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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윤 “잔뜩 비어버린 지금, 나 자신을 찾아야할 때”

[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이라는 배우는 흔히 ‘지성미’라는 수식어로 통용된다. 이는 그가 배우이기 이전에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한 탓이다. 여기에 숱한 멜로 연기 경험이 더해지면서 이상윤은 외모와 마인드 모두 훈훈한, 뭇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꼽히게 됐다.

그렇다면, 배우이기 전에 진짜 이상윤은 어떤 사람인 걸까. 직접 마주한 그는, 좋아하는 농구 얘기만 나오면 곧바로 눈을 반짝이는, 때로는 자신이 가는 길을 두고 진지한 고민을 해나가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골몰하는 한 사람이었다. ‘귓속말’을 통해 선 굵은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배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이상윤은 이제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나가는 중이다. 잔뜩 소모해버린 제 자신을 느끼며,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깨달으며, 그리하여 자신을 다시 찾아내기 위하여.

Q. ‘귓속말’이 종영한지도 수일이 지났어요. 되찾은 일상, 어떤가요(웃음).
이상윤:
농구도 하고 집에서도 늘어져 있고 그랬어요. 정리를 미처 못 한 물건들도 그새 많이 쌓여있더라고요. 그런 것들도 정리하며 지내고 있어요. 이동준 캐릭터도 종방 여행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털어버렸죠.

Q. 종영 후에 팀끼리 여행을 갔었죠. 어떤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상윤:
힘들었던 걸 주로 말했던 것 같아요. 대부분 좋게만 이야기하다가, 둘째 날에 ‘서로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하지는 말자’고 말했죠. 하지만 역시나 싫은 소리는 아무도 하지 않았어요(웃음). 고생했던 이야기를 주로 했어요.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점과 마음고생을 했던 얘기 등등.

Q.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게 있었다면.
이상윤:
계속 눌려야 하는 캐릭터적인 상황이 힘들었죠. 여기저기에서 눌리기도 하고 뒤통수도 여럿 맞았으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게 전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부분이었어요. 연기적으로도 답답한 느낌이 들었죠. 초중반부는 계속 당하기만 하잖아요(웃음). 베드신도 참 난처했죠. 저는 노출도 있었는데 대역이 없었거든요. 하하.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Q. 이보영 씨와는 ‘내 딸 서영이’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어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이상윤:
극 중에서 힘든 상황들이 연속으로 배치되던 때가 있었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때였는데 이보영 누나가 워낙 긍정적이다 보니 많이 응원을 해줬어요. 반대로 누나가 힘들어할 때면 제가 힘이 된 부분도 약간은 있었죠. 하지만 제가 더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모니터도 함께 하면서 향후 방향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작품에 맞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조언을 나눴죠. ‘내 딸 서영이’ 때는 주로 누나를 뒤따라갔다면, 이번엔 한두 발자국이라도 옆으로 좀 다가간 것 같아요(웃음). 역할적인 부분에서 조금은 따라가려 한 느낌이었어요.

Q. 이보영 외에도 친분을 나눴던 사람이 있다면.
이상윤:
권율과 많이 친해졌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사담을 많이 나눴는데, 농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남들이 잘 모르는 농구선수들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죠. 이참에 연예인 농구팀에도 데려가 보려고요(웃음).

Q. 박경수 작가와는 처음 호흡을 맞춰봤잖아요. 평소에 하던 작품과는 달라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텐데.
이상윤:
대본 흐름이 익숙하지 않았어요. 박경수 작가님의 대본은 큰 이야기의 흐름이 쭉 뻗어나가는 스타일인데, 저는 기존에 사랑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작품을 하다 보니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대본에 더 익숙했죠. 그래서 초반부엔 대본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부분에 있어 실수도 있었을 거고, 작가님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었을 거예요.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감독님, (이)보영 누나와 대화를 자주 나눴죠. 멜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학 작용이라기보다는, 사건이 쌓여서 생기는 친밀감을 바탕으로 하는 멜로였으니까요.

Q. 그래서인지 ‘귓속말’ 속 멜로가 뜬금 없다는 지적도 있었어요.
이상윤:
저희가 알고 있는 사랑 이야기와 저희가 겪는 대부분의 멜로는 감정과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지만 ‘귓속말’은 그렇지 않았어요. 작가님의 멜로는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방식이었죠. 그래서 연기함에 있어 뜬금없이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동료애가 멜로로 발전하는 과정을 뻔뻔하게, 돌려 말하는 느낌으로요. 예를 들어 극 중 신영주에게 이동준이 초밥을 보냈을 때 “애인 사이에는 김영란 법이 적용 안 되지 않나”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의 느낌으로 하기도 했었죠.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Q. 멜로의 진행방식도 달랐고, 캐릭터도 기존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이상윤이라는 배우가 지금까지 보여준 이미지와는 이질감이 컸죠. 본인이 어떻게 보이고자 의도한 부분은 없었나요?
이상윤:
기존에는 가볍고 유쾌하고 따스하기만 한 캐릭터를 맡았다면, 이동준은 좀 더 날카롭고 무게감이 있었어요. 그런 인물을 해보고 싶었지만 극 중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캐릭터 적으로 힘을 더 갖지 못해 아쉽기도 해요. 연기적으론 아주 만족했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욕도 많이 들었다고 알고 있어요. (Q. 어떤?) 안 어울린다고요. 하하. 스스로 변론을 해보자면, 작가님의 전작에서 인물들은 스스로 가진 파워가 있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상황적으로 족쇄가 채워졌죠.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다 보니 기존의 힘 있는 인물들보다는 추진력이나 파워가 다소 약했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죠.

Q. 멜로 배우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귓속말’의 이동준을 선택한 걸까요?
이상윤:
그런 것도 있죠. 제가 여태까지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 적이 없으니 시청자께서 못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향후 작품을 선택할 때 선택 폭도 더 넓어질 거라 생각했고요. 가능하겠죠?(웃음)

Q. 농구예능인 ‘버저비터’에도 출연했었어요. 다른 예능 출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이상윤:
예능에 최적화된 분들이 하시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전 예능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버저비터’처럼 좋아하는 분야면 좀 더 고려해볼 만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도, 제작진도, 보는 사람도 모두 힘들 거예요. 바람직하진 않은 모습이죠.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Q. 그렇다면 차기작을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웃음). 어떤 분위기를 생각하고 있는지.
이상윤:
너무 무겁지 않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공항 가는 길’도, ‘귓속말’도 그렇고 정말 정적이었어요. ‘귓속말’은 긴장감은 넘쳤지만 행동보다는 두뇌싸움 위주여서 굉장히 정적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음 작품은 아예 동적이거나 조금은 더 가볍게 소화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 편한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요. 로맨틱 코미디도 좋고요.

Q. 즐겨보는 장르의 드라마가 따로 있진 않고요?
이상윤:
사실 배우를 시작하면서부터 드라마를 잘 안 보게 됐어요. 일단 작품을 하나 마치고 나면 아예 다른 세계로 떠나곤 하죠. 운동을 하거나, 연기가 아닌 다른 쪽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며 쉬다 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요. 아예 다른 분야로 다녀오다 보니 계속 저를 비우고 소모만 하는 것 같아요. 뭔가를 더 채워놔야 하는데 제가 직접 경험하는 것 말고는 남는 게 없어지는 느낌이거든요.

Q. 왜 그렇게 느낄까요? 다른 분야를 경험하며 얻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텐데.
이상윤: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에너지를 소모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그걸 채워넣지 않다 보니 바닥이 드러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반성을 하고 있어요. 저를 채울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려 하고 있고요. 드라마나 공연도 의식적으로 더 찾아보려고 하죠. 작품을 끝내면 주 생활이 농구로 이뤄져서 공연 관람까지도 미루게 돼서, 농구를 이제는 조금 줄이려 해요. 연기 수업도 받고 여행도 많이 다녀보려고요. 혼자 여행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데뷔한지 꽤 됐는데도 연기 공부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 보이네요.
이상윤:
아무래도 제가 전공자가 아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 연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선배님이 ‘어느 순간 연기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 올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점 같아요. 물론 학문적인 연기 공부가 실제 연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을 수도 있지만, 현장 경험 외에 기초지식이 쌓이면 또 다른 무언가가 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작 연기를 전공한 권율은 강력 추천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요(웃음).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Q. 연기와 농구 외에 이상윤을 집중하게 하는 건 없을까요. 확실히 두 가지에 몰두하는 느낌이 강한데.
이상윤:
음… 여행이나 자아 찾기요. 이건 저만의 개인적인 화두예요. 저를 잃어버린 것 같거든요. 작년부터 그런 걸 느꼈어요. 일단은 나 자신을 찾아야할 것 같아요.

Q. 나를 잃어버렸다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는 표현은 아니죠. 어떤 계기가 있던 건가요?
이상윤:
그냥, 뭔지 모르게 힘이 들었어요. 재작년과 작년의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2015년에 ‘두 번째 스무 살’과 ‘날 보러 와요’를 찍었을 땐 정말 즐겁게 일을 했어요. 하지만 지난해에 ‘공항 가는 길’을 하고 이번에 ‘귓속말’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예민해지더라고요. 계속 제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벽에 부딪힌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자꾸 신경질이 나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런 느낌이 들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뭐랄까,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 오면 제 자신에게 화부터 나요. 마음을 다스리는 게 필요하겠구나 싶었죠.

Q. 작품이 많이 힘겨웠던 것처럼 느껴지네요.
이상윤:
조금 바쁘게 한 것 같긴 해요. ‘버저비터’를 하면서 힘이 많이 빠졌었거든요. 워낙 좋아하는 분야인 만큼 최선을 다했는데 패배라는 결과를 얻으니 좌절감도 느끼고 많이 힘들었죠. 마음대로 안 되니까 너무 속이 상하는거예요. 진심으로 좋아하는 농구인데도 한동안 안 할 것 같다는 말도 하고 울기도 했고요. 그런 걸 겪고 작품에 거의 바로 투입됐어요. 감독님과 이보영 누나가 정말 좋아서 힘 얻고 회복하려 했지만, ‘귓속말’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작품이니 이걸 찍으면서도 제 자신이 점점 더 소모됐죠.

Q. 그렇다면 ‘두 번째 스무 살’의 차현석 같은 캐릭터를 맡으면 마음이 조금은 나아질까요.
이상윤:
일단은 저 자신을 다잡고 잘 채워가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야 해요. 연기적인 부분도, 감정적인 부분도 모두 다요.

Q.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우울감이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슬럼프에 대한 우려는 없을지…
이상윤:
어휴, 그러면 안 되죠. 제가 뭘 했다고 슬럼프가 오겠어요. 오더라도 빨리 극복해야죠.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Q. 마흔이 되기 전에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앞자리 수가 바뀌게 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이상윤:
저는 딱히 나이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훌륭한 작가님들과 작업하다 보니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은 분명이 있죠. 잘 하고 싶은데 제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속상하니까 더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고요. ‘공항 가는 길’도 잘 표현하고 싶었는데 저 스스로가 그런 욕심을 갖다 보니 대본을 보고 처음 느낀 느낌의 반도 표현하질 못했어요. ‘귓속말’은 이런 류의 대본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더 서툴게 나오고, 그래서 더 좋은 결과로도 못 이어진 것 같다는 자책이 들었어요. ‘공항 가는 길’도, ‘귓속말’도 결국은 제 자신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끼는 거죠.

Q. 다 잘해야겠다는 콤플렉스가 있는 건 아닐까요?
이상윤:
그런 게 조금 있나 봐요. 어떤 감독님이 ‘상윤 씨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면서 ‘그렇게는 안 보이지만 넌 사실 정말 못된 놈이다’라고 하셨는데, 사실 속으로는 정말 뜨끔했거든요. ‘귓속말’을 연출하신 이명우 감독님도 초반부터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본인도 그런 편이라 알아보셨다면서, 그러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염려도 해주셨죠. 그래서 좀 내려놔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하곤 해요.

Q. 그렇다면 꼭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어요. 사람들이 이상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이상윤:
흠, 글쎄요. 어쨌든 대중에게 비치는 저는 연기자잖아요? 그래서 제가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재밌게 이끌어갈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좋겠어요. 배우가 아닌 개인으로서는, 솔직히 예능 같은 걸 거치지 않으면 저를 보여주기가 힘들잖아요. 인터뷰도 결국은 관심 있는 분들이 찾아봐주시는 거고요. 그런 만큼 저는 작품이나 캐릭터로 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상윤이 나오면 볼만한 작품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는 게 최고인 거죠. 꼭 그렇게 되고 싶고요(웃음).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상윤(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김예슬 기자 yey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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