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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성희 감독 “이미지가 텍스트 압도하는 작품, 통하는 시대”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조성희 감독(사진=노진환 기자 myfixer@)
▲조성희 감독(사진=노진환 기자 myfixer@)

“충무로가 사랑하는 감독이잖아요!” 이제훈은 조성희 감독을 이렇게 표현했다. 2009년 세상에 나온 조성희의 단편영화 ‘남매의 집’을 접한 이라면, 이제훈의 이 말에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일게다. 7년간 대상을 배출하지 않았던 도도한(?) 미장센단편영화제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남매의 집’에 대상을 안기는 순간, 충무로 영화인들의 시선이 조성희를 향했다. 2010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만든 장편영화 ‘짐승의 끝’에서 조성희는 또 한 번 그만의 인장을 보여줬다. 그 어떤 범주로도 묶을 수 없는 조성희만의 독창적인 결이 작품 곳곳에서 에너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늑대 소년’(2012)에 이은 두 번째 상업 장편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조성희의 창의력이 대자본 안에서도 주눅 들지 않음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결과물이다. 동화적 캐릭터, 연극적 공간과 동선, 이방인의 갑작스러운 방문 등 조성희의 소유격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즐비하다. ‘이상한 나라의 조성희’ 감독을 잠시 불러 세웠다.

Q.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탐정 홍길동’은 CJ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영화 같지 않다.(웃음) ‘조성희의 인장’이 얼마나 담겼다고 보나.
조성희: 연출가로서 나다운 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만의 영화문법이 있거나, 철학이 있는 게 아니라서. 작품이라는 건, 배우-스태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지 않나. 스무 작품 정도 하고 나면 나만의 뭔가가 생길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해보고 싶은 욕심이 크다.

Q. 나다운 게 있는지 모르겠다,라. 무국적성, 현실과 환상이 혼재된 미장센 등 ‘남매의 집’에서부터 당신이 보여 온 특징들이 있다. ‘조성희표’라는 말도 있지 않나.
조성희: 겸손이 아니다. 아직은 모자란 게 너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항상 현장에서 좌절한다. 영화를 만든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를 매 작품마다 느낀다.

Q. 너무 모법답안 같은데.(웃음)
조성희: 하하하하. 미안하다.

Q. ‘늑대소년’이 독립영화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준 감독의 첫 상업장편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면, ‘탐정 홍길동’은 흥행에 성공한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따른다. 그 부담감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조성희: 또 ‘뻔’한 대답을 할 것 같은데.(웃음) 어떤 평가를 받고 성과를 거둘지, 늘 초초하고 불안하고 기대가 된다.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디에서 읽었는데 작품을 많이 하신 감독님들도 항상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한다고 하더라.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상 평가는 숙명인 것 같다. 결국 감독을 계속 하려면 요령이 필요한 것 같다. 걱정이나 큰 기대는 무의식적으로 멀리 하려고 노력한다.

▲조성희 감독(사진=노진환 기자 myfixer@)
▲조성희 감독(사진=노진환 기자 myfixer@)

Q. 어쨌든 대자본 앞에서는 두 가지 의미에서 자기 검열을 하게 될 것 같다. 기존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자기 검열이 있을 테고, 상업영화와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을 테고. 두 가지가 서로 싸우지 않을까 싶다.
조성희: 개인적으로 ‘E.T.’(1982) ‘구니스’(1985) ‘스타워즈’ 시리즈 류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대중들이 좋아하는 영화와 그리 멀지 않은 셈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이다. 다만 내 영화를 개성 있게 봐 주신다면, 그건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찌할 수 없이 드러나는 부분들인 것 같다.

Q.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무의식중에 나오는 것들…그게 진짜 조성희이지 않을까.
조성희: 음.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고 후반작업을 하면서 영화를 1000번 가까이 보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많이 잊어버린다. ‘이런 걸 찍었었나?’ ‘누가 이야기해서 찍은 거지?’(웃음) 어떨 때는 ‘이건 내가 봐도 대사 되게 잘 썼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배우의 애드리브인 경우도 있다.(일동웃음) 그러니까 이게 운명 같은 거다. 어떤 스태프-배우와 작업을 하고, 어떤 날 촬영하는지, 모든 우연들이 모여서 영화라는 작업물을 완성하는 것 같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것. 그래서 감독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거기에서 의외성이 일어난다는 것. 영화 작업의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Q. ‘탐정 홍길동’은 조명, 카메라 앵글, 워킹, 미술에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한 영화다. 모든 파트가 중요하겠지만 현장에서 어떤 부분에 집중하는 편인가.
조성희: 현장에서는 배우와만 이야기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스태프와는 사전에 충분한 합의가 돼 있어야 한다는 거다. 스태프들과 약속을 많이 하고 현장에 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정확하게 이행하려고 한다. 반면 배우들은 예민하고 민감한 존재들이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정이 바뀔 여지가 많다. 연출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에 따라 테이크가 달라질 수 있기에 현장에서는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Q. 말순을 연기한 김하나 양의 찰진 연기는 그렇게 나온 결과물인가.(웃음)
조성희: 막내 말순이.(웃음) 그 친구 자체가 상당히 명랑하고 쾌활하다. 늘 뛰어다닌다. 걷는 걸 본 적이 없다.(웃음) 그 자체로 너무나 사랑스러운 친구인데, 우리영화가 김하나 양 덕을 많이 봤다.

Q. ‘남매의 집’부터 이어져 온 당신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낯선 자의 침입이 아닐까 싶다. 부조리한 인물이 등장, 연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조성희: 아마 그건 내가 겁이 많아서 일거다.(웃음) ‘무서운 걸 만들어보자’하면,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살인보다 시커먼 아저씨가 내 구역에 침입하는 게 먼저 생각난다. 그런데 이젠, 그런 설정을 좀 멀리하려고. 영화아카데미 동기들도 그렇고 교수님들도 그렇고 만나면 많이들 그런다. “너 작품에는 왜 그렇게 침입자가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 가냐”, “왜 아이가 어른 같은 말을 하냐”, “그런 것들 좀 그~만해!”(일동웃음) 사석에서 오가는 말들은 정말 얄짤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안 하려고 한다.

▲'남매의 집' '짐승의 끝'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시계방향)
▲'남매의 집' '짐승의 끝'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시계방향)

Q. 반대하고 싶은데. 앞으로도 조성희 작품에는 꼭 있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특징을 끝까지 가져가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조성희: 아직은 30대이기에 이것저것 탐험을 해보고 싶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면서 생각했다. ‘조지 밀러 저 어르신이 아직도 저렇게 젊고 과격하시다니. 나는 정신 좀 차려야겠다!’

Q. ‘늑대소년’ 때, 조성희 스타일이 상업성과 타협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혹시 당시의 평가가 이번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게 있나.
조성희: 아니다. ‘늑대소년’을 만들 때의 각오는 ‘우리 가족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였다. ‘남매의 집’을 부모님에게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굉장히 힘들어 하시더라. 주무시고.(웃음) 그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이 재미있게 볼만한 작품 하나 없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탕에서 탄생한 게 ‘늑대소년’이다. 그러니까 ‘늑대소년’은 제도권에서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뭔가와 타협한 거라기보다, 애초 목표가 가족영화였다. 그리고 나는 기획을 할 때 작전을 세울 만큼 영리한 사람이 못된다. ‘투자-제작사에 이 시나리오를 보여주면 하라고 할까?’ 정도는 생각하지만 ‘이거 하면 흥행하겠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Q. 적지 않은 제작비가 들어간 프로젝트였다. 고민의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다.
조성희: ‘탐정 홍길동’이 만들어지기까지 아무 문제없이 온 건 아니다. 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무조건 친구들에게 보여주는데, 이 영화는 반응이 한결 같았다. “이거 제작비 1억도 안 들겠네!”(웃음) 글로만 봤을 때는 영화가 뭐랄까. 조용하고 심심해보였던 것 같다. 보는 사람마다 “이게 뭐야?” 의문을 표시하니까, 어느 순간 나조차도 ‘이게 뭐지?’ 싶었다. 자신감을 잃었을 때 힘을 준 게 제작사 비단길이다. “이건 무조건 만들어봅시다”, “다들 재미없다고 하는데요?”, “그건 나와 봐야 아는 거니까. 영화로 보면 재미있을 거야” 하셨다.

Q. 비단길과는 ‘늑대소년’에 이어 두 번째다. ‘늑대소년’때 준 믿음도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조성희: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내가 진짜 성실하긴 하다. 안 놀아~(웃음) 한가하게 보내면 괜히 벌 받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거든.

Q. 놀면 괜히 작품이 망할 것 같고~(웃음)
조성희: 맞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 거다. ‘나 일한다! 나 앉아있다’ 이러면서.(웃음) 그래서 일을 손에서 잘 놓지 않는데, 그런 성실함을 잘 봐준 게 아닐까 싶다.

▲'탐정 홍길동' 이제훈-조성희 감독
▲'탐정 홍길동' 이제훈-조성희 감독

Q. ‘탐정 홍길동’은 텍스트보다 이미지가 더 압도적인 영화라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았던 건, 글로는 그런 이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없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조성희: 시나리오가 약하다는 것에 불안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관객들이 스타일보다 텍스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거라 생각했거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미련하고 오만한 걱정이었다고 본다. 지금은 ‘킹스맨’도 그렇고 ‘데드풀’이나 ‘매드맥스’도 다들 재미있게 보시지 않나. ‘표현이 텍스트를 압도하는 작품’을 관객들이 충분히 받아들이는 시대다. 미드-일드-웹툰 등 기상천외하고 골 때리는 영상매체를 접하면서 관용의 폭이 넓어 진 게 아닌가 싶은데, 관객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놓치고 있었다고 본다.

Q. 하지만 투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텍스트다. 감독 머릿속에는 이미지가 있겠지만, 그걸 보여줄 방법이 마땅히 없지 않나.
조성희: 맞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투자-제작사 입장에서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제작비가 100만원만 든다면 “만들어 봐!”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 않나. 야심이 큰 영화일수록 제작비는 더 많이 든다. 그래서 근거를 어느 정도는 보여줄 필요는 있다고 본다. 가령 닐 블롬캠프 감독의 ‘디스트릭트 9’(2009)의 탄생 뒤에는 그가 2005에 만든 단편영화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가 있었다.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 같은 영화를 2시간 동안 보고 싶으면 돈을 달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다.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1979)에도 전래동화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투자사가 “시나리오가 이게 뭐냐?”하니까 감독이 스케치를 그려서 보여줬다더라. 그랬더니 투자사가 “얼마가 필요한가!”라고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일동웃음)

Q. 우리도 그게 가능할까.
조성희: 우리나라도 점점 영화의 비전을 미리 보여주는 시도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파일럿 형태가 될 수도 있고, 프리비주얼 형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시도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Q.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때까지 영화의 ‘영’자도 몰랐다고.(웃음) 영화아카데미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가.
조성희: 대학 졸업 후 CG회사를 차렸다. 원룸에서 나 포함 세 명이서 일했으니, 회사라기보다는 구멍가게에 가까웠다.(웃음) 그게 장사가 잘 됐다. 그런데 너무 방구석에서 일을 하니까 정신병이 걸리겠더라. 이후 올리브스튜디오라고 ‘코코몽’을 만든 회사에 컨셉 디자이너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했다. 그때 충동적으로 친구들과 집에 있는 캠코더로 영화를 찍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다. 더 늦게 전에 이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하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지 찾아봤다. 가르쳐주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 그게 영화아카데미였다. 그렇게 지원을 했고, 30살에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조성희 감독(사진=노진환 기자 myfixer@)
▲조성희 감독(사진=노진환 기자 myfixer@)

Q. 늦은 시작에 비해, 잘 풀린 케이스 아닌가.
조성희: 30대에 입문을 했으니까, 그거에 비하면 나름…(웃음)

Q. 좀 거창한 질문일 수 있는데, 당신의 영화적 야심은 뭔가.
조성희: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야심이라고 하면, 그런가?(웃음) 영화라고 했을 때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잡고 극장에 가는 모습, 그때 봤던 영화들. 아까 말한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들인데, 그 음악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뭔가가 있다. 그런 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리고 빨리 소비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 한 편을 위해 몇 년을 쏟았는데 소비되는 건 1-2주 정도다. 굉장히 허무한 일이다. 가수들은 그런 게 더 심하다고 들었다. 몇 만 명이 몰린 대공연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면, 갑자기 밀려드는 허무함에 자살 하고 싶을 정도라고 하더라. 그런데 모두 자기가 선택한 운명이니, 극복해야지.

Q. 허무함의 시간을 당신은 어떻게 견디나.
조성희: 바빠서 못 봤던 만화책도 보고, 영화도 몰아서 보고.(웃음) 그런데 결국은 작품이다. ‘또 뭐를 하지?’ 작품을 찾는다. 혼자 상상하고 구상할 때가 가장 재미있는 것 같다.

Q. 그나저나, 원래 ‘다나까’ 말투를 쓰나.(이 글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조성희 감독은 인터뷰 내내 ‘다나까’ 체를 구사했다)
조성희: 내가 그런가? 몰랐습니다. 아니, (의식해서 천천히)몰랐어요~(일동 웃음) 아, 이게 되게 입에 안 붙는구나.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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