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비즈엔터

[전문]‘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 동생, 사망 관련 심경 글 “CJ E&M, 생명 앞에 존중 있길”

[비즈엔터 한경석 기자]

▲지난 17일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의 동생 이한솔 씨가 형의 죽음과 관련해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사진=SNS)
▲지난 17일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의 동생 이한솔 씨가 형의 죽음과 관련해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사진=SNS)

'혼술남녀' 조연출 PD인 고 이한빛의 동생 이한솔 씨가 장문의 글을 전하며 CJ E&M 측의 대응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이한솔 씨는 지난 17일 오후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해 10월 26일 숨진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를 대하는 CJ E&M의 태도를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장문의 글을 통해 "즐거움의 ‘끝’이 없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대기업 CJ, 그들이 사원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관하여"라며 글을 이어갔다.

이한솔 씨의 글은 급속도로 확산돼 18일 오후 2시 30분 현재 SNS에서 2000여명 이상의 공감을 불러왔고 700명 이상이 직접 자신의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 씨의 글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이브한 동생에게 부조리한 세상을 외면하지 말라고 다그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며 PD가 되었습니다. 몇 푼 안 되는 1년차 월급은 4.16연대, KTX 해고승무원, 기륭전자, 서울대점거현장 등 아픔이 있는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어느 날, 그가 참여하던 ‘혼술남녀’ 제작팀은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첫 방송 직전 계약직 다수를 ‘정리해고’ 하였습니다. 그는 손수 해지와 계약금을 받아내는 ‘정리’임무를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더불어 드라마를 찍는 현장은 무수한 착취와 멸시가 가득했고, 살아남는 방법은 구조에 편승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저항, 아니 작은 몸부림의 결과였을까요. 그는 현장에서 모욕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인사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언제나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가, 자신이 꿈꾸었던 공간에서 오직 비열하게 살아야하는 현실에 갇힌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고 싶었던 tvN의 이한빛 PD는 드라마 현장이 본연의 목적처럼 사람에게 따뜻하길 바라며,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첫 번째 휴가. 10월 말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CJ라는 기업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두 번이나 박았었습니다. 형의 생사가 확인되기 직전, 회사 선임은 부모님을 찾아와서, 이한빛 PD의 근무가 얼마나 불성실했는지를 무려 한 시간에 걸쳐 주장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생사가 불투명한 그 순간, 사원을 같이 살리려는 의지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책임 회피에 대한 목적으로 극도의 불안감에 놓인 부모님께 비난으로만 일관하는 것이 이 사회의 상식일까요. 결국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회사직원에게 사과를 했고, 몇 시간 뒤 자식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식을 죽게 만든 가해자가 눈앞에서 자식을 모욕하는데도,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사과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회사는 죽은 사람에 대한 모욕도 모자라,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잔인하기 그지없는 악몽을 남겼습니다.

CJ 직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문상을 왔습니다. ‘다행히’ 형이 남기고 간 글을 통해 내막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을 비참하게 만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적당히 넘어가려던 회사는 유가족의 강경한 태도를 그제서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음을 깨닫자 책임자들이 대화를 요청해왔습니다. 약한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무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시금 직시하니, 그냥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형이 겪었던 아픔을 추적해 올라가서 잘못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했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주변사람들과 형 친구분들의 도움으로 작은 가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형이 남긴 녹음파일, 카톡 대화 내용에는 수시로 가해지는 욕과 비난이 가득했습니다.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았고, 형이 사라진 순간에도 ‘X새끼’ 등 비아냥의 대화만 남아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들이 부모님께 처음 연락을 취한 이유도 사라진 사람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는, 형이 챙겨두었던 법인카드 한 장을 회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지 무려 만 5일이 지나서야 움직인 그들 때문에 형의 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조차 어이없게 놓쳤습니다.

이미 떠난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로써, 그들의 사과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책임자들과의 만남에서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사실 인정 및 재발방지를 포함하는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뜻 밖의 저항에 회사는 우선 논의 후 답변을 주겠다며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대로 복귀해야하는 상황이기에, 간단한 답변 정도라도 빨리 줄 것을 요청했지만 결국 복귀하는 날까지 아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휴가. 12월 말

두 달이 지나, 서면을 통해 CJ의 ‘공식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학대나 모욕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 됨."

문제가 있었다면 이한빛PD의 ‘근태불량’에 있다고 그들은 결론지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근태불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입증자료는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유가족이 요청했던 직장 내 과도한 업무부과나 모욕행위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코멘트를 붙였습니다.

“조사 자체가 사실과는 다른 왜곡된 결론으로 도출 될 수 있으며, 고인과 함께한 연출부 구성원들에게는 명예훼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우려가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아무쪼록 유가족분들이 협조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함께 회사에서 생활한 사람의 죽음이기에, 그리고 ‘드라마’라는 소재를 다루는 사람들이기에, 최소한의 희망은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형의 생사가 확인되기 전과 그다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사실 당연히 예상했어야 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당당히 고인의 근태불량을 주장하고, 유가족의 사과요구를 자신들의 명예훼손으로 규정하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회사와 협조를 통한 진상조사가 불가능해지자, 발품을 팔아 '혼술남녀'를 찍는데 참여했던 개개인을 찾아다녔습니다. 천만 다행히도, 기업과는 다르게 몇몇 사람들은 죽음을 위로하고자 증언에 참여해주었습니다. 계약직의 손쉬운 해고와 드라마 현장 스텝들의 장시간 노동 등 구조적인 문제는 두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더불어 특정 시점 이후, 이한빛 PD는 팀이 사라질 경우 그 업무를 모두 일임하고, 딜리버리, 촬영준비, 영수증, 현장준비 등 분담할 수 있는 업무조차 홀로 맡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계속된 밤샘 촬영에 쉬는 날은 자료정리까지 일임하게 되어 잠도 못자고 출근만 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원래 모든 조연출들이 당연히 그런 줄 알았지만(실종 때도 야근을 하는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랬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과도한 업무 속에 지각을 하면 “이 바닥에 발 못이게 할 것이다”는 등의 위협을 일삼고, 버스 이동시 짐을 혼자만 옮기게 하는 등 노골적인 갈굼 행위도 자행했습니다. 형이 그들에게 행한 잘못이 있었다면, CJ라는 회사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남들만큼 조용히 넘기지 못했을 뿐인데, 아무렇지 않게 폭력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당당하게 모욕이 없었고 근태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휴가. 2월 말

CJ 측과 대면하였습니다. 대면을 요청하기에 혹시나 기대를 했지만, 회사의 목적은 우리의 정보출처를 요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난 12월에 자신 있게 모든 조사를 마쳤다며 결론을 내렸던 그들이, 이제는 우리가 모아둔 정보출처를 알아야 객관적인 파악이 가능하다며 역으로 자료를 요구한 것입니다.

더불어 CJ는 죽음의 이유가 개인에게만 있지 않다는 유가족의 주장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정규직 PD가 스텝들의 노동실태나 계약직 정리해고 등에 아파했다는 것이 그들의 상식에서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작 삶에 대한 관심은 잊은 채, 사람을 빙자해서 시청률과 수익성만을 쫒아가는 당신들의 사고에서는 이어지기 힘든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면’이라기에, 대화를 통해 작은 간극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의 자료와 주장을 “이쪽 사정을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무시하였기에, 대화는 진전될 수 없었습니다. 방송업계 생태계가 원래 그런 것이고, 자살의 원인은 오직 이한빛PD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몰아갔습니다.

결국 첫 휴가 때부터 시작되었던 회사와 벌였던 ‘대화’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었습니다. ‘죽음’의 문제에서 그저 ‘사과’ 하나를 받고자 했기에, 작은 희망을 품었지만, 작은 시민에 불과한 우리 가족에게 CJ가 사원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딱 이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네 번째 휴가. 내일.

한류 열풍은 전세계를 휩쓸고 있고, 수출액에서 드라마는 8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찬란한 영광 속에, 다수의 비정규직 그리고 정규직을 향한 착취가 용인되며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실컷 일을 벌여놓고 책임은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온몸을 소모하며 채워나가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기형적인 구조임은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가만히 있으라.” 요구에 순응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희생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드라마 세계에서, 구조에 가만히 있지 않았던 사람은 영원히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의 말처럼 저는 방송업계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하지만 주어진 시공간을 치열하게 사람이 느꼈던 절실한 한계와 문제만큼은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미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바랐던 이 세계의 문제는 함께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죽음’을 대하는 온전한 방식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도움 줄 사람이라고는 현역 병사에 불과한 동생뿐이었던 고인의 목소리가 정말 많은 사람들의 공감 속에 세상에 묻히지 않았던 이유에는, 누구나 절감하던 구조적, 개인적 치부가 CJ E&M과 방송업계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장 약하고 말단인 사람들(특히 청년들)의 희생과 상처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형의 죽음이 낱낱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더욱 진실을 찾고, 부조리한 구조가 나아질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형만큼 괴로워하고 심지어 꿈까지 포기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에 놓일 수 있도록 형이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형이 떠나기 전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있습니다. “세월호와 정리해고로 아픈 모든 이들이 덜 추운 겨울을 보냈으면 한다.” 당신이 만들고 싶었던 따뜻한 공간을, 유가족, 함께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대기업이고 우리가 아무리 작은 사람들일지라도, 생명 앞에서는 똑같이 존중받을 수 있음을 보이고 싶습니다.

한경석 기자 hanks30@etoday.co.kr
저작권자 © 비즈엔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bizenter.co.kr

실시간 관심기사

댓글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