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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봉준호라는 장르의 DNA=너드+덕후+마니아+α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 개봉 당시, 열차 안에 동물 칸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옥자’를 보며 ‘설국열차’에서 성사시키지 못한 동물 칸의 확장 버전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던 건. ‘설국열차’를 추동하는 에너지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향한 비판이었듯 ‘옥자’ 저변에 깔린 것 역시 자본주의 시대의 탐욕이다.

다만 ‘설국열차’에서 꼬리 칸(최하층) 사람들의 주식으로 지도층이 던진 양갱(바퀴벌레 사료)이 저렴한 인력을 확보하려는 계급의 산물이었다면, 유전자 변형을 통해 질 좋게 탄생한 ‘옥자’의 하마를 닮은 돼지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자본의 산물이다. ‘옥자’는 인간의 친구이자 식량인 옥자가 지니는 이중성을 통해 유전자 변형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인 ‘먹는다’는 의미를 잠시 불러 세운다. ‘옥자’를 본 후 불판 위에 울라 온 삼겹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슬며시 눈을 감았다는 후기들은 괜한 게 아닌 셈이다.

옥자의 험난한 여정만큼이나 영화 ‘옥자’가 관객에게 당도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영화는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와 손잡고 제작한 까닭에 제70회 칸국제영화제 초청 논란을 겪었고, 국내 멀티플렉스로부터는 보이콧 당했다. 사실 이 모든 건, 봉준호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작품이 아니었어도 ‘옥자’가 이토록 뜨거운 논란의 아이콘이 됐을까. 영화 안에서 시스템과 혈투를 벌이는 ‘옥자’는 영화 밖에서도 다른 의미의 (극장 배급)시스템과 뒤엉키며 가볍지 않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문제적 남자, 봉준호를 만났다.

Q. (핸드폰 만지작거리고 있는 봉준호 감독을 보며)실시간 관객 수 확인하고 계신건가요?
봉준호:
아니요. 친구 문자에요. (목소리 변조하며 문자를 읽는다) “대학극장에서 1회를 보았어~! 마지막에 울었네? 좌석이 꽉 찼는데 노↗년층이 많아~!”(일동웃음) 아침 일찍부터 이런 좋은 현상이.(웃음)

Q. 친구 분은 대한극장을 찾았군요. 이번 ‘옥자’ 사건으로 추억…
봉준호:
(눈 동그랗게 뜨며 장난스럽게) 아, 사건이라고들 하세요? 으허허허허.

Q. 정정하겠습니다. 논란!(웃음) 추억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감독님은 오래 전 어떤 극장을 애용했나요.
봉준호:
어릴 때 대구에서 살았어요. 대구아카데미 극장에서 ‘로버트 태권브이’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역사의 전통의 만경관도 자주 갔었는데, ‘옥자’ 대구 상영관이 마침 만경관이에요. 그곳에서 ‘옥자’를 하게 될 줄이야.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상경했어요. 그땐 이제…(기자 얼굴 스윽 보더니) 세대가 달라서 모르실 수도 있는데 국도극장, 국제극장, 스카라, 명보를 다녔죠. 명보극장은 최근까지 있었잖아요? 그런 극장들이 2000년대 들어서 조금씩 없어지고, 대한극장과 서울극장만이 서바이브(생존) 했네요. 이전 압구정동엔 시네하우스라는 극장도 있었어요. ‘아마데우스’와 ‘프라하의 봄’이 그 곳에서 상영했었죠.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Q. ‘플란다스의 개’(2000)의 경우 이전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지 않았나요?
봉준호:
그랬죠. 옛날에는 개봉 날 서울극장 앞에 모이곤 했어요. 바로 옆 2층에 있는 ‘팡세’라는 커피숍에 배우와 관계자들이 쭉 둘러 모여 매표소를 내려다보며 노심초사했죠. 관객 줄이 길면 “중국집 가서 탕수육 먹자!”가 되고, 썰렁하면 “자장면 먹자” 이랬어요.(웃음)

Q. 그날의 영화 흥행이 중국집 매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겠군요.
봉준호:
그렇죠.(웃음) ‘플란다스의 개’ 개봉 때는 파리가 엥엥엥~(웃음) 당시 함께 개봉한 게 뤽 베송의 ‘잔다르크’였는데 그 영화는 줄이 쫘~악이었어요. 지금은 모인다는 행동 자체가 사라졌는데, ‘살인의 추억’(2003)때까지만 해도 서울극장 앞에서 모였어요. ‘살인의 추억’ 개봉관수가 190-200개 정도였는데, 그 상영관 수로 500만 관객을 동원했어요. 대신 상영기간이 길었죠. 3월 말에 개봉해서 7월까지 걸려있었으니까. 그러다가 개봉 패턴이 바뀌었죠. 개봉관은 많아지고 기간은 짧아지는 쪽으로요.

Q. ‘옥자’가 그 패턴을 다시 보여줄 수도 있겠네요.
봉준호: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게 또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되잖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케이스니까요. 다들 신기해하면서 ‘이게 어떻게 되려나’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요.

Q. 첫날부터 불법 파일로 뜨거워요.
봉준호:
그건 당연히 예상했어요. 동시개봉까지 했으니. 관계자 분들이 잘 막아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Q. ‘설국열차’(2013) 인터뷰 때 “열차 안에 동물 칸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셨어요. 그래서일까요. ‘옥자’를 보며 ‘설국열차’에서 성사시키지 못한 동물 칸의 확장 버전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봉준호:
맞아요. 한을 푼 거지. ‘괴물’ 때도 그런 비슷한 질문을 받았어요. “‘괴물’은 가족 중심으로 굴러가는 스토리인데, 왜 이 가족엔 엄마도 없고 할머니도 없느냐”고.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 했어요. “다음 영화가 ‘마더’다! 2시간 내내 주구장창 마더만 나온다! 마더의 끝을 보여 드리겠다”라고요.(일동웃음)

‘설국열차’ 때 동물 칸을 정말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한 칸을 위해 동물 CG를 하기엔 예산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시나리오 단계에서 정육점 칸으로 대체하고 피해갔죠. 그때의 아쉬움을 이제 ‘옥자’에서!(웃음) 다만 두 시간 내내 돼지가 출몰하다보니, 또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나오고 말았죠.

▲'옥자' 초창기 드로잉(사진=넷플릭스 제공)
▲'옥자' 초창기 드로잉(사진=넷플릭스 제공)

크리쳐 CG를 하게 되면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준비를 야무지게 해야 해요. 마음대로 컷 수를 늘렸다 줄였다하면 예산이 엄청 뛰거든요. 그래서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세밀하게 조절했는데, ‘옥자’는 아무리 해봐도 300샷은 나올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실제로 296샷이 나왔어요. 그런데 한 샷 당 가격이 어마어마해요. 샷 하나 가격에 웬만한 전셋집 가격이 휙휙 날아갈 정도죠.(웃음) 그러다보니까 영화가 500억이 넘는 예산으로 세팅됐고, 그러다보니 또 미국 쪽 회사를 찾아가게 된 겁니다. 아시아나 한국 회사가 커버 할 수 있는 예산 범위가 아니니까요. 그게 오늘까지 오게 된 거죠.

Q. 300샷이 어느 정도인지 비교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봉준호: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 등장하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몇 컷 나왔는지 아세요? 굉장히 많아보는데 실제 세어보면 120여 컷밖에 안 돼요. ‘옥자’가 300컷이었으니 상당한 거죠. 물론 제작비 2000억-3000억 하는 ‘어벤져스’ ‘트랜스포머5’ 같은 블록버스터는 개념 자체가 달라요. 그런 영화들로 인해 미국에 있는 CG·VFX 회사들이 다 먹고 살죠. 한 작품을 여러 회사(6-7개)가 하거든요. 샷을 나눠서 말이죠.

Q. ‘옥자’는 어땠나요.
봉준호:
두 회사가 참여했어요. ‘옥자’ 자체에만 집중한 건 <메소드>라는 회사에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호랑이를 만든 에릭 얀 드 보어라는 슈퍼바이저가 있는 팀이죠. 그 팀에 있는 150명 정도가 옥자 하나에 매달렸어요. 그 외에도 복잡한 CG들이 많아요. 가령 도살장의 고깃덩어리라든지, 뉴욕행사 퍼레이드 할 때 풍선이라든지, 모든 게 CG거든요. 그건 한국의 ‘포스 크리에이티브’란 회사가 담당했어요.

Q. ‘라이프 오브 파이’를 만든 회사라면 <리듬 앤 휴즈> 아닌가요? 지금은 파산한.
봉준호:
맞아요. 그 회사가 ‘라이프 오브 파이’로 오스카상까지 받았는데 도산했죠. 개인 아티스트들 회사를 꾸준히 옮겨 다니는데, 에릭 얀 드 보어가 <리듬 앤 휴즈> 파산 후 <메소드>로 왔어요. <메소드>라는 회사는 ‘설국열차’ 때 수족관 CG를 한 회사인데, 그때 신뢰가 생겼어요. 엄청 잘 해요. 미국 감독들이 “그 수족관 어디서 찍어서 합성했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그런 소릴 들으면 감독 입장에선 되게 뿌듯했죠. “모두 CG다, 이놈들아~” 이랬죠.(일동웃음) 아무튼 타이밍이 좋았어요. 신뢰하고 있던 스튜디오에 마침 우리가 필요로 하는 아티스트가 와서 ‘옳다구나!’ 했죠.

Q. 만약 미국에서 투자를 못 받았다면 ‘옥자’는 나오지 못했을까요?
봉준호:
미국에서도 좌절됐으면 아마 최후의 수단으로 중국에 갔을 겁니다. ‘판빙빙이 미자를 해야 하나~’이랬을 텐데, 중국은 여전히 제 입장에선 불확실한 세계였어요. 한국에서 억지로 몇몇 투자사를 합치고 펀드 끌어다 하면…하, ‘이건 시작부터 고도의 민폐겠구나, 후배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겠구나’ 했죠.

사실 ‘설국열차’때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요. 그때 CJ가 과감하게 전액투자를 해 주셨어요.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투자를 받기 위해 분투를 벌이는 입장에서는 어땠겠어요. 실제로 “형 작품이 결정 안 나서, 우린 지금 대기 중이야”라는 이야기를 후배에게 들었죠. “박찬욱 감독님은 그래도 사이즈 작은 영화를 하시니까 괜찮은데, 형이랑 운사마(김지운 감독)는 영화 덩치가 꽤 되니까 밖에서 해결해”라는 말도요.(웃음) 김지운 감독도 그래서 ‘밀정’(2016)을 워너브라더스와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확실하진 않아요. 그런데 감독들 입장에서도 투자 선택지들을 넓히는 건 좋죠. 그래야 투자하는 쪽에서도 콘텐츠를 놓고 경쟁을 할 테고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Q. 반대로 스튜디오로부터 3000억을 투자받았다면 어땠을까요?
봉준호:
그랬다면 투자사들이 저의 손발을 꽁꽁 묶었겠죠. 제가 찍은 것 중에서 자기들 마음에 드는 것만 취해서 몰고 갔겠죠. 스튜디오들은 항상 그렇게 하니까요. 크리스토퍼 놀란 이런 사람들은 대단해요. 그 와중에 살아남아서 지금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위치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과정을 겪어낼 자신이 없어요. 성격이 편협해 가지고.(일동웃음) 누가 뭐라고 하면 너무 싫어요. 이안 감독님은 인품이 좋으셔서 그런 걸 잘 견뎌내신 것도 같고.(또 일동 폭소)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적당히 스튜디오 말을 들어주다가 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누가 뭐라고 하면 되게 못 견뎌요. 그래서 저는 저의 통제권에 있는 작은 사이즈의 영화만 하려고요.

Q. 작은 사이즈라…이것 역시 상대적이니까요.(웃음)
봉준호:
다음 준비 중인 ‘기생충’은 ‘마더’ 정도의 사이즈로 계획하고 있어요.

Q.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는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하셨습니다. 박찬욱-김지운 감독님도 할리우드에 갈 때 촬영만큼은 한국 촬영감독과 했는데요. 이전에 그 이유를 “감독과 촬영감독은 부부관계 같기에 소통을 위해서”라고 하셨죠. 그래서인지 이번 ‘옥자’의 다리우스 콘지 촬영 감독이 눈에 더 들어옵니다.
봉준호:
‘설국열차’ 컬러리스트(색보정기사)가, 루카스 이반이라는 프랑스 사람이에요. ‘설국열차’ 작업을 하면서 친해졌죠. 그 친구가 이전에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1995)를 다리 형(봉준호가 애칭으로 부르는)과 함께 했었는데, 저에게 “다리우스 콘지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소개 시켜줬어요. 다리 형이 사진으로만 보면 인상이 다소 험악한데 실제로는 되게 스윗해요. 제 작품 중에 ‘마더’(2009)를 좋아하더라고요. 첫 인사 후 오며가며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옥자’를 함께 하게 됐죠. ‘기생충’은 다시 홍경표 감독님과 하기로 얘기 중에 있어요. 이후 다시 작은 사이즈의 미국 영화를 준비하는 게 있는데 그건 또 다리우스랑 논의 중인 상태고요.

Q. 아닌 게 아니라, 도살장 장면의 경우 ‘델리카트슨 사람들’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보면서 저건 봉준호의 색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리우스 콘지의 인장이 많이 묻어난다고 생각했어요.
봉준호:
그럼요. 그러려고 함께 작업하는 거니까요. 서로의 감수성과 느낌을 뒤섞는 거죠. 그래서 감독-촬영은 부부관계 같다고 하는 것이고요.

Q. 봉준호 작품에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비법은 뭘까요.
봉준호:
제 입으로 어떻게, 난감하게~(웃음) 제가 그 양반들을 좋아해요. 좋아서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거죠. 한국 아티스트든 외국 아티스트든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비슷해요. 일에 대해서는 냉정-살벌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린애 같은 면모가 있어요. 틸다도 그렇고 다리 형도 그렇고, 김혜자 선생님도 그러시죠. 홍경표 촬영감독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부분을 서로 확인하면 되게 마음이 편해져요. “쟤도, 유치하구나!” 하면서. 어린애 같다는 걸 미국 쪽에서는 ‘너디(nerdy)하다’고 하더라고요. 너드(nerd). 우리 팀을 보면 카리스마보다는 ‘덕후’ 내지는 ‘너디’한 부류가 많아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모이게 되는 것 같아요. 유유상종이니까.

Q. 너드. 이건 감독님 영화의 특징이기도 한데요, 너디한 캐릭터 만들기에 각별한 소질을 보유하고 계시잖아요?(웃음) 이번 ‘옥자’도 그렇고요.
봉준호:
하하하. 그렇죠. ALF(동물보호단체) 애들도 좀 너디하죠.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Q. 네. 다들 나사 하나 빠진 듯 하죠. 그런데 뭐랄까요. 이러한 캐릭터들이 그 자체로는 상당히 흥미로우나, 그것이 영화가 품은 거대 메시지의 활력을 다소 잡아먹는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어요.
봉준호:
지금보다, (캐릭터들이) 조금 더 정색했으면 좋았겠다?

Q. 네. 캐릭터들이 좀 달뜨지 않나 하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봉준호:
지금 말씀하신 것의 반대되는 관점이신 분들도 있던데, 이런 복합적인 반응이 나오는 게 감독으로서는 참 좋습니다. 일단 캐릭터 대부분이 이상한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게 기본 컨셉이었어요. 미자(안서현)와 옥자를 빼면 다들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하는 느낌이길 바랐죠. 폴 다노(제이 역)도 시작할 땐 반듯한 척 하지만, 역시 뒤로 갈수록 이상해지고요.(웃음)

Q. 폴 다노, 가장 묘하던걸요.(웃음)
봉준호:
네. 명상적인 변태라고 해야 하나. 폴 다노라는 배우 자체가 그런 기운이 있기도 하고요.(웃음) 너디한 인물들 그 정점에 있는 게 제이크 질렌할입니다. 의도적으로 극단적인 연기를 요구했어요. 이 영화는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옥자와 미자를 둘러싼 미친 세상의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모든 캐릭터들을 만화적으로 그렸습니다.

Q. 기자회견 때, ‘옥자’ 최적의 관람 장소로 4K 상영관 ‘부산 영화의전당, 파주 명필름아트센터, 건국대학교 KU시네마테크’를 추천하셔서, 세 극장이 수혜 아닌 수혜를 입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하… 그때 조금 더 광범위하게 짚었어야 했는데…(한숨) 주요 극장들을 많이 누락시켜서 어찌나 안타까웠는지. ‘옥자’가 처한 상황이 특수하다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나도 SNS를 해 볼까?”하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Q. 흠… 퍼거슨 감독의 말씀을.(“SNS는 인생의 낭비다”)
봉준호:
그러니까요. 30분 정도 고민하다가 퍼거슨 경 말을 떠올렸죠.(웃음) 그걸 관리할 자신도 없고요. 트위터는 커녕 블로그나 카페, 페이스북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여전히 종이 신문을 보는 저에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Q. 4K를 시작으로 <‘옥자’ 관람 최적의 극장>이 SNS를 통해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고, 그러한 움직임이 실제로 일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굉장히 복 받은 감독이란 생각을 했어요. ‘어떤 감독이 만든 작업물을 최상의 상태에서 보고 싶다’는 관객들의 마음이 반영된 건데요, 이는 모든 감독이 누릴 수 있는 건 아니죠.
봉준호:
다리우스와 참 여러 가지 고민들을 했어요. ‘옥자’는 넷플릭스가 기획한 영화가 아닙니다. 저희 프로듀서들이 독자적으로 기획을 한 작품이고, 틸다 스윈튼·폴 다노·제이크 젤렐할이 캐스팅 된 상태에서 미국 플랜B와 파트너십을 맺은 경우죠. 이후 플랜B의 권유로 넷플릭스에 안착하게 된 거고요.

Q. 태생은 확실히 ‘극장 영화’에서 출발했다는 말씀이군요.
봉준호:
네.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옥자’를 35mm 필름으로 찍으려고 했어요. 저나 다리우스 둘 다 워낙 필름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넷플릭스로 결정이 되면서 계획 변경이 필요했어요. 4K디지털 오리지널 소스가 넷플릭스 방침이거든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Q. 엇! 그게 원칙이란 건 몰랐습니다.
봉준호:
스트리밍 업체로서 4K가 프로토콜 같은 거더라고요. 회사 원칙은 존중해야 하잖아요? 어차피 디지털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강하게 가자고 해서 다리우스가 알렉스65 카메라를 제안한 겁니다. “정말 시네마틱 하고, 디지털이지만 70mm 필름 같은 효과를 낸다”면서요. 그런데 그게 데이터 용량이 어마어마해요. 카메라 자체 렌탈 가격도 비싸고요. 저는 좋은데 프로듀서들 얼굴에 근심이 지더라고요. 영화 모든 단계에서 비용이 상승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다리우스의 테크놀로지적인 욕심을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죠.(웃음)

Q. 촬영감독들의 장비에 대한 열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웃음)
봉준호:
네. 프로듀서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결국 다리우스가 직접 넷플릭스 사장에게 편지를 썼어요. 사장은 또 다리우스를 존경하니까 “왜 진작 이야기 안 했냐?”하면서 알렉사65를 하나 더 보내줬고요. 공짜로요. 그래서 알렉사65, 2대를 가지고 ‘옥자’를 찍게 됐죠.

Q. 또 한 번 ‘엇!’ 하게 되네요. 2대였다니.
봉준호:
전 세계에 그게 12대 있을 거예요. 그 중 2대를 저희가 쓴 거죠. 카메라가 알렉스65로 결정됐을 때 다리 형이 좋아서 서교동 사무실 앞에서 춤을 추더라고요. 제가 알기로 알렉사65로 전편을 찍은 건 저희 영화가 두 번째. 첫 번째는 벤 애플렉이 연출한 시대극인데, 그건 영화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는 일부가 알렉사65로 찍혔고요.

Q. 아마도 <옥자>는 감독 전작들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봉준호 영화답지 않다’거나 ‘봉준호 작품들 중 가장~’ 식의 후기들이 예상되는데요. 관객들에겐 각자가 생각하는 봉준호스러움에 어떤 기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봉준호:
다음 작품이 어때야 한다는 건 없어요. 저는 그때그때 꽂히는 걸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저의 작품 순서는 그냥 꽂힌 순서에요. 빅픽처가 있다거나, 제2의 김기춘스러운 자아가 저를 컨트롤해주고 하는 건 없습니다.(일동폭소) 그리고 제가 아직 작품 수(6편)가 많지 않기에 뭔가를 일반화시켜 이야기하기엔 적절치 않은 것 같아요. 작품 수가 적어도 두 자리는 돼야 뭔가를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안개 속을 해매고 있는 것 같아요.

Q. 처음 시작할 때의 영화와 지금의 영화는 감독께 완전 다른 개념으로 다가가나요?
봉준호:
영화 환경은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어요. 제가 찍고 싶은 영화는, 제가 보고 싶은 영화예요. 저는 아직도 관객내지는 영화 마니아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요. 이기적인 관점일 수 있는데 기준선 상에 놓는 관객이 항상 ‘나’인 거죠. 그런데 그게 마음을 상당히 간결하게 만들어줘요. 거기에 여러 가지가 뒤엉키기 시작하면 길을 잃을 것 같아요. 제가 보고 싶은 것을 찍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영화를 해 올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요.

Q. ‘봉준호의 스크린 잔혹사’라 부르고 싶군요. ‘괴물’때는 스크린 독과점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설국열차’ 때는 편집권 문제로 미국 개봉에 애를 먹었고, 이번 ‘옥자’는 넷플릭스 작품이기에 멀티플렉스로부터 보이콧을 당했습니다.
봉준호:
그리고!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여러분들이 잘 모르는 저의 고난이 또 많아요. “저 양반은 모든 걸 수월하게 준비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건 사실 착각입니다. 제가 평화롭게 찍은 건 ‘마더’ 밖에 없었어요. ‘괴물’은 그 앞에 ‘살인의 추억’이 흥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사들로부터 엄청 많은 거절을 당했어요. “아니 한강에서 웬 괴물?” “CG는 어떻게 할 거야?” 등등 그 부분에서 최후의 신뢰를 받지 못한 거죠. 결국 ‘괴물’은 일본에서 절반 투자를 해주고, 쇼박스가 들어오고, 프랑스에 선판매하면서 간신히 메이드 해서 찍었어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괴물’ 이후 ‘마더’는 작은 영화였잖아요? 그때 유일하게 별 탈 없이 쭉 찍었어요. 반면 ‘설국열차’는 미국 배급을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하면서 편집 문제로 거의 1년 가까이 지지고 볶고 싸웠어요. 결론은 디렉터스컷 개봉으로 해피하게 났는데, 그 1년간의 과정은…책 한 권 분량의 구구절절한 에피소드가 있어요.(웃음) 그 와중에 또 ‘옥자’에 착수했는데, 이건 제작비가 500억이 넘는 다는 거예요.(웃음) 제가 그러니까 데뷔 17년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프로듀서적 측면의 관점이 많이 미흡해요. 다음 작품을 더 수월하게 찍을 수 있는 과녁 안으로 좁혀나가는 게 필요한데, 시나리오를 쓸 때 열망을 제어 못하는 거죠.

Q. 그럼에도 열망이 결과물로 여러 번 이어졌다는 점이 각별한 것 같습니다.
봉준호:
항상 운이 따랐던 것 같아요. 제게 ‘인생은 모험이고, 도전이야’ 하는 철학은 전혀 없거든요. 저, 도전 싫어요.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웃음) 앞으로 다 ‘마더’처럼 하고 싶습니다.

Q. 감독님 DNA상 불가능하다에, 한 표 던집니다.(웃음) 참. 옥자 칸이 ‘설국열차’에 있었다면, 꼬리 칸 사람들은 바퀴벌레 프로틴바를 먹지 않아도 됐을까요?
봉준호:
하하하하하. 아니요. 그건 앞 동네서 먹었겠죠. 윌포드(에드 해리스)가. 최고의 퀄리티니까요.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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