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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잔망꾼’ 이제훈의 영화적 야심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강렬한 인상은 심어준 영화 ‘파수꾼’(2010)부터, 첫사랑 바이러스를 전국에 살포한 ‘건축학개론’(2012)까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제훈은 충무로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배우로 성장했다. 하지만 뜨거운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을 때 그는 군복을 입어야 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그는 쉬지 않고 다작레이스를 펼쳤다. 리스크가 있어 보이는 작품에도 과감하게 도전하는 이제훈을 두고, 이러다가 이미지가 너무 소모되는 게 아닌가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자’는 쪽 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캐릭터를 조금이라도 일찍 경험하려는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그 시기의 다양한 경험들 덕분에 이제훈은 확실히 더 유연해졌고, 더 신중해졌다. 이제훈은 이제 자신이 쌓은 토양 위에서, 한발 한발 신중하게 나아가려한다. 그 가운데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이 있다. ‘탐정 홍길동’은 대중들에게 신뢰를 주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는 이제훈의 바람이 담긴 영화다.】

Q. ‘탐정 홍길동’이 공개된 후 한국판 ‘씬시티’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그만큼 비주얼이 강렬한 영화다.

이제훈: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2009)과 ‘짐승의 끝’(2010)을 굉장히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서 ‘대체할 수 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감독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탐정 홍길동’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나 반가웠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남매의 집’ ‘짐승의 끝’의 확장판으로서의 상업오락 영화를 만난 느낌이었다. 출연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Q. 말한 대로, 조성희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지닌 연출가다. 정작 감독 본인은 자기만의 독창성이 없다고 하더라.(웃음)

이제훈: 하하하. 절대, 아니지! 겸손의 말 아닐까. 이런 영화는 진짜 조성희 감독님 밖에 못한다. 영화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 수 있는 ‘탐정 홍길동’ 같은 작품이 더 시도되고 투자되면 좋겠다. 이렇게 새롭고 독창적인 한국영화가 사실 많지 않거든. 과감하게 도전한 작품이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꾸준히 나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도 조성희 감독님이 만드는 세계를 계속 지지하고 싶다. 배우로서 감독님의 좋은 매개체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조성희 감독을 향한 무한애정이 느껴진다.

이제훈: 감독님과 작업한 배우들은 모두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래서 ‘충무로가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이제훈도 충무로가 사랑하는 배우 아닌가.

이제훈: 캬~ 부끄럽다. 흐흐흐.

Q. 조성희 감독과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안다. 두 감독이 당신을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셋이 모이면 어떤 분위기가 조성될지 궁금하다. 당신 입장에서는 과거 애인과 현재 애인을 함께 만나는 느낌도 들 것 같은데.(웃음)

이제훈: 하하하. 모이면 대부분은 영화 얘기다. ‘탐정 홍길동’ 이야기를 특히 많이 했는데, 조성희 감독님이 구현하려는 세계에 대해 윤성현 감독님이 많은 지지를 해줬다. 윤성현 감독님이 나와 가깝다보니, 조성희 감독님에게 나의 이면이나 장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알려주지 않았을까 싶다.

Q. ‘탐정 홍길동’을 보면서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2009)가 살짝 떠올랐다. ‘전우치’ 때도 한국형 히어로의 등장이 주목받았었다.

이제훈: 아, 그럴 수 있겠다. 홍길동은 전우치에 비해 조금 더 어두운 인물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영웅들이 개인적인 결핍이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성장해 나가지 않나. 그런 안티히어로적인 부분을 홍길동도 지니고 있다. 극악무도한 악당보다 더 악명 높은 반 영웅이 정의의 편에 서서 나쁜 놈과 싸운다는 설정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Q. ‘탐정 홍길동’은 캐릭터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만난 영화 속 캐릭터 중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있다면.

이제훈: ‘탐정 홍길동’ 촬영 초반에 봤던 ‘킹스맨’. B급 무비에서 키치적으로 나올 수 있는 멋진 캐릭터였다. 마블의 ‘데드풀’을 보면서도 “와우~!”했다. ‘킹스맨’ ‘데드풀’ 모두 19세 관람가인데, 사실 우리영화도 청소년관람불가로 갈만한 요소가 많았다. 실제로 그렇게도 찍었었고. 편집을 거치면서 수위가 완화됐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잘 돼서, 19금 감독판 DVD가 나오길 바라고 있다.

Q. 말 속에서 배우로서의 어떤 책임감도 읽힌다.

이제훈: 전작들을 통해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대중들에게 인식시켰다면, 이제는 신뢰를 줘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건축학개론’을 촬영하면서 ‘점쟁이들’(2012)을 동시에 찍었다. 데뷔가 늦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어떤 가능성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는 돈과 시간을 내서 나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에게 ‘좋은 작품을 보고 갔다’라는 느낌을 전하고 싶다. 한두 해 하고 연기를 그만 둘 생각은 없기에, 돌아갈지언정 대중들에게 꾸준히 신뢰 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할 거다. 시나리오를 볼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나.

이제훈: 일단 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을 때 다시금 꺼내볼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란다. 그래서 내게 장편영화 첫 주연작 ‘파수꾼’은 소중하다. 내가 어떤 연기관을 지니고 인생을 걸어갈지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확실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다. 그 힘으로 지금도 작품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참, ‘파수꾼’이 나온 후 많은 연기지망생들이 오디션 자유연기에서 기태(이제훈)를 연기한다고 하더라.

이제훈: (살짝 수줍게 미소) 고마운 일이다. 사실 ‘파수꾼’ 이후 고민이 많았다. 2012년에 나온 ‘고지전’과 ‘건축학 개론’은 어떻게 보면 대중들에게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였고 실제로 사랑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여기에서 안주해도 되는 걸까’하는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선택에 있어 더 과감하고자 했던 것들이 있다. 가령 신정원 감독님의 ‘점쟁이들’(2012)은 나에게 과연 어울릴까라는 의문이 있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시실리 2Km’(2004)를 통해 신원정 감독님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에, 감독님을 믿고 도전했다. 그리고 나는 노래를 잘 못하는데, 그럼에도 성악에 도전했다.

Q. 한석규와 함께 한 ‘파파로티’(2012).

이제훈: 맞다.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었던 작품이다. 김천 출신에 사투리를 쓰는 껄렁껄렁한 조폭. 부담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 욕심도 났다.

Q. 연기 외적으로도 도전정신이 강한가? 아니면 연기에 특화된 건가.

이제훈: 무엇을 하든 겁을 내는 스타일은 아닌데, 연기의 경우 특히 그렇다. 배우는 매 순간 진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중은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원하고, 대부분의 배우들은 ‘나라는 배우가 다른 배우로 대체되지 않기’를 원한다. 그랬을 때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싶다. 결국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작품 속에서 영원히 그 인물로 남는 거다. 그게 낙인처럼 박히면 안 되겠지만, 그것 역시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낙인처럼 박힌 캐릭터를 다른 캐릭터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Q.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았다. 자기 점검의 시간을 많이 갖나.

이제훈: 군대가 내겐 좋은 계기였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배우의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어떤 배우의 길을 걸어야 할지에 대해 방향성을 잡아 준 시기이기도 하다. 배우는 시나리오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대본이 들어와야 선택할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 기다리는 배우가 아닌, 먼저 찾아서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할리우드의 경우, 배우들이 직접 제작사를 차려서 좋은 원작을 발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다.

Q. 갈증해소를 위해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게 있나.

이제훈: 미비하지만 작가와 시나리오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다.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다. 제작자까지는 너무 거창하고,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유기적인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배우라는 이유로 연기에만 안주하고 싶지 않은 거다. 연출은…연출은 아직까지는 자격이 없는 것 같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더 원숙해졌을 때, 그리고 작품을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는 그릇이 됐을 때 도전해보고 싶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좋은 의미에서의 야심 같다. 도전적인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하고.

이제훈: 그럴 수도 있다. 2003년,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가 함께 나왔던 한국영화 황금기가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 그런 영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세대로서,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싶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탐정 홍길동’은 나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Q. 영화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어나.

이제훈: 집 근처에 비디오 가게가 있었다.(웃음) 외화가 인기였던 시기에도 나는 한국영화를 찾아봤다.

Q. 어떤 영화?

이제훈: 박신양 선배님의 ‘유리’(1996)나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 등을 보면서 ‘와. 이게 영화인가?’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것들에 대한 감성들이 많이 쌓였던 것 같다. 당시의 나에게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블록버스터는 ‘부수기만 할 뿐 내용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영화’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훌륭한 배우들이 많은 예산과 좋은 환경 안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부러운 지점이다. 사실 그런 환경은 한국영화인들도 모두 꿈꾸는 거다. 그런 부분을 관객 분들이 같이 꿈꿔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영화 보고 싶어요.” “할리우드에는 있는데 왜 우린 없나요. 만들어주세요” 그런 것들을 함께 소통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Q.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제훈은 뼛속까지 영화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인정하나?

이제훈: 하하하. 나는 극장에 가는 게 가장 행복하다. 불 꺼진 상영관에서 영화를 볼 때의 두근거림이 있다. 그러한 행복을 아직까지도 지니고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다. 스스로에게 감사하고. 힘들고 지칠 때 영화 보러 가는 게 나에겐 힐링이다.

Q. 소진됐을 때, 서랍에서 끄집어내는 영화가 있다면.

이제훈: 너무 많다. 당장 생각나는 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이윌 비 블러드’(2007). 주인공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보면서 ‘와, 진짜!’ 감탄했다. 굉장히 강렬하게 본 영화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당신이 최근 꽂혀 있는 게 있다면.

이제훈: 연기를 늦게 시작했는데, 나이에 맞지 않게 ‘파수꾼’에서 교복을 입었다. 그런 모습이 남겨지는 게 되게 좋더라. 뭔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모습을 필모에 남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지닌 청년을 연기하고 싶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크리드’ ‘사우스포’ ‘파이터’ 등의 복싱 영화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굉장히 클래식하게 느껴졌다. 사각의 링 안에서 남자 둘이 웃통을 벗고 정직하게 싸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보면서 ‘더 늙기 전에, 저런 젊은 에너지의 영화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본 시리즈’ 같은 아날로그 액션물도 좋다.

Q. 이제훈 연기는 본능적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당신이 움직임과 톤을 세심하게 통제하는 배우라 생각한다.

이제훈: 내 나름대로는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다. 대본을 충분히 숙지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많은 계획을 가지고 촬영장에 간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계획한대로 연기를 펼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현장의 즉흥성을 믿는 편이다. 감각을 많이 열려고 한다. 분명 허구의 이야기이고 짜여 진 각본이지만 대중들이 그 순간만큼은 진짜처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본능을 많이 꺼내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Q. 그나저나 원래 이렇게 유쾌한 편인가. 아니면 분위기를 타는 스타일인가. 예상보다 너무 밝고 긍정적이라 살짝 놀라는 중이다.(웃음)

이제훈: 분위기를 타기도 하는데, 지금은 영화로 만난 자리니까. 영화로 만난 자리는 (좋아서) 미치겠다. 작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확인하면서 많은 걸 배운다.

Q. 그럼에도 일이지 않나. 인터뷰를 곤혹스러워 하는 배우도 많다.

이제훈: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난 그냥 좋다. 영화를 통해 만난 인연들에게는 호의적이 된다.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기회가 그리 많지도 않다. 그래서 이 자리는 나에게 소중하다. 그리고 나를 위해 온 건데, 굳이 무게 잡을 필요도 없지 않나. 만약 “제훈 씨 이번 작품은 아니었어. 이런 선택은 안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해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 나는 아직 성장 중이라 믿기에.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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