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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로그] 검정치마의 사랑 놀음, 스치는 이별의 기억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검정치마 '팀베이비' 음반 커버(사진=하이그라운드)
▲검정치마 '팀베이비' 음반 커버(사진=하이그라운드)

“너, 나랑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나 같은 애 못 만날 거야.” A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다음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A는 퍽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A의 평온함에 놀랐다가 온 몸이 쑤셔졌다가 결국은 체념했다. 나는 A와, 정말로 헤어졌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단연 조휴일 원맨밴드 검정치마가 새로 발표한 음반 ‘팀 베이비(TEAM BABY)’다. 음반이 발매된 것은 지난달 30일이지만 나는 이제야 편한 마음으로 ‘팀 베이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 놀음’으로 가득 찬 이 음반이 묻어뒀던 이별의 기억으로 나를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다.

‘팀 베이비’는 질리지도 않고 사랑,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댄다. 이별한 사람에겐 듣기 괴로울 정도의 행복과 환상이 음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세상과의 괴리로 인해 잔뜩 의기소침해져 있는 ‘난 아니에요’을 지나면 멀리 지하철이 다가오는 소리와 함께 ‘빅 러브(Big Love)’가 시작된다. 슈게이징의 흐릿함은 유쾌한 로큰롤로 변주된다. 사랑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아름답다.

조휴일은 지난 2014년 결혼했다. 슬하에 아이도 하나 있다. 결혼 소식은 지난해 10월이 돼서야 알려졌다. ‘난 아니에요’에서 ‘빅 러브’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그에게 발생했던 ‘변화’를 감지하게 만든다. 물론 ‘팀베이비’가 조휴일의 사생활과 관계없이 ‘그냥’ 만들어진 음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음반이 조휴일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을 때, 감동은 커진다. 과거 내가 사랑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환희에 대한 공감, 혹은 미래에 느낄 환희에 대한 확신이 조휴일의 경험과 어우러져 증폭된다.

▲검정치마 '나랑 아니면' 뮤직비디오 화면(사진=하이그라운드)
▲검정치마 '나랑 아니면' 뮤직비디오 화면(사진=하이그라운드)

사랑에 대한 노래는 많고 많지만 ‘팀 베이비’가 노래하는 사랑은 훨씬 ‘실존적’으로 느껴진다. ‘진정성이 보인다’는 말로 표현하자니 좀 따분하다. 다만 ‘이 사랑은 진짜’라는 직감은 거부할 틈 없이 청자를 잡아먹는다. 이유를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밝힐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마치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순간을 단어로써 설명할 수 없듯이.

“너와 나 사이엔 남들 닿지 못하는 깊이가 있”(‘빅 러브’)다거나 “변하지 않은 건 다이아몬드하고 널 사랑하는 나밖에 없다”(‘다이아몬드’)는 호언은, 때론 귀엽지만 때론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찡하다. ‘러브 이즈 올(Love is all)’이 포크팝의 향취를 아스라하게 불러온다면 ‘한시 오분(1:05)’은 김건모로 대표되는 1990년대 한국식 레게리듬을 대놓고 들려준다. ‘폭죽과 풍선들’이 들려주는 섹소폰은 흥겨움과 애달픔을 오간다. 뚝심 있게 사랑을 밀어붙이는 음반인 것 같다가도 음반에 담긴 정서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아마도 청자의 경험과 감정에서 발생하는 낙차이리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단연 ‘나랑 아니면’이다. 노래를 여는 장엄한 오케스트라 선율은 어쩐 일인지 비극적으로 들리고, 이어지는 멜랑콜리한 무드는 심장을 진흙탕 속으로 거듭해서 패대기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겐 말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게, 심지어 섹시하게 들릴 노래임이 명징하다. 하지만 이별한 사람들에겐 다르다. “나랑 놀자. 어디 가지 말고. 그리울 틈 없도록 나랑 살자”는 고백은 조휴일의 목소리처럼 아스라이 퍼질 뿐이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상대에게 미처 닿기도 전에.

한 번 서글퍼진 기분을, ‘팀 베이비’는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혜야’의 시작을 알리는 오르간 연주와 허밍은 어린 시절 들었던 ‘섬집아기’처럼 고독하기 이를 데 없다. 마지막 트랙 ‘에브리씽(EVERYTHING)’은 기어이 나를 울린다. 연애가 가져다 줬던 짧은 행복, 그 사상누각 같은 덧없음은 뭉근하게 울려 퍼지는 조휴일의 목소리와 기타, 드럼 소리 안에서 재현된다.

음악은 만드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듣는 사람에게도 기록 장치 역할을 한다. 당신이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있는 와중에 ‘팀 베이비’를 듣는다면, 그것은 축복받아 마땅한 경험이다. 하지만 당신이 혹여 이별 후에 이 음반을 듣더라도 부디 너무 씁쓸해하지 말기를.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지나면, 언젠가는 “나랑 아니면 누구와 사랑할 수 있겠니”(‘나랑 아니면’) 물어오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날이 올 테니.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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