너지와 만나 극대화 된 느낌이 있습니다. 실제의 하정우도 터널에 갇힌다면, 정수처럼 낙관적이리란 생각을 하게 하죠.
하정우: 하하. 맞아요. 제 삶의 태도도 그래요. 평소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깊은 고민에 빠지면 술을 안 마셔요. 도리어 나가서 조깅을 하거나, 러닝머신을 뛰죠. 술을 마시고 잠드는 것보다 육체를 혹사시켜서 잠드는 게, 다음 날 훨씬 개운하더라고요. 그런 성향 때문인지, 정수가 저에겐 이질적이지 않았어요.

(사진=Zstudio 김재윤 )
(사진=Zstudio 김재윤 )

Q. ‘터널’은 작품적으로 훌륭한 지점이 많은 영화인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았던 건 상황 곳곳에 스며있는 양면성입니다. 희망과 절망이 매 순간 교차하죠. 가령 극 초반, 주유소 할아버지가 실수로 가득채운 ‘기름’은 정수에게 장시간 터널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반대로 정수의 대사처럼 할아버지의 실수 없이 주유가 빠르게 진행됐다면 붕괴되기 전에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었겠죠. 그리고 극 중반 따스한 감동을 주는 ‘달걀프라이’는 극 후반 ‘달걀세례’로 바뀝니다.
하정우: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서 굉장히 좋았어요. 영화 ‘노팅힐’(1999년)을 보면 휴 그랜트(윌리엄)가 줄리아 로버츠(안나)의 셔츠에 실수로 오렌지 주스를 쏟아요. 휴 그랜트는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씻을 수 있도록 하죠. 옷을 갈아입은 줄리아 로버츠가 집을 나서기 전에 휴 그랜트에게 이렇게 말해요. “도와줘서 고맙다”고.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휴 그랜트 때문에 피해를 입어서 왔는데, 도리어 도와줘서 고맙다라는 게. 참 인상 깊은 대사였어요. 그런 입체적인 결들이 ‘터널’에도 있어서 참 좋았어요.

Q. 로맨스에 이어 브로맨스에 소질을 보이시더니, 이번엔 강아지와 절묘한 호흡을 내뿜더군요.(웃음)
하정우: 탱이를 연기한 녀석을 사실 두 마리에요. 곰탱이라는 녀석은 드라마를, 밤탱이는 스턴트맨처럼 액션을 담당했죠. 퍼그 종인데 개 중에서도 멍청하기로 유명해요.(웃음) 훈련을 도운 동물 소장님도 “잘못 선택하신 거다. 무슨 생각으로 퍼그를 쓰려고 하냐” 이러셨죠..(일동 웃음) 그런 녀석을 앉혀 났으니 컨트롤이 쉽지 않았어요. 사실 개사료 ‘먹방’을 선보인 장면은 기적적으로 얻어걸린 거예요. ‘오늘은 촬영이 하루 종일 걸리겠구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갔는데, 웬일인지 가만히 있더라고요. 리허설 한 번에 쭉 찍어서 메인에 통째로 썼죠.

Q. 좀 친해 졌나요?
하정우: 그 개는 저를 그냥 간식 주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어요.(일동 웃음) 제작사에서 “관심 있으면 정우 씨가 데려가서 키우세요” 하더라고요. 워낙 개를 좋아하니까, 받아서 집으로 데리고 갔죠. 데려가는 순간, 그 녀석이 온 집안을 초토화 시켰어요. ‘똥밭’으로 만들었죠. 또 수컷이라 다리를 들고 벽에 오줌을 싸잖아요. 닦을 수도 없었죠. 결국 다음 날 도로 가지고 갔어요. “죄송합니다. 이 개는 제가 도저히…”

Q. ‘터널’을 본 후, 터널 지나기가 무섭다는 분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혹시, 안전 문제로 민감한 게 있나요?
하정우: 비행기 타기 전에 기종을 살피는 버릇이 있어요. 사고가 잘 나는 기종이 있거든요. 그랬을 때, 보잉*** 기종이나, *** 기종은 나쁘지 않아요. 비행도중 엔진이 정지해도 글라이딩을 통해 착륙이 가능하거든요.(일동, 감탄) 아! 비행기는 이륙 후 15분-착륙 후 15분에 사고가 가장 많이 납니다. 계절 변경선 지나갈 때 조심하셔야 하고요, 적도 지날 때도 조심하세요. 도쿄 갈 때는, 후지산 지날 때.(웃음)

(사진=Zstudio 김재윤 )
(사진=Zstudio 김재윤 )

Q. 하하. 이런 지식은 도대체 어디서 얻는 건가요?
하정우: 영화 ‘롤러코스터’ 준비할 때 조사를 했죠. 그리고 제가 워낙 비행기 타는 걸 무서워해요. 비행기 사고 다큐를 많이 본 탓이죠. 공중에서 비행기가 폭발하는 건 두 가지인데, 테러 아니면 전기합선이에요. 연료탱크 위로 전선들이 가기 때문에 합선이 되면 터진다고 하더라고요. 몇몇 징조가 있어요. 갑자기 모니터가 나간다거나, 실내등이 나간다거나. 벨소리로도 알 수 있죠. ‘땡’ 한번! 그건 뭐, 늘 있는 일이에요. ‘땡땡’ 두 번! 식사서비스 중단이에요. ‘땡댕땡’ 세 번! ‘승무원 포함 모든 사람 앉아주세요’의 의미죠. 그런데, 땡이 네 번이다! 이건, 비상인 거예요.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죠.

Q. 빨리 구명조끼를 착용해야겠네요.
하정우: 아, 그게… 안타깝게도 공중폭발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일동웃음)

Q. 뭔가에 빠지면 철저하게 파는 스타일 같아요. 요즘 꽂힌 건 뭔가요
하정우: 요즘은 애견에 푹 빠져 있어요. 어렸을 때 개를 오래 키웠는데, 혼자 살면서는 키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탱이와 촬영하고 욕심이 났어요. 결국 얼마 전에 한 마리 분양을 받았어요. 제가 상남자 스타일이라, 대형견이 어울릴 것 같잖아요?(웃음) 안 그래도 처음엔 도베르만 같은 종을 봤는데, 귀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비숑프리제라는 소형견을 데려왔어요. 비숑프리제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저랑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비숑프리제는 서.커.스.개.였.어.요. 저와 같은 광대인거죠. 하하. 그리고 사교적이에요. 혼자 있어도 잘 견디죠. 암컷인데, 이름은 복실이입니다. 파리지앵 스타일로 지을까하다가, ‘아니다! ‘터널’ 개봉이 있으니 복이 들어오라는 의미로 복실이로 하자!’ 했죠.

Q. 요즘 가장 인상 깊었던, 혹은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하정우: 우리 복실이, 분양했을 때? 그리고 제가 “복실아~”라고 불렀는데, 자기 자신을 인지했을 때.(일동웃음) 뭔가 아이가 옹알이를 끝내고 아빠의 존재를 인지했을 때의 상황 같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한심한 거죠. 장가가서 애를 낳아야 할 나이에. 주위에서도 제가 개를 키운다니까 “너, 정말 장가 안 갈 거야”고 하더라고요.

Q. 연출을 경험한 후 느끼는 현장은 이전과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정우: 지례 겁먹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감독 입장에서 배우를 만났을 때 뭔가 불편하더라고요. ‘허삼관’을 예로 들면, (조)진웅이 형-이경영 선배-(정)만식이 형, 모두 친한 배우들이에요. 농담 따먹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사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연출을 하면서는 계속 그들의 표정하나, 말투 하나가 신경 쓰이는 거예요. 무표정이면 ‘뭔가 불만이 있나?’ 싶고, 작품에 대해 농담을 하면 ‘숨은 속뜻이 있나’ 싶고.(웃음) 배우들이 ‘딴지’ 거는 상상을 하며 진땀을 흘리곤 했어요.

(사진=Zstudio 김재윤 )
(사진=Zstudio 김재윤 )

Q. 배우-스태프들에게 매 순간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거군요.
하정우: 없지 않죠. 리더로서 겪는 감독의 고충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걸 알고 난 후, 현장을 대하는 제 태도가 달라졌어요. 이젠 감독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혹시 이렇게 찍어 달라는 말씀인가요?”해요. 그러면 다들 좋아하시죠.(웃음) 그리고 이전에는 “한 번 더 테이크가겠습니다”라는 감독의 말에 명분을 항상 찾으려 했어요. 이유를 알려고 했죠. “그냥, 자연스럽게 다시요”라는 요구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어요. 그런데 막상 감독이 돼보니, ‘진짜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거구나’ ‘그냥 한 번 더 가고 싶은 거구나’를 알게 됐죠.

Q. 감독을 가장 깊게 이해하는 배우가 된 셈이네요.
하정우: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해야겠구나, 다짐도 하게 됐죠. ‘허삼관’ 끝나고 ‘암살’ ‘아가씨’ ‘터널’을 찍었어요. 배우가 아닌 감독의 눈으로도 현장을 지켜봤는데, 그러면서 중요한 걸 알았어요. 영화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요. 그건 ‘캐스팅’, ‘시나리오’ 그리고 ‘헌팅’이었어요.

Q. 헌팅에 눈길이 가네요.
하정우: 왜 훌륭한 감독들이 목숨 걸고 헌팅을 하는가를 알았어요. 그게 결국 영화의 뉘앙스를 결정하더라고요. ‘아가씨’ 박찬욱 감독님의 경우 롱테이크 하나를 찍기 위해 일본 나고야까지, 몇 시간 거리를 봉고로 이동하셨어요. 그만큼 중요했던 거죠. 캐스팅 역시 뉘앙스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입니다. 물론 모든 건 시나리오에 있어요. 좋지 않은 시나리오를 현장에서 약 바르는 식으로 처방한다고 해서 될까요? 연기로 커버할 수 있을까요? 없어요. 시나리오는 일단 그 자체로 완성돼 있어야 해요. 시나리오와 연결해서 진짜 중요한 것은, 감독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스스로가 관심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만, 모양새가 이상하더라도 관객들에게 진심이 전달돼요. 지난 몇 년은 그걸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Q. 그 깨달음의 결과를 세 번째 연출작에서 확인할 수 있겠군요.(웃음)
하정우: 트리트먼트만 나온 상태에요. 아직 집필은 안 들어갔습니다.(웃음)

Q. 일단 영화 ‘신과 함께’ 촬영을 무사히 마쳐야겠네요.
하정우: 네. 9월 초-중반까지 ‘터널’의 모든 행사를 마치고, 대략 12월 말까지 ‘신과 함께’ 1부 촬영을 할 것 같아요. 이후 내년 2월까지 2편 촬영을 마무리해서, 여름 시장에 관객을 만나는 게 목표입니다.

Q. 역시, 여름시장의 사나이네요.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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