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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올댓이즈] 장국영,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남자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14년째다. 이 맘 때가 되면, 늘, 장국영이 불쑥 나타나 “모든 건 거짓말이었노라” 속삭일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14년 전 오늘, 장국영의 투신 소식을 전하는 친구의 전화에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하고 투덜거리던 나는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보도에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국영이 죽었다고?

당시 홍콩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로 인해 온 도시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 자의적인 고립을 자처했던 사람들은 장국영의 죽음을 접하고 하나 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검은 양복에, 새하얀 마스크를 쓴 무리들…그것은 세기말적 우울함과 고독을 머금고 있던 장국영과 너무 닮은, 방황의 끝에 놓인 장례식 같았다.

1971년생, 장국영 세대인 소설가 김경옥도 이 기묘한 광경을 보았던 걸까. 그가 얼마 후 펴낸 ‘장국영이 죽었다고?’ 단편 소설에는 아버지의 빚 때문에 이혼하고 PC방에서 일하는 ‘나’와 ID가 이혼녀인 여자가 등장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채팅을 하던 중 여자가 말한다. “장국영이 자살했대요” 순간, 세상에 없는 한 배우에 대한 기억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두 남녀를 강하게 묶는다. 이들은 오래전 같은 날 같은 극장에서 장국영의 ‘아비정전’을 봤다는 공통점을 발견 한다. 그 기억이 온라인 세계에서 또 다른 이들과 공유되고, 이들은 10여년 ‘아비정전’이 상영됐었던 충무로 한 극장에 모여든다. 검은 양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렇듯, 소설 밖 사람들도 4월 1일이 되면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장국영을 소환한다. 누군가는 피 흘리면서 공중전화 부스에 매달려 아내와 전화하던 ‘영웅본색2’의 아걸을, 누군가는 사랑하는 여인을 오랜 시간 기다리던 ‘천년유혼’의 영채신을, 누군가는 애절하게 연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해피투게더’의 보영을, 누군가는 다른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를 눈으로 애타게 쫓던 ‘패왕별희’의 데이를, 누군가는 또 다른 얼굴의 장국영을….

장국영은 ‘아름답다’라는 수식어가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배우다. 실제로 장국영은 ‘누아르’ 영화가 붐이었던 당시 홍콩 영화시장의 터프한 남자들 사이에서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와 공허에 찬 눈빛으로 보는 이들을 적시는 배우였다.

‘아비정전’은 그런 장국영의 면모가 유독 도드라지게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생전, ‘아비정전’의 아비가 자신의 내면과 가장 닮아 있는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장국영은 영화에서 아비 그 자체였다. 권태와 반항의 기운 속에서 숨죽이던, 애타가 사랑을 갈구하다가도 누군가가 다가오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 버리던 아비. 하얀 속옷 차림으로 맘보를 추던 그의 고요한 몸짓….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결핍을 안은 아비는 극중 이런 말을 한다.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발 없는 새처럼 하늘 위에서 뛰어 내린 장국영이 불쑥 나타나 “모든 건 거짓말이었노라” 속삭일 것 같은 그런 날이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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