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오드(AUD) 김시내 대표를 만났을 때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알아보느라 분주했다. 관객 5만 명을 기대하며 개봉한 대만영화 ‘나의 소녀시대’가 개봉 첫 주 만에 8만 관객을 동원하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방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님, 지금 칸에 계실 때가 아닙니다!”라는 한국 발(發) 메시지를 받은 그녀의 마음은 이미 칸을 떠나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홀리 모터스’ ‘트라이브’ ‘리바이어던’ 등 예술영화를 주로 소개하며 업계에서 ‘문화사절단’이라 불려온 그녀에게, ‘나의 소녀시대’를 향한 뜨거운 반응은 흡사 천만 영화의 그것과 비슷한 체감이었으리라. 김시내 대표와 헤어지며 “‘나의 소녀시대’가 20만까지 가길 기원한다”고 말했는데, 웬걸. 영화는 4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주연배우 왕대륙의 내한으로 떠들썩한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 ‘왕대륙 내한 행사’를 치르고 며칠간 (기분 좋게) 앓아누웠다는 김시내 대표를 소환했다.
Q. 태어나 가장 정신없는 주말을 보냈을 것 같다. 왕대륙의 내한으로 극장가가 뜨거웠다.
김시내: 감독 내한과 배우 내한은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웃음) 왕대륙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뭐랄까. 흡사 아이돌 스타가 내한한 기분이었다.
Q. 왕대륙도 한국에서의 이 뜨거운 인기를 예상했던가.
김시내: 놀라더라. 왕대륙이 지난해 ‘나의 소녀시대’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왔었다. 당시 팬들의 반응과 너무 다르니까 스스로도 놀라워하더라. 왕대륙이 벼락스타가 아니다. 8년의 무명시절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개인적으로 그가 차기작을 잘 선택해서 길고 굵게 가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탕웨이 같은 행보로 가면 어떨까 싶다. 스타보다는 배우로.
Q. 왕대륙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김시내: 이모 마음이 됐다.(웃음) 사실, 직접 보고 놀랐다. 너무 겸손해서. ‘아시아 프린스’로 군림하고 있다길래, 살짝 겉멋이 들어 있을 줄 알았거든. 예상이 완전 빗나갔다. 이틀 동안 가까이에서 지켜 본 왕대륙은 스타 특유의 거만함이 없는 친구였다.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고. 만나고 나서, 나 역시 팬이 됐다.
Q. 네이버 브이앱 방송에서 ‘나의 소녀시대’가 40만을 돌파하면 다시 한국을 찾겠다고 했던데.
김시내: 아, 그건 통역에서 실수가 있었다. 50만이다. 50만을 돌파하면 다시 한국에 오겠다고 한 건데, 지금으로서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Q. 오드(AUD)가 주로 수입해 온 작품은 유럽예술영화다. 오드의 필모에서 ‘나의 소녀시대’는 다소 튀는 느낌이 없지 않다.
김시내: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나의 소녀시대’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이들 놀라더라. 이제껏 아시아 영화는 ‘동경가족’과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딱 두 작품뿐이었다. 유럽 예술영화 전문 배급사 같은 느낌이 있었기에, 대만영화와의 조합이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Q. ‘나의 소녀시대’를 수입하는 데까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김시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때, 영화에 대한 반응이 상당했다. 많은 수입배급사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 상영 후 ‘핫’한 영화가 돼 버린 거다. 나 역시 욕심이 났지만, 우리가 대만영화 수입 경험이 없었다. 수입가를 크게 부를 수 있는 회사도 아니고. ‘그래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세일즈 회사에 전화도 하고 메일도 보냈는데, 오랜 시간 연락이 없었다. 알고 보니 세일즈 회사의 손을 떠나 프로덕션 회사로 넘어간 상태였다. 세일즈 회사에서 프로덕션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려 해서 애를 좀 먹었다. 페이스북 주소 하나 가지고, 두 달을 추적했나? 프로덕션 회사와 겨우 연락이 닿았다.
Q. 스티브 맥퀸의 ‘헝거’도 판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를 오랜 기간 수소문한 끝에 수입하지 않았나. 뭔가, ‘찾기의 달인’ 같다.(웃음)
김시내: 하하. 한번 꽂히면 그렇게 된다. ‘나의 소녀시대’의 경우엔 회사를 찾은 후에도 쉽지는 않았다. 프로덕션 회사에서 “마케팅 계획서를 달라, 극장은 몇 개 잡을 수 있느냐” 등 디테일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돈을 빨리 지불하고, 개봉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만에서 블루레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그러면 불법파일이 돌 수 있기에 하루 빨리 저작권보호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식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우리가 손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피칭 후에도 확답을 안 줘서 ‘우리가 못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정확히 작년 12월 31일에 “너희랑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Q. 결국 한국에서 가장 흥행한 대만영화가 됐다. 이젠, 오드의 최고 흥행작이기도 하고.
김시내:대만 영화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가 주걸륜 주연의 ‘말할 수 없는 비밀’ 이었다. 재개봉 빼고 10만 명이 그 영화를 봤다. ‘나의 소녀시대’ 측에서는 영화가 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에서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으니, 한국에서도 흥행을 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비밀’보다 잘 할 수 있느냐”고 하길래, “할 수 있다”고 했다.(웃음) 하지만 대만영화 10만 동원이 쉬운 게 아니지 않나. 처음 목표는 5만 명이었다. 그런데 첫 주에 8만 명이…(웃음)
Q. 축하 받느라 바쁘겠다.
김시내: 질투를 좀 받고 있다.(웃음) 대만영화가 오랜만에 뜨거운 화제를 모으는 현상에 상당히 흥미로워 하시는 것 같다.
Q. 영화수입은 어떻게 시작했다.
김시내: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면서 문화적 갈증이 컸는데, 그게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 키운 것 같다. 결정적으로 막내 이모(배우 김부선)와 친했다. 이모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렸는데, 그때 사진작가-패션모델 등을 만났다. 생각이 열려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명품 홍보사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세계더라. 그만 둔 후, 영화홍보 관련 수업을 들었다. 마침 지인 소개로 외화 수입사 자료 번역이나 해외 마켓 통역 일을 시작했다. 영화홍보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영화 수입사에 들어가서 4년간 해외 업무를 맡았다.
Q. 수입사를 나와서 개인회사를 차린 이유는.
김시내: 당시 회사가 수입하는 영화와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취향 차이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말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 뒀다. 그만두고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했을 때, 집에서 한차례 폭풍이 일었다.(웃음) “너 돈있냐” “없다.” “누가 밀어 줄 사람 있냐?” “없다.” “그런데 왜 하냐?” “진짜하고 싶어서 그런다.” 이랬거든. 이모에게도 욕을 많이 먹었다.(웃음) “너는 해외영화제 다니면서 겉멋만 들었다”고 어찌나 혼을 내시던지.
Q. 영화 업계 사람이기에 더욱 반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시내: 맞다. 영화 쪽 일이 힘들다는 걸 알고 있는 이모로서는 조카가 회사까지 차리겠다고 하니까 걱정이 크셨던 것 같다. 또 우리 이모가 영화 보는 눈이 엄청 대중적이다. 기본적으로 예술영화를 못 견뎌.(일동웃음) 그래도 당사자인 내가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결국 집에서 백기를 들더라. “그래, 2년만 해 봐라. 대신 돈은 꿔 줄 수 없다”라면서. 그렇게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내 돈 천만 원으로 회사를 차렸다. 적금을 깨서. 그게 4-5년 전인데, 사실 회사랄 것도 없었다. 사무실이나 직원은 생각할 수도 없었거든. 집에 노트북이랑 팩스복합기 하나 놓고, 파자마 입고, 온라인-오프라인 홍보를 혼자 다 했다. 지루하면 카페 가서 일하고.
Q. 이거야 말로 ‘무한도전’이다.(웃음) 오드 이름도 그때 지은건가.
김시내: ‘픽쳐스’나 ‘필름’은 싫었다. ‘오디언스(Audi-ence·관객)’에서 따와서 오드라고 지었다.
Q. 직접 회사를 차려서 해보니 어떻던가.
김시내: 운이 좋았다. 독립을 한다고 하니까, 알고 지내던 분들이 도움을 줬다. 프랑스 영화 두 편으로 시작을 했는데, 그 중 한편은 친한 친구가 선물처럼 준 작품이다. “어차피 한국에서 안 팔릴 것 같으니, 부담 느끼지 말아라. 잘 되면 줘라” 하면서. 첫 번째 영화는 흥행은 안됐지만 400-500만 원 정도 벌었다. 내 월급을 생각했다면 마이너스였겠지만. 세 번째로 구매한 영화가 ‘클라라’였는데, 그게 좀 잘됐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자면.
김시내: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티스’. 그 영화가 제한상영가(사실상 국내상영이 불가능한 등급)를 받았다. 야한 영화는 아니지만, 성기노출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오리지널리티를 위해 해당 장면을 자를 수는 없고. 너무 신경을 써서 일주일동안 목소리가 안 나왔다. 프랑스 측에서는 “충분하다. 그렇게까지 일하지 말아라”고 했지만, 더 잘 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Q. 레오 카락스와는 인연이 깊다. 그의 영화(‘퐁네프의 연인들’ ‘미스터 레오스 카락스’) 대부분이 오드를 통해 수입됐는데.
김시내: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배우이자, 감독이다. ‘홀리 모터스’가 힘들긴 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레오 카락스 에이전트’처럼 발돋움한 느낌도 있다.(웃음) ‘홀리 모터스’의 경우 처음 영화를 접하고,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있었기에 다시 한 번 봤는데, 역시 좋았다. 그럴 땐 약간 연애하는 기분도 든다. ‘홀리 모터스’ 제작사에 오퍼를 했는데 처음 돌아온 이야기가 “혹시 (금액에서) 0이 하나 빠진 게 아니냐”였다.(웃음)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금액으로 수입을 하긴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그땐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 빨리 달라” 그랬으니.(웃음)
Q. ‘홀리 모터스’ 외에도 ‘트라이브’ ‘리바이어던’ 등 대중들에게 난해하다면 난해할 수 있는 예술영화들을 꾸준히 수입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인가.
김시내: 글쎄. 개인적 취향 같기도 하고.(웃음) 또 우리는 회사 규모가 작은 대신, 자유로우니까. 규모가 조금 있는 곳은 여러 과정이 있지 않나. 담당자가 어떤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들어도, 위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꺾이는 경우도 있을 거다. 우리는 그런 게 없었으니 “좋은데? 해 볼까?”가 바로 가능하다. 그리고 내겐 그런 영화가 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구매를 하게 되는 영화가. 그런 영화를 만났을 때는, ‘이 영화가 몇 명이 들까’는 추후의 문제가 된다.
Q. 어땠든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좋은 영화를 찾아주는 덕에, 보다 다양한 영화를 우리가 볼 수 있으니.
김시내: 주변 수입사-배급사-극장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문화에 공헌을 많이 하십니다” “역시 한국사절단이네요”(일동웃음)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때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비비안 마이어가 세계적인 사진작가이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다들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딱히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 영화가 진짜 좋았을 뿐.
Q. 그럼에도 매번 모험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영화를 수입할 때 지키고자 하는 게 있을 텐데. 기준이랄까.
김시내: 다른 회사는 모르겠다. 내 경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다. 물론 나 역시 데이터를 보고, 마켓 상황도 유심히 살핀다. 하지만 배급 뿐 아니라 마케팅도 직접 하는 입장에서 싫은 영화는 못하겠다. 어렵기는 하다. 우리가 수입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극장에서 크게 환대를 받거나, 언론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작품은 아니었으니까. 결국 우리가 관객/극장/언론을 설득해야 하는 건데, 그랬을 때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이게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Q. 인생의 모토가…
김시내: 오늘을 즐겁게 살자.(웃음)
Q. 점점 수입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는데, 모토가 잘 지켜졌으면 한다.(웃음)
김시내: 그래서 영화제 마켓에 가면 최대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령 어떤 영화를 봤는데 해당 영화 리뷰가 최고로 나오고, 반응도 좋고, 너나 할 것 없이 그 영화에 관심을 가지면 이성이 흔들리기 쉽다. ‘나라고 안 할 이유는 뭐야’ 하면서 가격 경쟁에 뛰어들 위험도 크고.(웃음) 그런데 외국에서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국내에서는 안 되는 영화들이 많거든. 그래서 이제는 마켓에 가도 분위기를 경계하는 편이다. ‘처음 마음 먹은 영화에 집중하자. 좋은 영화는 매년 나온다’ 이러면서.
Q ‘나의 소녀시대’의 성공이 앞으로 오드의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칠까.
김시내: 앞으로도 기본원칙은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를 하자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많은 곳에서 ‘제2의 나의 소녀시대’를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만영화든 유럽영화든 마음이 진짜 움직이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
Q. 올해 칸마켓에서는 어떤 영화를 구입했나. 개봉 대기 중인 영화도 알려 달라.
김시내: ‘더 랍스터’를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 ‘더 킬링 오브 어 새크리드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를 구매했다. 아직 시나리오 단계인 영화다. 칸국제영화제 개막 3일 전에 제작계획이 발표됐는데, 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구매 확정을 받았다. 동성애나 에이즈 문제 등 금기시된 주제를 과감하게 찍어 온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플의 생애를 다룬 ‘메이플소프:룩 앳 더 픽처스(Mapplethorpe:Look at the Pictures)도 최근 계약했다. 올해 개봉을 대기 중인 작품은 일단,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테일 오브 테일즈’가 8월에 개봉한다. 그리고 ‘매기스 플랜’이라고, 에단 호크-줄리안 무어가 나오는 영화도 올 가을 정도에 선보일 예정이다.
Q. ‘나의 소녀시대’와 함께한 시간은 어떻게 남을 것 같나.
김시내: 지난 한 달,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흥행을 떠나서, 함께 한 사람들과의 시너지가 너무 좋았다. 함께 뭔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이토록 강하게 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잠을 조금 더 줄일 걸,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서로 양보하고 도와가며 달렸던 시간이다. 이 자리를 빌려 ‘국외자들’(홍보), ‘투래빗’(온라인홍보), ‘핍스’(동영상), ‘케이즘’(디자인), CGV(극장)에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아름답게 남을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