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오상민 기자]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선 억 소리 나는 돈이 필요했다. 전 세계 프로 스포츠의 중계권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젠 수천억 소리를 넘어 조 단위까지 솟구쳤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사무국은 지난 11일 2016년부터 세 시즌 동안 영국 스카이스포츠·브리티시텔레콤(BT)과 총액 51억3600만 파운드(약 8조5500억원)에 중계권을 계약했다고 밝혔다. 지난 세 시즌 계약금 30억1800만 파운드보다 71%나 오른 역대 최고 금액이다.
EPL의 중계권료 상승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지난 시즌까지 EPL 중계를 맡은 스카이스포츠와 BT의 지난해 하반기 이익은 5억2700만 파운드(약 8777억원)였다. 이에 스카이스포츠와 BT 외에도 디스커버리 네트워크, BEIN 스포츠 등이 이번 EPL 중계권 입찰에 뛰어 들면서 어느 해보다 치열한 중계권 경쟁이 펼쳐졌다.
중계권료 상승은 EPL만의 축복은 아니다. 세계 프로 스포츠 중 중계권료가 가장 비싼 종목은 미국프로풋볼(NFL)로 미국 4대 지상파 방송사(ABCㆍCBSㆍFOXㆍNBC)로부터 받은 연간 중계권료는 평균 49억 달러(약 5조원)에 달한다. NFL 결승전인 슈퍼볼의 초당 광고 단가가 1억6000만원이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메이저리그(MLB) 중계권료는 약 16억 달러(약 1조7500억원), 미국프로농구(NBA)는 연간 9억3000만 달러(약 1조200억원)를 중계권료로 벌었다. 또 미국자동차경주(NASCAR)는 7억4500만 달러(약 8170억원),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7억1200만 달러(약 7810억원), 북미아이스하키(NHL)는 2억100만 달러(약 2200억원)의 중계권료 수익을 올렸다.
중계권료의 상승은 리그와 구단의 수입 증대로 이어진다. EPL은 중계권료 50%를 구단에 골고루 나눠주고, 25%는 성적에 따라 차등 배분한다. 나머지 25%를 시설 이용료 형태로 배분한다. 이렇게 올린 수익으로 원하는 선수를 스카우트해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향상된 경기력은 관중 증가와 시청률 상승이라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그러나 EPL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프로축구 리그는 EPL의 중계권료 상승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EPL은 중계권료 상승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수익을 챙기면서 우수 선수 영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기 때문이다. 상위 구단뿐 아니라 크리스털팰리스, 헐시티, 퀸즈파크레인저스 등 만년 하위권 중소 구단들 역시 선수 영입에 투자를 늘리면서 선수 이적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결국 EPL 구단들의 무분별한 선수 영입 투자는 유럽 축구 시장 전체의 선수 몸값과 에이전트 수수료에 거품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박성희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교수는 “승자독식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지만 중계권료는 구단의 관중 동원 능력과 비례한다. 리그 성적이 좋지 않아도 중계권료가 높은 구단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결국 구단의 운영 노력이 중계권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품 논란을 말하기 전에 구단과 리그가 얼마나 관중 동원을 위해 노력했는지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