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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시선] ‘팬덤’에서 ‘프로슈머’로…아이돌 산업의 진화

[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비스트 콘서트 '2016 THE BEAUTIFUL SHOW'(사진=큐브엔터테인먼트)
▲비스트 콘서트 '2016 THE BEAUTIFUL SHOW'(사진=큐브엔터테인먼트)

아이돌이 우상으로 꼽히던 때가 있었다. 팬들은 자신의 ‘오빠’들을 위해 밤샘을 두려워 않고 방송국 앞에 진을 치거나, 모 은행 앞에 줄지어 앉아 오빠들의 콘서트 표를 사기 위한 치열한 입금 전쟁에 뛰어들었다. 콘서트만 하면 거대한 플래카드와 함께 팬클럽을 상징하는 형형색색의 풍선을 들고 피를 토할 듯한 기세로 오빠들을 응원했다. 오빠들의 DNA를 앞세운 액세서리마저 판매 수단이 되던, 맹목적으로 오빠들을 따르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더 이상 ‘오빠’ 부대는 없다. 대신 우스갯소리로 ‘어빠’(어린 오빠의 준말)라는 표현이 따라 붙는다. ‘통장’으로 키운 ‘내 새끼’라고 하면서도, 아이돌이 자신들을 그저 ‘ATM’으로 볼 경우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주체적인 모습을 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 팬덤 문화도 많이 변했다. 오빠들을 연호하며 울부짖던 소녀들은 어느새 잘 자란 성인이 됐다. 소녀들이 자랐듯 오빠들도 나이를 먹었고, 무럭무럭 자란 새로운 아이돌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그리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기획사에서 잘 만들어진 아이돌이 있는가 하면, 프로그램을 통해 노골적으로 시청자들의 ‘육성’을 바라는 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필두로 어느 순간부터 팬들은 스타를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됐다. 지난 2009년 첫 방송된, 대한민국을 오디션 공화국으로 만든 Mnet ‘슈퍼스타K’를 필두로 시청자들은 단순한 시청자이자 아이돌 시장의 소비자(Consumer)가 아닌, 출연자를 키워내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문자 투표’로 자신이 응원하는 출연자를 오디션 우승자로 만들어낼 수 있는 등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증가하게 됐다.

▲Mnet '프로듀스101 시즌2'(사진=Mnet)
▲Mnet '프로듀스101 시즌2'(사진=Mnet)

이후 아이돌 시장의 수요층들은 구매력을 가진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소비를 하고자 생산자(Producer)의 영역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산업 전반에 걸쳐 등장하기 시작한 ‘프로슈머’(생산적 소비자)가 아이돌 시장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SNS 등을 통해 세력 집결이 용이해진 점과 온라인 플랫폼 등의 발달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낼 기반이 조성된 점이 주효했다.

이미 변화의 기운이 감지됐던 아이돌 시장에 프로슈머가 나타난, 보다 더 본격적인 계기는 2016년 첫 선을 보인 Mnet ‘프로듀스 101’이다. ‘프로듀스101’은 아예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로 모시며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해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데뷔를 성사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과 ‘믹스 앤 매치’, ‘식스틴’ 등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시작된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는 팬덤의 풍토는 ‘프로듀스101’을 거치며 좀 더 노골적으로 변모했다. 다양한 데뷔 서바이벌이 아이돌의 데뷔 과정 그대로를 공개하며 팬들과의 유대감을 키운 것에서 더 나아가 ‘프로듀스101’은 아예 그룹 자체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의 일부를 수요층에 위임한 것이다.

이는 기존 팬덤에 없던 주체성을 마련해주며 아이돌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단초가 됐다. ‘컨슈머’에서 ‘프로듀서’ 영역에 진입하게 된 팬덤에는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수동적으로 기획사에서 내놓는 홍보수단을 보고 만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양방향 소통으로 비견되는 ‘프로듀싱’을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팬덤은 ‘프로슈머’가 돼 함께 스타를 만들어 나간다는 개념이 됐다.

◆ ‘프로슈머’가 된 팬덤… 사비 들여 이미지 마케팅 공세

▲전광판 광고를 통해 Mnet '프로듀스101 시즌2'의 연습생을 응원한 팬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전광판 광고를 통해 Mnet '프로듀스101 시즌2'의 연습생을 응원한 팬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팬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직접 내 가수를, ‘내 새끼’를 홍보하고자 한다. ‘개념돌’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팬들이 나서 봉사활동이나 기부 등의 개념 있는 행보를 하기도 한다. 팬레터를 쓰고 플랜카드를 만드는 데서 진일보해 아예 스타를 마케팅하는 영역까지 들어온 것이다. 이 같은 팬덤의 홍보 방식을 ‘영업’이라고 일컫는다.

더 많은 팬들을 모으고자 하는 팬덤의 ‘영업’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훈훈한 면모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생활의 소소한 부분을 파고드는 영업이 있다. 비교적 전통적인(?) 홍보 방식도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대중교통을 활용한 광고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이나 데뷔일이면 지하철 등의 광고판을 통해 이를 만천하에 알리고자 한다. 각종 미사여구와 사랑이 담긴 말로 ‘내 새끼’의 기쁜 날을 축하한다. 과거 팬들이 학창시절 주변 친구들에 사탕과 함께 아이돌의 생일을 알렸다면, 이제는 월급이라는 자본을 업고 더욱 대대적으로 홍보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물론 이는 결코 적은 값이 아니다. 지하철 광고판 하나당 역 주변 유동인구에 따라 1달 기준 120만원 내외에서 500만원 안쪽까지 호가할 정도다. 지하철 역사 내에 있는 기둥형 영상 광고는 몇 호선인지, 어느 역인지 등 위치와 그 등급에 따라 1달 기준 기본 200만 원선에서 700만 원대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강남역, 홍대입구역, 압구정역, 건대입구역, 고속터미널역, 신사역 등 유동인구가 많을수록 그 가격은 더욱 치솟는다.

지하철 외에도 버스 광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홍보방법에서 더 나아가, 팬들은 카페를 통해서도 영업에 나선다. 카페의 진동벨부터 시작해 컵 홀더, 쟁반에 까는 시트지 등을 통해서도 아이돌의 신곡 및 컴백 등을 광고한다. 대형마트의 카트에 부착된 광고판을 이용하기도 한다.

◆ 확대된 영업 방식… 영화관·지하철·숲으로 광고하고 기부로 선행하고

▲7월 한 달간 운영된 서울지하철 3호선 지드래곤 열차(사진=온라인 커뮤니티)
▲7월 한 달간 운영된 서울지하철 3호선 지드래곤 열차(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여기서 조금 더 스케일이 커지는 경우도 있다. 버스 전체를 래핑해 돌아다니는 광고판으로 활용하거나 영화관의 한 관을 통째로 대여하는 것과 뉴스용 전광판을 이용한 광고 등이 바로 그 예다. 한 층 전체가 지코로 도배된 홍대CGV ‘지코층’과 지난 6월 운영된 강변CGV 방탄소년단관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 ‘성지’로 꼽힌다.

지하철 역사가 아닌 지하철을 통째로 광고 도구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지하철을 통해 한 달 동안 광고할 경우 그 비용은 3호선 기준 1량에 715만 원, 10량 전체는 5720만 원 선에 이른다. 최근 빅뱅 멤버 지드래곤의 컴백을 응원하기 위해 팬들이 지하철 3호선 열차 1량에 지드래곤의 얼굴과 새 앨범 문구를 바닥과 벽면 등에 래핑한 ‘권지용 열차칸’을 꾸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기부와 봉사활동, 숲을 조성하는 것은 이미 팬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워너원으로 데뷔를 앞둔 Mnet ‘프로듀스101 시즌2’의 1, 2위인 강다니엘, 박지훈의 팬들은 이들의 이름으로 유기견 보호센터 및 나눔의 집, 어린이병원 소아병동 등 다양한 단체에 1000만 원 상당의 돈을 기부하는 선행을 펼치기도 했다.

팬들이 생일 등을 기념해 모금을 받아 조성하는 숲들도 다양하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샤이니, 인피니트, 엑소, 신화 숲 등 다수의 인기 그룹들의 숲이 국내외로 즐비해 있다. 브라질에는 서태지 숲이 지난 2012년 완성됐고, 중국에는 현지 팬들이 조성한 신화 숲이 지난 6월 조성됐다.

◆ 객체에서 주체로… 더 이상 팬덤은 乙이 아닌 甲

▲문희준에 대한 지지 철회 성명을 발표했던 H.O.T. 갤러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디시인사이드 H.O.T. 갤러리)
▲문희준에 대한 지지 철회 성명을 발표했던 H.O.T. 갤러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디시인사이드 H.O.T. 갤러리)

팬들이 직접 사비를 써가며 ‘내 새끼’를 영업하기 시작한 만큼, 그 영향력 또한 크게 증대했다. 이제는 더 이상 ‘오빠’들에 싫은 소리를 하지 못 했던 소녀들이 아니다. 언제나 소속사 앞에서 ‘을’(乙)의 위치에 서있을 것만 같았던 팬들은 이제 주체적인 ‘갑’(甲)의 위치에서 아이돌들을 재단한다.

아이돌은 ‘10대들의 우상’이라는 피상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가상 연애의 이미지를 파는 직업으로 변모했다. 그런 만큼 아이돌의 현실 연애는 곧 피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조공이라고 불리는 고가의 선물공세와 각종 서포트를 아끼지 않는 팬들이지만, 가상 남자친구(혹은 여자친구)의 이미지를 소비하려 한 팬들의 기대를 반(反)한 대가는 참혹하다.

팬이었을 땐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깨지지 않는 ‘실드’(방패막)가 돼주지만, 연예인이 대놓고 팬을 ‘봉’으로 본다거나 연애사실을 티내는 등 팬을 기만한다고 여겨질 만한 행동을 할 경우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이때의 팬들은 보이콧 선언은 물론 안티 세력으로 곧장 돌변, 그동안 감춰줬던 허물까지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가 되기도 한다. 해당 아이돌의 콘텐츠를 최전방에서 소비해왔던 팬들의 컴플레인은 오뉴월의 서리보다도 무섭다.

최근 화제가 됐던 문희준 팬덤의 보이콧 선언과, ‘프로듀스101 시즌2’ 당시 여자친구와 연애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한 연습생에 대한 팬들의 질타는 요즘 시대의 팬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가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모습이 담긴 파파라치가 공개됐을 당시 한 팬이 기고한 글은, 과거와는 다르게 현재의 팬이 주체성을 갖고 아이돌 산업을 소비‘해주는’ 위치에 섰음을 단면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아이돌은 자유연애를 하고 싶은 권리 이전에 상품으로 포장돼 진열대에 놓여있던 거고, 팬들이 돈을 지불해서 그 상품을 집은 거거든요. (중략) 한 번 아이돌로 포장된 이상 자유연애? 그런 게 어디 있나요. 아이돌은 이미 데뷔 때부터 자유공개연애와 아이돌이라는 신분을 ‘등가교환’한 신분입니다.”

김예슬 기자 yey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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