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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재정에게 당신의 5분을 허락해주세요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밥벌이가 된 이후부터, 어떤 음악을 들을지 고르는 것은 내게 아주 까다로운 문제가 됐다. 직업적 소명 의식 때문이냐고? 아니다. 시장은 빠르게 돌아가고 들어야 할 노래들은 매일 산더미처럼 쌓인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 대부분은 내가 들어야 하는 음악에게 쏟아야 한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적어진다. 내 남은 시간을 어떤 음악에게 할애할 것이냐. 그 앞에서 나는 자꾸만 신중진다.

“사람들에게 좋은 5분을 만들어주고 싶다”던 박재정의 말에 가슴이 찌르르했던 건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한 가수에게 5분의 시간을 허락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꽤나 큰 결심일 수 있다. 좋은 5분을 만들어주겠다는 박재정의 다짐은 그래서 애틋하다. 시간은 늘지 않는다. 하지만 들어야 할 노래는 무서운 속도로 는다. 어떤 노래를 고를지 선택하는 일은 엄청나게 어렵다. 나도 안다. 하지만 이 정도 결심을 한 사내라면, 한 번 쯤은 5분을 내줘 봐도 좋지 않을까. 장담하건대 아깝지 않은 5분이 될 것이다.

Q. 평소 번화가에는 자주 나오는 편이에요?(인터뷰는 번화가 카페에서 진행됐다)
박재정:
그럼요. 여기저기 잘 다녀요.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도 타고 다니는 걸요. 알아보는 사람이요? 없어요. 설사 알아보더라도 별로 말을 걸고 싶지는 않은 타입인가 봐요, 제가.(일동 웃음) 열심히 하겠습니다.

Q. 연예인이 됐다는 실감은 크지 않은가 봐요.
박재정:
네. 그냥 ‘음악’이에요. ‘나는 음악을 좋아하니까 음악을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Q. 질문을 바꿔볼게요. ‘가수’가 된 걸 실감한 순간은 있었나요?
박재정:
‘시력’을 발표하는 지금이 가장 커요. 어제 ‘인기가요’에서 ‘시력’을 처음 불렀는데 그땐 ‘진짜’ 노래하는 것 같았어요.

Q. ‘진짜’ 노래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박재정: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부를 수 있다는 게, 또 발라드 가수로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제겐 그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고요.

Q. 그렇지 않아도 홍보 자료에 ‘차세대 발라더’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더군요. 소속사의 세일즈 포인트인 줄 알았는데 당신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 표현이었군요.
박재정:
네. 어렸을 때부터 발라드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발라드 가수임을 당당히 얘기하고 실현시키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고요.

Q. 정확히는 2년 걸렸죠.
박재정:
어떻게 해야 음악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자주 노래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조바심이 난 적도 있지만, 그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어요.

Q.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음악의 기준은 뭔데요?
박재정: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 그리고 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요. 그리고 음악적인 영역을 벗어나서, 듣는 사람에게 주는 위로와 공감의 크기에서도 완벽함의 기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Q. 창법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슈스케’ 출연 당시에는 저음이 돋보이는 보컬이었는데 ‘시력’에서는 가수 성시경 씨나 그룹 슈퍼주니어 규현 씨가 스치는 지점이 있어요.
박재정:
가창에 시간을 많이 쏟았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할 때나 댄스 가수 시절에 내던 목소리는 목을 혹사시키는 창법이었어요. 앞으로 오랫동안 노래하기 위해서 목에 피로가 쌓이지 않는 목소리를 연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게 어울리는 목소리를 완성하고 그것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엔 미성을 들려드리려고 노력했어요. 미성이 가져다주는 간절함 같은 것이 있거든요.

Q. 그동안 써왔던 창법을 내려놓고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박재정:
다른 창법을 시도한다기보다는 이제 진짜 시작을 한 거죠. 그동안은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 어떤 창법을 써야 하는지 잘 몰랐었으니까요. 노래의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저를 잘 아는 분이 만들어주는 음악은 확실히 다르다고요. 이번에는 주변 분들로부터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받았어요. 덕분에 이제야 제가 누군가를 위로해줄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맑아지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Q. ‘시력’은 절창을 요구하거나 감정을 폭발시키는 분위기의 발라드가 아닙니다. 오히려 윤종신식 발라드의 연장선 있는 노래처럼 들려요. 그래서 당신이 윤종신 씨의 직계 제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박재정:
사실 ‘시력’도 음역대가 높은 편이라 열창을 하기는 합니다.(웃음) 전략적인 선곡은 아니에요. 윤종신 선생님이 제게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친구’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 있는데, 윤 쌤과 제가 비슷한 형태의 그림을 원하는 것 같아요. 윤종신 선생님, 아니 스승님께 잘 배워서 제 것으로 만들어야죠. 지금은 가수 박재정의 정체성이 올바르게 자리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윤종신 씨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네요. 2년 전 인터뷰에서도 ‘기승전윤종신’ 식의 대답을 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어요.
박재정:
(윤종신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똑같아요. 미스틱에 들어오기 전부터 윤종신 선생님의 음악을 상당히 많이 연구했어요. 노래 내용이 굉장히 문학적이잖아요. 그걸 닮고 싶었고 그래서 제 시작은 윤종신 선생님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Q. 완벽의 기준이 공감과 위로에 있다는 말을 했어요. 당신에게도 누군가로부터의 위로가 절실했던 순간이 있었겠죠.
박재정: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가장 힘들었어요. 저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사랑은 없었던 때죠. 한 번은 동창회에 갔다가 사람들이 제 욕을 하는 걸 들은 적 있어요. 정작 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는데 말이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은 했지만 정리가 안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아서… (힘들었던 때의 기억을) 다 까먹었어요.(웃음)

Q. 그 때 당신에게 가장 큰 사랑을 보여준 사람은 누구였어요?
박재정:
당연히 팬 분들이죠! 저는 지금도 팬 분들이 있어서 제가 노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로이킴 형이요. 두 살 차이 형이지만 제게는 아빠 같은 존재에요. 늘 제 얘기를 들어주고 저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어요. 무턱대고 ‘잘 될 거야’ 위로하는 게 아니라 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조언해줬어요. 냉철하면서도 진심 어린 사랑을 받았습니다.

Q. 어떻게 견뎠어요, 그 시간을?
박재정: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정말 잘하고 싶었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서 시간이 걸린 거예요. 결국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는 게 답이더라고요. ‘두 남자’ 발표를 기점으로 많은 분들이 제게 마음을 열어주신 것 같아요. 가수로서의 문을 열어준 노래죠. 그리고 올해 ‘여권’으로 발라드 가수로서 가능성을 보여드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음악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게 무척 감동적인 이야기로 들립니다.
박재정:
하지만 감동에 마냥 빠져 있고 싶지는 않았어요. 겨우 뭔가 하나를 해냈다고 해서 도취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냥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 음악을 쌓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 이제는 과거에 연연하려고 하지 않아요. 욕을 먹었던 것도 지나간 과거에요.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다는 마음은 빨리 잊는 게 좋아요.

Q. 그건 타고난 성격이에요, 아니면 가수 활동을 통해 얻은 성격이에요?
박재정: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건 얼마 안 돼요. 중요한 건 ‘내가 왜 가수를 했나’, ‘내가 왜 가수를 해야 하는가’라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을 통해 얻었던 위로가 있잖아요. 그게 제겐 기본이 됐어요. 제가 받은 만큼 위로를 드리고 싶고 그러려니 노래를 잘해야겠고…. 어떤 가수가 돼야 할지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습니다.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Q. 주변 사람들에게서 알게 되는 것도 많겠죠. 윤종신 씨는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요?
박재정: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지치지 말라’는 말씀이 가장 많이 맴돌아요.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거든요. 지치면 쉽게 그만두고 싶어지잖아요. 그런 마음을 먹지 않도록 많이 다독여주세요.

Q. ‘시작’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가장 쉽게 지치게 만드는 건, ‘기대’가 아닐까 싶어요.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를 해내는 것도 힘들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우린 크게 낙심하잖아요.
박재정:
기대와 실망은 이미 과거에 다 겪었어요. 말도 안 되는 허황된 꿈을 꾸고 싶지 않아요. 대신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력’이 한 번의 활동을 위해서 나오는 건 절대 아니에요. ‘두남자’와 ‘여권’, 정~말 공을 많이 들여 만들었고 제가 정~말 사랑하는 노래거든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것들이 옛날 음악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해요. 왜냐하면 그 노래들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스물두 살 박재정의 기록이거든요. 그리고 ‘시력’은 현존하는 박재정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악이고요.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음악, 좋은 기록, 좋은 일기장을 가진 가수가 되고 싶어요.

Q. 좋은 일기장을 가진 가수라는 말이 뭉클하게 느껴지네요.
박재정:
그렇죠. 스무 살인가 스물한 살의 댄스가수 박재정도 있는데, 그것도 다~시는 못 올 박재정이에요. 그 노래들 때문에 발라드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으하하.

Q. ‘두 남자’와 ‘여권’, 아직도 많이 들어요?
박재정:
그럼요. 제게 굉장히 큰 힘이 됐던 노래들이에요. 그건 그냥 완전… 진짜 박재정의 시작 같은 노래에요. 박재정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고 솔직하게 들어가 있어요. 제게는 드디어 원하는 음악을 하게 됐다는 감동을 안겨준 노래죠.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가수 박재정(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Q. ‘발라더 박재정’의 시작이라고 명명한 ‘시력’도 훗날 당신에게 평범치 않은 감회를 안길 것 같습니다.
박재정:
그 때까지도 음악을 잘할 수 있도록 제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잘.

Q. ‘열심히’와 ‘잘’의 차이는 자신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을 텐데요.
박재정:
보컬을 표현하는 방식을 윤종신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열심히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혼자서 제 그림을 그리게 되는 날이 오겠죠. 사실 써둔 곡은 많아요. 들려주고 싫은 곡도 있고, 들려주기 무서운 곡, 들려주기 민망한 곡도 있고, 마구 들려주고 싶은 곡도 있어요. 하지만 회사 식구들이 ‘괜찮은데?’라고 말하기 전까지 (제 개인적인 감상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같은 배를 탔으니까 혼자 방향을 틀 수는 없잖아요.

Q. 지금 박재정을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예요?
박재정:
‘글’인 것 같아요. 윤종신 선생님에게 배우거나 윤종신 선생님이 써주시는 글, 혹은 제가 그냥 써보는 글. 그것들이 저를 차곡차곡 쌓아 만들어요. 험난한 겨울에 포근한 패딩처럼요. 어제도 비가 와서 뭘 하나 썼는데… 아, 이거 말씀드리면 누가 기사를 보고 베낄 것 같은데.(웃음) 오글거리지 않는 선에서 윤종신 선생님 같은 뉘앙스로 많이 써보려고 하죠.

Q. 윤종신 씨의 직계 제자, 직계 후손 같아 보여요.
박재정:
아니에요. 전, 발라드계의 ‘인터셉트’가 될 거예요. 하하하. 발라드 계의 왕자가 정말 많잖아요. 심지어 세손도 있고요. 그러니까 저는 ‘인터셉트’가 되는 걸로…. 흐흐.

Q. 대를 가로채서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의미인가요.(웃음)
박재정: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그냥 사람들에게 ‘좋은 5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제 음악을 듣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그 분만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고요. 듣는 분들에게 ‘내 인생의 5분을 박재정으로부터 위로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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