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홍선화 기자]
25일 방송되는 KBS2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일흔 번째 여정은 시리도록 푸른 속초의 골목을 찾아간다. 짙푸른 동해와 병풍처럼 펼쳐진 설악산 사이, 숨은 보석 같은 도시 강원도 속초. 천혜의 자연경관에 둘러싸인 속초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렐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구석구석 속초를 걷다 보면 어떤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바다 건너 삶의 소리가 넘실대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가슴 시린 사연들이 묻혀 있다.
◆동명항에서 만난 미스 리 선장
첫 여정은 강원도 속초의 대표적인 명소 동명항에서 시작한다. 동행의 황금어장답게 제철인 홍게, 가자미 등을 실은 배들이 새벽부터 오간다. 동명항 구경이 한창일 때,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작은 배 한 척. 운전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배우 김영철은 젊은 여자 선장이 배를 운전하는 모습에 놀란다. 아버지와 함께 조업을 다녀온 이효진 씨는 학창 시절 전국 카누 대회에서 메달을 딸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다. 오랜 청춘의 방황을 겪은 끝에 바다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는 효진 씨. 뱃일을 하던 아버지는 딸이 걸을 가시밭길에 걱정이 앞섰지만,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해내길 바라며 응원해 주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단 배를 타고 싶은 효진 씨. 동해 바다는 당찬 꿈을 가진 미스 리 선장에게 너른 품을 내어 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랑호 미니 골프장
푸른 호수 너머 병풍처럼 펼쳐진 설악산이 한눈에 보이는 영랑호. 호숫길을 걷던 배우 김영철은 ‘미니 골프장’이라고 쓰인 간판을 발견해 호기심에 들어가 본다. 옛 구옥 마당에 제각기 17개 골프 코스가 만들어져 있는 초소형 골프장. 1963년에 지은 미니 골프장은 과거 속초 유일의 유원지였던 영랑호에 온 사람들이 필수로 들렀던 놀이터였다고 한다. 시멘트를 발라 만든 코스들은 모양도, 이름도 제각각.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공이 굴러가는 길목은 울퉁불퉁하고 홀의 모양도 일정하지 않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데. 일반 골프와는 달리 홀과 길목이 여러 개로 나뉘어 어떤 길목을 거쳐 어떤 홀에 도달하느냐에 따라 얻는 점수도 다르다. 오묘한 매력을 지닌 미니 골프장에서 배우 김영철도 속초 사람들만의 놀이와 추억을 즐겨 본다.
◆설악산자락 아래, 특별한 이웃들이 사는 돌담마을
영랑호를 벗어나 좀 더 내륙으로 향한 배우 김영철. 설악 산자락 아래 오래된 시골 마을로 발길이 이끌린다. 바닷가 마을로 알려진 속초에 400년 세월을 쌓아놓은 돌담마을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오래된 집들을 둘러싼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걷다 보면 돌에 그려진 고양이, 새, 달팽이 등 아기자기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을 방앗간에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여 떡을 빚고 있던 어머니들이 배우 김영철을 반겨 준다. 마을의 역사가 긴 만큼 이웃 간의 나눈 정도 오래되어 어머니들끼리 모여 종종 떡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마을에서 대대로 내려온 방식대로 손자국이 남도록 눌러 만든 어머니들의 송편. 갓 쪄낸 송편을 배우 김영철에서 선뜻 권한다. 어머니들의 인심 덕분에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상도문 마을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을 끄트머리에서 독특한 집을 발견한 배우 김영철은 ‘보고픈 집’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선다. 소주병으로 장식한 작은 부스와 안 쓰는 신발, 깨진 항아리로 만든 화분이 즐비하다. 버려진 공중전화기와 직접 만든 물레방아까지!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마당을 구경하던 배우 김영철은 목판에 적힌 삼행시를 읽어 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딸이 지은 삼행시를 보니, 아버지를 향한 딸의 존경심과 효심에 잠시 뭉클해진다.
◆코다리 덕장 부부의 짭짤한 인생
다시 바닷가 마을로 내려온 배우 김영철. 동네를 걷다 덕장 가득 널린 코다리를 보고 발길을 옮긴다. 42년째 덕장을 하는 주인 내외가 널어놓은 코다리는 봄볕 아래 꾸덕꾸덕 마르며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아내가 할복하면 남편이 꼬챙이에 끼워 말리는데 그 양이 하루 1천 마리 이상. 덕장 일을 도맡아서 하는 아내는 25살에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와, 하루 두세 시간씩 자며 두 아들을 키웠다는데. 꾸벅꾸벅 졸며 명태를 손질하는 날도 많았지만, 돈 버는 재미에 힘든지도 모르고 즐겁게 일했다는 아내. 하지만 고단한 삶에 쫓겨 아이들이 어렸을 때 추억을 많이 못 만들어 준 것이 내심 한으로 남았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42년 째, 손에서 비린내 가시는 날 없이 일하는 부부에게 코다리는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자 훈장으로 빛나고 있다.
◆69년 동안 변치 않은 맛, 속초 함흥냉면
출출해진 배우 김영철은 속초 시내를 걷다가 한 냉면 가게로 들어선다. 가게 벽에 걸린 흑백 사진에 시선을 빼앗긴 배우 김영철. 1대 사장님이 그 옛날 뱃사람들이 별식으로 먹었던 냉면을 배달하러 가는 사진이라는데. 냉면을 가득 실은 목판을 한 손에 이고 다른 손으로는 자전거 핸들을 쥐고 배달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냉면집은 1951년, 함흥 출신인 1대 사장이 속초로 피난 와 차린 집으로 지금은 아들이 대를 아버지의 방식 그대로 냉면을 만들고 있다. 고구마 전분으로 뽑아 쫄깃한 면 위에, 소금과 식초에 절여 매콤하게 무친 명태회를 고명으로 올린다. 꼬들꼬들하면서도 매콤한 냉면 한 그릇에는 69년 세월의 맛이 느껴진다.
쉬어갈 겸 속초의 감성 바닷길,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걷는 배우 김영철. 시원한 동해 바다와 파도에 부딪히는 바위, 해변을 따라 자리 잡은 해송의 솔 내음을 감상한다. 바닷길을 따라 낡은 조선소에 도착한 배우 김영철. 조선소 간판과 ‘살롱’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궁금해져 안으로 들어간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조선소에는 배를 오르내렸던 녹슨 레일, 배를 끌어올릴 때 필요한 엔진이 세월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지, 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옛 모습을 지키고 있어 어디선가 배 목수의 망치질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1952년, 1대 할아버지가 세운 조선소는 2대 아버지를 거쳐 지금은 3대인 최윤성 씨가 운영하고 있다. 그는 조선소를 잇기 위해 그 자리에 레저 선박 회사를 차렸지만 불황으로 쓴 실패를 겪었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은 윤성 씨는 지금의 조선소를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조선소의 역사를 전시한 문화 공간을 겸한 카페로 탈바꿈했다. 배를 만들던 곳에서 지금은 그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변한 조선소. 윤성 씨는 여전히 나무를 다듬으며 배 목수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소를 지키는 그가 있다면, 언젠가 녹슨 레일을 통해 배가 바다로 나갈 날도 다시 오지 않을까?
◆갯배와 아바이마을
배우 김영철은 속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갯배 선착장을 발견한다. 배에 탄 사람이 직접 갈고리를 걸어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쇠줄을 당겨야만 움직이는 무동력 배인 속초 갯배. 도로가 생기기 전 속초 시내와 청호동을 이어 주던 갯배를 타고 배우 김영철은 청호동으로 들어선다. 본래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인 청호동은 1.4 후퇴 때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피난 왔다가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된 피난민들이 머물며 형성된 마을이다. 아버지를 뜻하는 북한 방언 ‘아바이’를 붙여 아바이마을이라고 불릴 정도로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많다. 골목 곳곳에 그려진 벽화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느껴진다.
◆실향민 어머니의 이북 밥상
아바이마을을 걷던 배우 김영철은 작은 철문 너머로 자식에게 보낼 가자미식해를 담그고 있던 어머니를 만난다. 항상 이맘때면 자식들에게 나눠줄 가자미식해를 담근다는 어머니. 손질한 가자미를 소금에 절이고 조밥과 갖은양념을 버무려 나흘 정도 삭히면 가자미식해가 완성된다. 함경도 신창 출신의 실향민 어머니는 아홉 살 무렵, 1.4 후퇴 때 가족들과 함께 내려와 속초에 정착했다. 같은 이북 출신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남편은 생각보다 일찍 어머니의 곁을 떠났다. 이후 오징어 덕장을 운영하며 악착같이 4남매를 길러낸 어머니. 말린 오징어를 싣고 남들보다 더 팔기 위해 리어카를 두 대씩 끌고 다녔단다. 집에 남아있는 낡은 리어카에는 어머니의 고된 세월이 묻어있다. 우연히 만난 손님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어머니가 대접해 주는 이북 밥상을 맛보며 배우 김영철은 고향과 남편을 향한 어머니의 그리움을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