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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리뷰] 위태로운 말(言)의 전쟁, ‘남한산성’

[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남한산성’ 김윤석,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남한산성’ 김윤석,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여기 두 충신이 있다. 심약한 왕에게, 두 사람은 저마다의 의견을 설파한다. 둘의 의견은 극명히 대립된다. 접점 없이 팽팽한 평행선을 달린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비(是非)를 가릴 수는 없다. 언어의 전쟁 속, 그렇게 영화는 과거의 아픔을 마주한다.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대군을 피해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에 고립된 채 보냈던 47일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원작소설에 바탕을 둔 탄탄한 스토리와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등의 스타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영화는, 역사를 다루되 배우들에 크게 기대지 않는다. 다만 칼날처럼 날카롭고 횃불처럼 타오르는 대사들로 당시 조선에 닥친 팽팽한 기운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배우들은 저마다의 극 중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서민을 대변하는 서날쇠(고수)의 모습,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이병헌)과 청에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는 김상헌(김윤석)의 극명한 온도차, 적을 막아내는 우직한 수어사 이시백(박희순), 대립하는 신념 속 골몰하는 인조(박해일)의 면면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영화는 한결같이 진지하다. 139분의 러닝타임 동안 무게감은 일정하게 계속 유지된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는 고민은 관객에게도 와 닿으며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와도 무관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며 묘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좌고우면하는 대신들의 모습은 현 시대의 정치 상황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 무거운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부분은 이병헌과 김윤석이라는 두 베테랑 배우가 맞붙는 순간이다. 누구 하나 틀리진 않지만 극명히 달랐던,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을 두 배우는 너무 과하지도 않게, 그렇지만 모자라지도 않게 표현해냈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딱 알맞은 정도로 폭발시켜 과유불급이라는 함정을 영민하게 피해갔다.

극 중 최명길과 김상헌은 각각 주화파와 주전파를 대변한다. 실리를 챙겨 청에 화친을 청하자는 최명길과, 사대의 명분을 내세워 오랑캐인 청국과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는 김상헌의 대립은 극의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시킨다.

최명길은 청의 장수 용골대를 찾아 말로써 그를 설득하고, 종국에는 칸을 찾아가 무자비한 살육을 멈춰달라고 호소한다. 김상헌은 그 나름대로 위기를 타계할 수 있는 방법에 골몰한다. 인조를 앞에 두고 말로써 자신들의 신념을 피력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시종일관 묵직한 분위기가 이어지나, 김훈 작가의 글을 충실히 재현한 모습이 극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레버넌트’를 레퍼런스로 삼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날것의 느낌을 담고자 한 말고기의 비주얼과 혹한의 추위, 동상에 걸린 민초들의 모습들은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전쟁 장면은 화려함보다는 리얼리티를 살려 현실감을 더했다.

영화는 11장으로 잘게 나뉘어 있어 속도감을 유지시키되 원작의 내용을 놓치고 가지 않는다. 왕조는 굴복해도 백성의 삶은 그대로 이어져간다는 결말은 소설과 같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보는 맛은 충분하다. 김훈 작가의 담백한 문체가 배우들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도 볼만하다. 10월 3일 개봉.

김예슬 기자 yey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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