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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의 아무말이나] 베드신이 있는 한국영화를 찾습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사진= 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사진= 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최근에 동영상 채널로 서비스되는 영화 큐레이션 콘텐츠의 진행을 맡았다. 개봉영화를 소개하고 깊이 읽는 동영상 채널이 주목받는 요즘의 유행에 편승하고자 하는 얄팍한 신념이 우선했다는 걸 숨기지는 않겠다. 그래도 차별을 두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훑기보다는 한두 개의 특정 장면에 주목해 우물 속에서 물을 기르듯 깊이를 부여하고 싶었다.

고심해서 잡은 주제가 ‘베드신’이었다. 섹스 장면 말이다. 엇! 여기저기서 ‘저런 음흉한 놈’ 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맞다, 나 변태다, 라고 인정하기에 앞서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는 걸 변명하고 싶다. 갈수록 베드신이 등장하는 영화가 줄어들고 있다는 아쉬움이 하나요, 그럼으로써 한국 극장가에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걱정에서다.

영화 속 베드신은 흔히 눈요깃감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살펴보면 꽤 많은 의미와 주제가 내포된 영화의 중요한 표현 도구, 즉 미장센의 하나다. 공식 메이킹북 ‘아가씨 아카입’으로 다시금 관심을 끌고 있는 ‘아가씨’(2016)의 베드신은 남성 지배의 끈적한 거미줄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성의 저항이 테마다. 예컨대,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가 코우즈키(조진웅)와 백작(하정우)의 일방적인 복종과 다스림의 세계를 탈출하고는 자축하기 위해 나누는 섹스, 일명 가위 치기 체위는 동등한 눈높이에서 이뤄지는 자세인 이유로 연대를, 남성 성기를 싹둑 자르는 듯한 모양이 여성의 자유를 상징한다.

베드신은 그 어떤 장면보다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드시 소용되는 바가 부재한 베드신은 맥락이 거세된 포르노와 다르지 않다. 그만큼 창작자의 입장에서 베드신 묘사는 힘들다. 그렇지만, 영화의 주제와 맥락을 함께하는 완성도 높은 베드신은 해당 작품을 과감하게 만들고 표현의 수위 또한 풍성하게 하며 영화의 질도 높인다.

이처럼 볼거리로 단순화되는 베드신의 여러 층위를 소개하고 싶어 시작한 게 바로 앞서 설명한 영화 큐레이션 콘텐츠다. 너무 구작 위주로만 가면 조회수를 높일 수 없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생각에서 가끔 신작, 이왕이면 한국영화로 선정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인상적인 베드신을 볼 수 있는 한국영화가 별로 없다. 2017년만 해도,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 딱 한 편이다. 마음에 둔 남자 제자가 갓 부임한 젊은 여자 선생과 체육관에서 몰래 나누는 정사를 기간제 교사가 엿보는 장면이 그것이다.

베드신이 부재한 한국영화가 말하는 바는 자명하다. 안전 위주의 소재로 가고 있고 표현 수위가 고만고만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천만이라는 허황한 숫자에 함몰하여 최대한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12세 혹은 15세 관람가 영화 제작을 선호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결과를 얻으면서 따라 하는 작품이 늘어났다. 고로, 지금 한국영화계는 감독의 창작력에 자유를 주기보다는 제작자와 투자자가 선호하는 콘텐츠 위주로 산업이 굴러가는 형편이다.

음, 쓰다 보니 베드신을 테스트 키트 삼은 한국영화 산업의 현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거창하게 갈 생각은 아니었다. 과감한 묘사가 줄어드는 한국영화가 재미없어진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군함도’‘택시운전사’ 등 역사를 다루는 연출자의 태도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도 필요하지만, 베드신을 도마에 올려놓고 오가는 격렬한 다툼도 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벌써 18년 전 일인데 ‘거짓말’ 사태가 떠오른다. 장선우 감독 연출의 영화에 대해 1999년 당시 영상등급위원회에서는 ‘미성년자와의 변태적인 성관계와 가학 행위를 여과 없이 묘사해 사회 통념에 어긋난다’고 등급보류 결정을 내려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사태의 논평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거짓말’ 사태 이후에 표현 수위를 둘러싼 한국영화의 묘사 범위가 과연 넓어졌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겉보기에는 넓어진 것 같다. ‘아가씨’가 다루는 동성 간의 섹스 장면은 적어도 ‘거짓말’이 발표됐던 당시만 해도 용납되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표현 수위의 범위가 확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영화들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비단 거대 제작사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예전과 같은 화끈한(?) 작품이 나오지 않아 침체한 느낌이다.

요는 잔잔한 수면의 상태로 유지되는 영화계에 인상적인 베드신의 영화가 등장해 소동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는 조용하게 흘러가는 게 가장 좋지만, 문화예술계는 시끄러워야 제맛이다. 그런 가운데서 진보하고 새로움이 탄생한다. 특히 영화계는 영화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작품과 관련한 생산적인 논쟁이 사라진 듯한 분위기다. 베드신으로부터 출발해도 좋을 것 같다. 베드신이 등장하는 더 많은 한국영화를 보고 싶다. 그래야 내가 진행하는 영화 큐레이션 콘텐츠의 목록도 다채로워지지 않겠는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edwo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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