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스위스 한림원은 지난달 13일(현지시각) 전설적인 포크 가수 밥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음악인들의 언어가 문학적으로도 높은 예술성을 지니고 있음을 방증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어디 문학적 가치뿐인가. 전쟁과 차별에 반대하는 그의 저항 정신을 두고, 비평가 그레일 마커스는 “밥 딜런의 음악은 대중음악의 ‘정신혁명’과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음악은 듣는 이들 모두의 언어이기도 하다. 평화, 화합과 같은 숭고한 가치의 수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의 경험이나 감정을 포착해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음악에는 있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이 분야에서는 가수 윤종신을 따를 만한 사람이 없다.
지난 27일 서울 대현동에 위치한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윤종신의 ‘작사가 콘서트 2교시’가 열렸다. ‘가을옷’으로 공연의 포문을 연 그는 최근 이날 약 150여분 동안 25곡의 무대를 소화하며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믿었던 세계가 무너져 혼란스러워하던 30대의 윤종신부터, 80년대 그룹사운드를 사랑한 청년 윤종신, 세월이 얹은 새로운 책임 앞에 숨 가빠 하는 중년의 윤종신까지, 그의 지난 시간을 함께 걷고 속내를 공유했다.
“서른 살을 넘겼을 때 당하는 일들이 제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거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아요. (중략) 서른 초반에서 중반까지, 좌절감도 있었고 일도 잘 안 풀렸죠.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이별이었던 것 같아요. 이별, 그리고 그 후에 들려오는 그 사람의 소식. 그런 것들에 심각하게 반응하던 때의 노래에요. 제목도 청승맞습니다. ‘잘했어요’”
개인적인 고백과 함께 들은 ‘잘했어요’는 전과 다른 색채와 온도로 내려앉았다. 인간 윤종신에게서 시작된 이야기는 작사가 윤종신으로 넘어갔다. 8~90년대에 대한 향수로 가득한 ‘나쁜’, 독특한 관점이 빛을 발하는 ‘치과에서’, 신인 가수 민서를 통해 들은 ‘아빠’ 윤종신의 이야기 ‘사라진 소녀’, 윤종신표 시즌송 ‘바다이야기’ 등이 쉼 없이 이어졌다.
가장 특별한 순간은 단연 마흔여덟 살의 윤종신을 만나던 때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호언처럼 그는 자신의 고민이나 상념을 말로써 털어놓지 않았다. 다만 노랫말에 모든 게 잇었다. “잠시 감은 나의 두 눈을 그 때처럼 믿어줘”(‘탈진’)라고 고백하던 애처로움,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걷는 이 곳이 나의 길”(‘지친 하루’)이라고 다짐하던 단단함 모두 가사가 되어 울려 퍼졌다.
‘버드맨(Bird man)’은 또 어떤가. 데뷔 후 26년 동안 평가받고, 사랑받고, 때로 외면 받아야 했던 창작인, 연예인으로서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내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라는 윤종신의 믿음과, 당신의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듣고 싶다는 관객들의 열정이 교차했다. ‘작사가 윤종신’ 콘서트의 기획 의도가 마법처럼 들어맞던 순간이었다.
“약간은 생경한, 듣도 보도 못한 포맷의 콘서트인데 ‘윤종신이 하면 괜찮겠지’라고 믿고 와주신 여러분들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다른 이야기, 그 때 그 때마다 떠오르는 제 생각들을 구차한 말보다는 노랫말에 얹어서 자주 들려 드릴 테니까요. 제 노래를 통해 ‘저 친구는 저런 생각을 하며 사고 있구나’ 느껴주세요. 책 한 권, 잘 읽고 돌아가는 기분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