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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루시드폴 “나는 사람이 더 좋아졌어요”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사진=안테나)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사진=안테나)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은 한 곳에 오래 정착한 역사가 없다시피 한 인물이다.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며 학위를 따고 서울로 돌아와 전업 뮤지션으로 살다가 3년 전 제주도로 떠났다. 바다와 가까운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 때의 감상은 노래 ‘바다처럼 그렇게’로 태어났다.

타이틀곡 ‘안녕’은 2년 만에 만난 팬들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 같은 노래다. 가수 이진아가 피아노를 치고 가수 이효리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이상순이 기타를 연주했다. 루시드폴은 투박한 소리를 원했다. 이진아에게는 “너무 잘 치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고 이상순에게는 오래된 앰프를 요청했다. 루시드폴과 그의 아내가 낡은 필름카메라와 8㎜ 무비 카메라로 촬영한 일상 영상은 훌륭한 뮤직비디오가 됐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사진=안테나)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사진=안테나)

◆ 제주도에서 보낸 3년 “이제 여유를 찾았어요”

루시드폴의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일상적인 감상이 모여 완성됐다. 제주도 바다에서 재회한 꼬마 조윤성(루시드폴의 본명)은 그에게 ‘바다처럼 그렇게’를 짓게 만들었고, 숲길에서 죽은 새들의 시체를 수습했던 경험은 ‘그 가을 숲길’을 탄생시켰다. “언제부턴가 죽은 새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더라고요. 다친 새들도 너무 많이 만나서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단골처럼 전화를 걸었어요. 새끼 꿩들이 길을 잃은 모습 같은 것들… 그게 자꾸 눈에 보여요.”

도시에서 살았다면 마주하지 못했을 풍경. 루시드폴이 포착하는 감정은 한결 섬세해졌다. 루시드폴은 “일상이 달라지고 주변 환경도 달라졌으니 결과물(음악) 또한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한 계기에서 탄생한 노래들은 아니”지만 2016년과 2017년의 루시드폴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는 곡들이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루시드폴이 제주도에 정착한 뒤 발표한 두 번째 음반이다. 그리움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전작과 달리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첫 곡부터 “나는 사람이 더 좋아졌어요”라며 산뜻하게 말을 걸어온다. 세월호가 물 밑에서 올라온 날(4월 15일) 완성됐다는 노래 ‘부활절’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기다린 아침”이 왔다며 희망을 들려주기도 한다.

“제주도로 이사해온 이듬해까지는 많이 힘들었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난 뒤 그 때의 나를 보니 힘들어 했던 것 같더라고요. 가벼운 우울증이라고 할까요. 모든 게 너무나 바뀌어버린 상황이었으니까요. 나를 달래기 위한 일을 하기에 급급했어요. 글을 쓴 것 역시 그 세계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기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던 시간을 지나 자신 소유의 밭이 생기고 안정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루시드폴은 여유를 찾았다. 여름에 날아드는 제비의 모습이나 밤에 들려오는 벌레 소리에도 그는 행복을 느꼈다. 집 앞에 바다가 있는 풍경만으로도 즐겁다. “공간과 환경이 뮤지션 루시드폴에게 그리고 인간 조윤성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같아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사진=안테나)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사진=안테나)

◆ 손수 지은 ‘노래하는 집’

루시드폴은 자신이 직접 지은 9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이번 음반 수록곡을 쓰고 불렀다. 지난해 11월 공사를 시작해 올해 3월 쯤 마무리됐다. 전문 장비는 부족하지만, 천장을 높게 짓고 기타를 만들 때 쓰는 음향목을 목자재로 사용해 악기의 울림을 살렸다. 새소리와 벌레소리도 자주 날아들었다. 마지막 곡 ‘밤의 오스티나토’를 녹음할 땐 아예 창문을 활짝 열고 마이크를 가져다가 벌레소리를 담았다.

“지난 음반은 모든 작업을 안테나 녹음실에서 했어요. 비행기 값만 200만 원 정도가 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녹음하는 것이 제게 맞지 않는 자세로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작은 곳이라도 좋으니 제가 가장 편할 수 있는 장소에서, 제게 가장 익숙한 자세로 노래를 쓰고 싶었죠.”

루시드폴은 작업실이 지어진 과정을 “꿈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7집 발매 당시 진행한 인터뷰에서 ‘다음에는 직접 녹음실을 만들어 볼까요?’라고 농담 삼아 말했던 일이 현실에 펼쳐졌다. 작업실 아래층은 마침 그에게 필요했던 창고로 꾸몄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여전히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루시드폴은 회상했다.

“뭘 짓는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재작년 여름에 저와 딱 맞는 과수원과 인연이 닿았고 집짓는 일을 가르쳐주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어느 날엔가는 밭에 상수도가 들어와 뭔가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고요.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하나씩 연이 닿으면서 이뤄졌어요.”

손때 묻은 이 공간에서 루시드폴은 녹음과 믹싱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해냈다. 제주도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가족, 농사,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루시드폴은 “덕분에 ‘믹싱도 내가 해봐야지. 악기도 더 연구해봐야지’라는 고민을 더욱 깊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사진=안테나)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사진=안테나)

◆ “유학생에서 전업뮤지션, 다시 농부로… 후회는 없어요”

“(살고 있는) 장소가 참 중요한 사람”인 루시드폴은 하지만 지난 20년 간 뜻하지 않게 ‘떠돌이’ 생활을 했다.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직업도 달라졌다. 스위스에서는 유학생으로, 서울에서는 전업 뮤지션으로, 제주도에서는 농부로 살고 있다.

“아련한 건 있어요. 실험실 교수님이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일을 주면서 ‘이게 네 박사논문 주제’라고 했을 때, 처음 미팅을 하고 나서의 황당함,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일을 해나가는 과정…. 고통스럽지만 즐거웠고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제가 해야 할 몫은 다 하고 마침표를 찍고 나왔죠. 후회는 없어요.”

고단했던 ‘서울살이’도 돌이켜보면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세상이 원하듯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행사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음악적으로는 누구 못지않게 발전하려고 아등바등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후회는 없다.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지나며 향수를 품을 때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지금 다시 서울에서 살고 싶냐, 그건 별로에요. 저는 지금 저의 환경이 너무나 좋아요.”

루시드폴은 제주도에서 만든 온갖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그의 노동력이 집약된 귤이나 삶이 집약된 에세이, 정서가 집약된 음악 등이 ‘앨범’이라는 형태의 패키지로 타인에게 전파된다.

“만들고 나누는 행위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지난해 겨울을 지나면서 제가 굉장히 많은 걸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걸 느꼈죠. 그리고 저에겐 제 음악을 공표해줄 소속사와 이렇게 인터뷰하러 찾아와주는 기자들,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 다양한 스피커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나눌 수 있는 것들에 최대한 많은 걸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루시드폴은 일본의 동요 시인 가네코 미스즈를 좋아한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내에게 가네코 미스즈의 시를 소개해줬고 아내 역시 그 시를 너무나 좋아해 동시집을 내기도 했다. 루시드폴은 한 때 가네코 미스즈처럼 착한 노래를 내고 싶다고 소망하기도 했다.

“여전히 가네코 미스즈를 좋아하고 그의 글을 읽어요. 주변과 삶에서 중요한 사람이 됐죠. 항상 찾아서 보는 글이 됐지만 내가 그 사람 같은 노래를 만들고 있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아내가 쓴 동시는 (가네코 미스즈와) 굉장히 닮아있더라고요.”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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