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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산성시장 인절미 떡집ㆍ이북식 만두전골ㆍ너비아니 한정식ㆍ계룡산 얼레빗 장인(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비즈엔터 이성미 기자]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충남 공주에서 산성시장 인절미 떡집, 이북식 만두전골 집, 너비아니 한정식, 계룡산 얼레빗 장인 등을 만난다.

29일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영원히 늙지 않고, 점점 더 농익어가는 곱디고운 동네, 충남 공주를 천천히 걸어본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백제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산성

백제의 웅진 도읍기 시대를 대표하는 왕성, 공산성. 금강이 접한 공산(公山)의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무수한 시대의 변천에도 꿋꿋하게 남아 공주와 함께해 온 역사의 장이다. 김영철, 공산성 성곽을 따라 걷다 백제의 예인(藝人) 미마지가 선보였던 기악무 ‘미마지 탈춤’을 추는 동네 분들을 만난다. 경쾌한 장단과 흥겨운 동작에 절로 신명 나는 탈춤. 모처럼 보는 설 풍경에 마음 한편이 훈훈해진 김영철은 단아하게 어여쁜 동네, 공주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동네 한 바퀴 여정을 시작한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교육 도시의 추억, 하숙촌 이야기

2000년대 초반까지 ‘교육 도시’로 명성이 자자했던 충남 공주. 다른 지역보다 일찍 교육기관이 들어서면서 충남은 물론 전국에서 ‘열공하는’ 학생들이 유학을 왔고, 덩달아 학교가 밀집한 원도심의 제민천 주변으로 하숙촌이 형성됐다. 골목골목 하숙의 추억이 담긴 벽화와 사진을 보며 걷던 김영철은 20년 동안 100여 명의 하숙생들을 들였다는 하숙집 어머니를 만난다. 방만 10개가 넘는 집에서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하숙생들의 삼시 세끼는 물론 빨래와 청소를 해주며 숨 가쁘게 살았다는 어머니. 학생들의 힘든 일도 기쁜 일도 친자식의 일처럼 여기며 힘들어도 재밌게 그 시절을 보냈단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시부모님의 사랑으로 지킨 옛 방직공장 만두전골 집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제민천을 걷다, ‘풀꽃 시인’ 나태주의 시들로 벽화를 꾸민 골목길로 들어선다. 오래된 건물 앞에서 발길이 멈춘 김영철. 옛 직물공장을 개조한 만두전골 집이다. 주인장은 이북 출신의 시부모님께 배운 만두를 빚어 3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 중인 큰 며느리. 43년 전, 시부모님의 열렬한 구애로 며느리가 된 주인장은 결혼한 지 10년 만에 남편을 잃고, 남은 자식들 키우기 위해 시댁의 낡은 공장 자리에 가게를 열었단다. 남편이 떠난 뒤에도 한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온 주인장.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 혼자 남겨진 며느리의 안위가 먼저였던 시부모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시부모님의 사랑을 평생 방파제 삼아, 인생의 풍랑을 헤쳐 온 며느리가 끓인 뜨끈한 만두전골을 맛본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공주의 떡, 인절미와 훈김 나는 설 풍경

85년 전통을 자랑하는 공주 산성시장. 떡집이 제일 유명해 그 수만 20곳이 넘는다고 한다. 시장 안으로 들어선 김영철은 설 대목을 맞아 분주한 떡집을 발견한다. 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떡집으로, 2대째 사장님은 아주머니들과 인절미를 만드느라 동분서주하다. 공주의 떡이라고도 불리는 인절미의 유래는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 온 인조 임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인조 임금에게 임 씨 성을 가진 자가 콩고물을 묻힌 떡을 바쳤고, 인조 임금은 그 맛을 절미(絕美)라 칭찬하며 그의 성을 따 ‘임절미’라고 불렀다가, 세월이 흘러 그 말이 ‘인절미’로 바뀌었다. 공주 사람들은 옛날부터 잔치나 명절에 꼭 빠지지 않고 먹는 것이 바로 인절미란다. 인절미와 함께 더욱 풍성한 설맞이, 공주 산성시장으로 가보자.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너비아니 한정식

공주의 신시가지,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산동네에서 외따로 있는 가게를 발견한다. 45년 전부터, 너비아니 한정식 한 가지 메뉴만을 파는 식당. 몇 해 전, 연로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큰딸 정연 씨가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 정인 씨는 한 점 한 점 숯불에 구워 올리는 너비아니와 20여 가지가 넘는 제철 반찬들, 그리고 청국장과 해물 찌개까지 하나같이 손 많이 가는 찬을 내느라 잠시도 주방에서 벗어날 짬이 없다.

그럼에도 힘들게 가게를 꾸려가는 이유는 모두 어머니 때문이란다. 10살에 식당 일을 시작해, 온갖 궂은일 해가며 모은 돈으로 차린 가게는 어머니의 모든 것이었고, 유난히 애틋했던 모녀의 추억이 고스란히 베여있는 곳이란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담긴 딸의 따뜻한 밥상을 맛본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국내 유일 7대째 가업 잇는 얼레빗 장인

충남의 명산, 계룡산 자락으로 걸음을 옮긴 김영철. ‘얼레빗 전수관’이라 쓰인 표지석을 발견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나무 빗인 얼레빗을 만드는 공방이다. 빗살이 굵고 성긴 얼레빗은 기능에 따라 6종에 이르고, 정교한 조각이 더해져 하나의 예술작품 같은데. 대대로 공예품을 만드는 공조 가문에서 7대째 전승돼, 지금의 장인은 50년 넘게 얼레빗 하나만 만들고 있단다.

장인의 선친은 전통 공예가 점점 설 자리를 잃자, 아들만은 자신과 같은 길을 가지 않길 원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결국 빗 만드는 길을 선택한 장인. 한민족의 얼과 가문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얼레빗을 포기할 수 없었단다. 스스로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을 쓸 상대의 삶을 빛내주기 위해 ‘영원한 바라지꾼’으로 살고 싶다는 얼레빗 장인. ‘쟁이’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선조의 숭고한 정신을 잇는 그의 올곧은 마음을 잠시 마주해본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충남 공주(사진제공=KBS 1TV)
◆오래된 직물 동네의 색동 짜는 부부

공주의 북서쪽, 유구읍은 6‧25전쟁 때 이북의 직조공들이 정착하면서, 동네 가득 직물 짜는 기계 소리가 우렁찼던 직물 동네다. 200여 곳이나 되는 방직공장에서 나이 어린 ‘삼천 공녀’들이 직조기를 돌렸던 섬유의 메카는 이제 10여 곳만 남아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김영철은 오래된 방직공장 골목을 걷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색동’ 원단을 짜고 있는 부부를 만난다.

열다섯, 열일곱 어린 나이에 ‘직남직녀’가 된 부부는 스무 살 중반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색동을 부지런히 짜며, 오색찬란한 인생 비단길을 꿈꿨단다. ‘점심 먹고 낮잠 자는 사장’이 소원이었던 부부. 색동의 쇠퇴기와 함께 그 꿈은 그저 일장춘몽이 되었지만, 색동을 짜는 마지막 직조공이란 자부심 하나로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50년 세월, ‘실밥’을 함께 먹으며 한길을 걷고 있는 오래된 직물 동네의 색동 부부를 만나본다.

이성미 기자 smlee@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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