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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선아가 소환한 故휘트니 휴스턴, 불멸의 노래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정선아(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정선아(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1983년 미국의 인기 토크쇼 ‘머브 그리핀 쇼(The Merv Griffin Show)’ 무대에 흑인 소녀 하나가 섰다. 소녀의 이름은 휘트니 휴스턴. 그녀는 알았을까. 자신을 향해 쏟아질 찬사를, 자신의 손에 쥐어질 수많은 트로피와 막대한 부(富)를. 불명예스러운 죽음과 이후로도 이어질 노래의 생명을, 불멸을.

뮤지컬 ‘보디가드’는 휘트니 휴스턴이 주연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까다롭지만 외로운 톱스타와 무뚝뚝하지만 섬세한 보디가드가 사랑에 빠진다는 작품의 줄거리는 기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보디가드’가 매력적인 건 순전히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 덕분이다. ‘아이 윌 얼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The greatest love of all)’, ‘올 앳 원스(All at once)’ 등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 15곡이 무대에 오른다.

정선아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녀는 노래를 듣는 관객들의 두 눈에 추억이 가득 담긴 것이 보인다면서, 그것이 자신에게도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도 말했다.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은 듣는 관객들에게도 부르는 정선아에게도 서로 다른 의미로 존재해 어떤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은 불멸한다. 그것이 다시 불리는 ‘보디가드’의 모든 순간 역시, 같은 이유로 불멸할 것이다.

Q.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내준 소개 자료에 “모두가 무대 위의 정선아를 기다리지만 무대를 독식하려 하지 않는 일념으로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무대를 독식하지 않으려는 일념’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선아:
제가…그랬죠?(웃음) 어떤 배우든 자기가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잖아요. 제겐 그게 코미디거든요. 물론 얌전하고 우울한 역할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캐릭터를 찾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그 또한 배우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즐겁게 연기해서 관객들에게도 행복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캐릭터를 찾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Q. 뮤지컬 ‘보디가드’는 관객들에게 행복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작품인가요.
정선아:
커튼콜이 묘미에요. 어떤 감정을 갖고 오신 분이든 커튼콜이 끝난 뒤에는 행복한 얼굴로 돌아가세요. 관객들 모두가요! 저도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제 생활도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정선아(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정선아(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레이첼 마론은 ‘보디가드’의 원톱 여주인공입니다. 거의 공연 내내 당신이 등장해요.
정선아:
그래서 체력 관리에 가장 힘을 쓰고 있어요. 모든 종류의 고기를 섭렵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순간적인 에너지를 팍! 끄집어내서 무대를 소화했다면, 지금은 러닝 타임동안 체력이 달리지 않게끔 관리합니다.

Q. 운동의 힘일까요. 적지 않은 관객들이 당신의 몸매에 감탄하더군요.
정선아:
제가 ‘배우’라서 관리를 한다기보다는 이 ‘작품’을 위해 몸을 예쁘게 만들고 싶었어요. 하체나 복부가 보이는 의상이 많은데다가 탄력적인 몸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공연 전에는 반드시 필라테스나 PT를 받곤 하죠. 날씨가 추우니까 운동을 하러 가기도 쉽지는 않지만 무대 위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건 관객들과의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바른 생활을 하고 있어요, 요즘엔.

Q. 팝스타 故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부르려면 창법의 변화가 필요했을 텐데요.
정선아:
뮤지컬 ‘위키드’를 할 때에는 성악 발성을 열심히 배웠는데 지금은 용하다는 보컬 트레이너에게 레슨을 받고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천부적인 재능과 끼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연기는 경험이 쌓이면서 농익을 수 있지만 노래는 다르잖아요. 저절로 창법이 변하거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없으니까요. 영역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만큼 노력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끼 많은 배우’라는 말이 좋았는데 서른 살 즈음부터는 ‘노력형 배우’, ‘어떤 역할이든 잘 스며드는 배우’ 같은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해요.

Q. 가장 어려운 넘버와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뭔가요.
정선아:
관객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아요. 커튼콜에서 부르는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I wanna dance with somebody)’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고 싶네요. 감사하게도 모두 기립해서 즐겨주시거든요. 가장 부담되는 건… ‘아이 윌 얼웨이즈 러브 유’죠, 사실.(웃음) 원곡 가사를 그대로 불러야 하는 것도 부담이고 관객들도 “앤다이아(And I)”를 들으러 오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이 윌…’은 휘트니 휴스턴의 원곡을 최대한 살리려고 해요. 애드리브 하나하나에도 귀를 기울여 듣죠.

Q. 음악의 아름다움에는 이견이 없지만 스토리의 개연성에 대해서는 비판도 있습니다.
정선아:
사랑이 좀 빨리 오죠?(웃음) 레이첼은 당대 최고의 톱스타고 아들도 있지만, 저는 늘 사랑에 목말라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캐릭터를 잡았어요. 뭐랄까요. 소리 없이 사랑에 빠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넘버 수가 많잖아요. 가사를 통해 감정을 많이 표현하려고 해요. 이를 테면 ‘런투유(Run to you)’에서 “나를 바라봐 줄래요. 가만히 잠시 동안만”이라는 가사가 나와요. “나르~을 바라봐 줄래요오우워” 하고 멋 부리며 부를 수도 있지만 저는 대사처럼 표현하려고 해요. 노래를 통해 개연성을 다지는 거죠.

▲정선아(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정선아(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흑인 음악을 하고 있는 양파·손승연과 뮤지컬배우인 당신에게, 휘트니 휴스턴이라는 인물은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합니다. 그 때문에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달라졌을 것 같고요.
정선아:
음악은 음악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파고들되, 저는 영화 ‘보디가드’에서 보였던 레이첼 마론의 러브스토리에 신경 쓰려고 했어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는 한 곡만 불러도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노래가 열다섯 곡이나 있거든요. 관객 분들도 넘버에 대한 기대가 크겠지만 동시에 쉽게 피로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각 넘버의 특징을 이야기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제 선택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Q. 상대역으로 배우 이종혁과 박성웅이 출연 중입니다. 두 사람은 어떤 파트너인가요.
정선아:
이종혁 오빠는 평소 모습이 너~~무 밝아서 옆에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져요. 관객들이 어떤 포인트에서 가슴 떨려 하는지 잘 아시는 분이죠. 프랭크가 그로테스크하고 히스테릭한 캐릭터일 수도 있는데 재밌게 풀어줘요. (박)성웅 오빠는 영화 속 프랭크의 느낌을 상당히 잘 살려요. 하면서도 가슴이 떨리죠. 아, 물론 한 아이의 아버지이지만!(웃음) 뮤지컬에 임하는 자세가 굉장히 진지하고 작품 자체를 열렬히 사랑하니까 저도 러브스토리에 금세 빠질 수 있었어요. 여주인공이 빛나는 만큼 무거운 왕관인데, 두 파트너 덕분에 외롭지 않아요.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정선아:
성웅 오빠는 연습벌레에요. 눈만 마주치면 “레이첼!” 하면서 대사를 시작하죠. 첫 공연 때 상당히 떨더라고요. 저는 마지막 공연을 향해 갈수록 떨림이 커지는 편인데, 오빠의 떨림이 보여서 재밌었어요.

종혁 오빠는…아우 어떡하지? 호호호. 코미디언 같아요. 연습 도중에는 몇 번이나 빵 터졌어요. 심지어 키스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서 못한 적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관객들이 웃으면 어떡할까. 그런데 (애드리브를) 많이 줄이셨더라고요. 연습 때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장난치신 것 같아요. 덕분에 유쾌한 에너지를 전달받아서 그 기운을 작품에 쏟아 부을 수 있어요.

Q. 마지막 공연으로 갈수록 떤다는 게 의외네요. ‘보디가드’는 어때요? 떨림이 시작되는 순간이 찾아 왔나요.
정선아:
‘보디가드’는 매 회 떨려요. 긴장을 풀면 안 되는 작품이에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라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인 거 같아요. 그냥 뮤지컬 넘버였다면 제가 어느 부분을 잘 못 불렀는지 관객 분들이 모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제 부족한 부분이 금방 드러나요.

Q. 긴장의 효과는 어떤가요.
정선아:
무대 위에서 관객 분들의 표정과 눈빛이 보이거든요. 그게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요. 그런데 ‘보디가드’는 관객 분들의 눈에 추억이 가득한 게 보여요. 이 분들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녹여서 행복을 안고 돌아가실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저 철들었죠? 내가 봐도 말이 청산유수일세. 오호호호. 그냥 감사해요. 나의 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느껴요. 제가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제작사에서 저를 안 써주면 관객들과 만날 수 없는 거고, 제가 무대 위에서 아무리 도취된 채 노래를 해도 관객들이 감동받지 못한다면 그건 성공한 공연이라고 말할 수 없거든요.

▲정선아(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정선아(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마지막 말, 인상적입니다. 당신의 감정과 관객들이 좋아하는 지점을 맞춰가는 방법은 터득했나요.
정선아:
저는 연출의 말을 상당히 잘 듣는 편이이에요. 연출만큼 작품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임하거든요. 배우는 자기 역할을 보는 눈이 더 크고 그래서 감성적인 면을 더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에요. 반면 연출과 관객들은 작품 전체를 보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연출의 얘기를 들으며 이성적인 면을 키워가려고 해요. ‘보디가드’를 하면서도 ‘관객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고려하는 이성적인 레이첼과 감정에 빠져 있는 감성적인 레이첼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제 감정이 전부였거든요. 지금은,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 어느 정도 감성과 이성을 잘 갈라서 맞춰나가려고 해요.

Q. 이성이 필요하겠다고 자각한 계기가 있어요?
정선아:
뮤지컬 ‘위키드’ 초연이요. 연습을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특히 엘파바와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늘 슬프기만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연출이 말하더라고요. “너 슬프지? 너 이렇게 하면 관객들은 아무도 안 울어”라고. 혼란스러웠죠. ‘뭐지? 난 진실하게 연기했는데!’ 그런데 공연을 많이 보다 보니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관객들은 배우가 볼 수 없는 여러 가지를 보세요. 슬프다고 질질 우는 것 말고 슬픔으로 가는 감정선을 더 좋아하시고요. 저는 툭 던지면 되는 거고 (감정에 대한) 판단은 그 분들이 하시는 거예요. 적정선을 찾는 게 어려운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Q. 극 중 레이첼은 자신이 오스카상만을 위해 달려왔다고 얘기하죠. 하지만 오스카상을 향해 가는 과정이 그녀에겐 행복해보이지 않았어요. 당신은 어때요? 목표를 향해 돌진하던 시절이 있나요?
정선아:
저는 중학생 때부터 뮤지컬만 사랑했어요. 뮤지컬에 의한, 뮤지컬을 위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요. 긴 시간동안 한 길만을 달려왔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나 너무 잘해’, ‘난 너무 잘났어’라고 기고만장하던 때도 있었고, ‘난 아무것도 아닌가?’, ‘내가 뭘 위해서 계속 달리지?’라고 고민하던 때도 있었죠. 글쎄요. 지금은 여유가 많이 생겼어요. 사생활적인 부분이든 배우로서든. 어렸을 땐 욕심도 많고 상 하나에 일희일비하기도 했는데, 이젠 정선아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요. 제 인생이 행복해야 공연을 하면서도 웃을 수 있고 더 좋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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