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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퓨어킴의 ‘퓨어’한 욕망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퓨어킴(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퓨어킴(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작품은 창작자의 욕망을 비춘다. 가수 퓨어킴이 2년 만에 내놓은 신보 ‘젬(GEM)’은 꽤나 순수한 욕망을 담은 작품이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빛 같은 이야기를 주고 싶었어요. 동화 ‘프레드릭’에서 프레드릭이 빛과 이야기와 햇살을 나눠준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와 관능적인 눈빛으로, 퓨어킴은 지금 ‘퓨어’한 이야기를 노래한다.

Q. ‘퓨리파이어(Purifier)’ 발매 이후 2년 만의 신보입니다. 어떻게 지냈어요?
퓨어킴:
그냥 쉬었어요. 영감을 얻기 위해서 억지로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자연스럽게 영감이 차오르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내향적인 성격인데다가 ‘집순이’ 기질이 있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습니다.

Q. 회사의 압박은 없었나요? ‘빨리 음반 내야 하지 않겠니?’라는.(웃음)
퓨어킴:
전혀요. ‘미스틱 소속 가수들은 프로듀서의 뜻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회사에 들어온 뒤 낸 음악은 모두 제가 하고 싶었던 스타일의 것들이었어요. 설령 그것이 과거의 제 음악과 다른 느낌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Q. 미스틱 이적 이후 발표했던 ‘마녀마쉬’, ‘퓨리파이어’에서 대중적 접근을 시도한 건 사실이에요. 때문에 ‘미스틱 때문에 퓨어킴의 색깔이 옅어졌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을 것 같습니다.
퓨어킴:
원래 팝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들어요. 다만 제가 곡을 쓸 때 그런 색깔이 안 나왔을 뿐이에요. 미스틱에 들어온 뒤 팝적인 노래를 하고 싶었고 그 결과물이 ‘마녀마쉬’나 ‘퓨리파이어’에요. 반대로 이번 ‘젬’ 음반에서는 제 초기작 느낌이 난다고 하는데, 그 때의 러프함과는 또 달라요. 결국 저는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에요.

Q. ‘퓨리파이어’에선 윤종신·정석원과 호흡을 맞췄고 이번 음반 작업엔 포스티노가 함께 했습니다.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퓨어킴:
음악을 만들기 전부터, 그러니까 음반 테마를 정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부터 프로듀서 포스티노 오빠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요. 게다가 ‘마녀마쉬’, ‘퓨리파이어’를 통해 협업에 대한 경험을 쌓았으니 노하우가 생기기도 했고요. 훨씬 협업다운 협업이었어요.

Q. 수록곡 세 곡 모두 영어 가사인데다가 내용이 상당히 난해합니다. 어떤 노래인가요?
퓨어킴:
‘펄스(Pearls)’는 진주와 조개껍데기에 관한 이야기에요. 진주가 조개보다 크잖아요. 진주는 껍데기 안이 답답할 테고 반대로 조개는 진주를 품느라 힘들겠죠.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둘은 서로 맞지 않는 관계이기에 용기를 내서 박차고 나와야 해요. 결국 진주가 계시(Epiphany)를 받고 조개를 열고 나가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다이아몬드’도 비슷한데 잘못의 소재가 명확하게 세계(혹은 존재나 관계)에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를 다이아몬드의 강인하고 순수한 성질에 비유해 표현했습니다.

이제 진주와 다이아몬드는 잘못된 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겠죠? 그런데 에메랄드는 번영과 행복을 의미하는 보석이거든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누군가 에메랄드 같은 존재를 심어준 거예요. 그리고 그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켜 내려면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나에게는 좋은 것이 타인에겐 치명적일 수 있고 내게 쉬운 믿음이 남에겐 어려울 수 있으니, 뭔가를 강요하지 말자는 거죠.

▲가수 퓨어킴(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가수 퓨어킴(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Q. 보석이란 소재에서 세 곡의 주제를 가져온 건가요? 아니면 반대로 위의 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보석을 떠올렸나요?
퓨어킴:
동화 ‘프레드릭’에서 보석이란 소재를 가져왔어요. 들쥐 프레드릭의 이야기인데, ‘개미와 베짱이’랑 비슷해요. 다른 들쥐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곡식을 모을 때 프레드릭은 빛과 이야기와 햇살을 모아요. 마침내 겨울이 왔을 때 친구들에겐 아름다움이 없는 거예요. 그 때 프레드릭이 자기가 가진 빛과 이야기와 햇살을 꺼내 건네요. 프레드릭이 가진 빛을 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생각할 시간이 많잖아요, 프레드릭처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 제가 아름다운 빛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Q. 당신에게 아름다움을 준 건 무엇인가요? 또 당신이 받은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의 근원은 무엇이에요?
퓨어킴: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모두 제게 아름다움을 줬어요. 그런 경험 덕분에 저도 다른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고요. 다만 ‘내가 위로가 될 것이야’, ‘빛을 퍼뜨릴 것이야’라는 의도가 선행하지는 않아요. 그건 웃긴 거죠. 메시지를 얻는다거나 가치판단을 하는 건 듣는 사람의 몫입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어떤 가수로 남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제 대답은 같아요. “여러분이 기억해주시고 싶은 모습으로 남고 싶어요.”

Q. 당신에겐 한국이 조개껍데기 같은 세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치관이 뚜렷한데, 그걸 거침없이 말하는 여자, 심지어 섹시하기까지 한 여자에게 우리 사회가 갖는 스테레오타입이 있잖아요.
퓨어킴:
외국이라고 다르간? 비슷해요 사실. 어디에서나 불합리한 부분은 있죠. 다행히 부모님의 교육 방식이 제가 높은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어렸을 때부터 토론도 굉장히 많이 했고 하고 싶은 말은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다 하게 해주셨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누군가 스테레오타입을 갖고 나를 바라본다면 그게 그 사람의 지경인 거죠.

Q. 당신에 대한 기사 상당수가 당신의 몸매에 대한 내용에요. 그 또한 속상하지 않고요?
퓨어킴:
외모도 저의 한 부분이에요. 기분 나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다른 부분이 더 돋보인다면 제 음악이 그들의 취향이 아닌 거겠죠. 그리고 사실, 사람들은 남 얘기를 쉽게 하면서도 남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요.

Q. 음악에 대한 글은 어때요? 당신이 대중지향적인 성격의 가수는 아니니까 타인의 평가 혹은 평론에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퓨어킴:
무심한 건 아니에요. 다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일이니 (미련을) 잘 놔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힘들 게 하는 것들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훈련했죠.

Q. 혹시 상담이나 강연에는 관심 없어요?
퓨어킴:
그렇지 않아도 진짜 웃긴 게,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동네 아주머니가 제게 인생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더래요.(웃음) ‘이고 뮤직(Ego Music)’이라는 책을 준비 중인데 강연과 비슷한 성격이에요. 음악을 교육받은 적은 없는 사람이 8주 동안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녹음하는 프로그램이거든요. 그런데 그 노래가 자기 자신에 대한 노래에요. 8주 동안 나에 대해, 또 내게 중요한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죠. 정말 보람차고 재밌어요. 제 커리어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부분 중 하나에요.

▲퓨어킴(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퓨어킴(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Q. 진주와 다이아몬드 모두 하나의 세계를 깨치고 나온 존재입니다. 혹시 당신에게도 ‘깨뜨림’의 경험이 있나요?
퓨어킴:
(다이아몬드가 깨뜨린 게) 관계일 수도 있어요. 가령 친구나 연인 관계를 생각해봐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는 안 맞는 사람, 있죠? 이별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와 맞지 않는 관계임을 알고 있다면 깨뜨리고 나와야 하죠.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Q. 음악을 시작한 것도 당신에겐 일종의 ‘깨뜨림’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버클리 음대 재학시절, 지도교수로부터 “천재성은 있으나 음악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음악을 직업으로 선택했고요.
퓨어킴:
저는 부러움을 잘 몰라요. 누가 뭘 잘하면 그냥 예뻐요. ‘수고했다’, ‘장하다’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유일하게 질투가 나는 대상이 여자 싱어송라이터였어요.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이 음악이란 뜻이죠. 그걸 깨달았으니 용기 있게 전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의외로 공부를 꽤 잘했거든요.(웃음) 하지만 제가 마음속 깊이 하고 싶었던 유일한 일이 음악이었으니 어떻게 해요, 해야지. 힘들어도 용기를 갖고.

Q. 당신에게 부스터가 되어주는 힘이 있다면요?
퓨어킴:
어떤 일이든 우선순위가 있잖아요. 우선 해야 하는 일을 끝내야죠. 대학 졸업은 엄마와 약속한 일이라 해야 했어요. 그런데 음악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자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게 확실해지자 뒤도 안 돌아보고 나아갔어요. 그 뿐이에요.

Q. 음악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게 공부일 수도 있고요. 내가 덜 잘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단 의미인가요?
퓨어킴:
뭔가를 잘한다는 건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이익이나 진리를 얻기 편한 일이란 의미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전 음악에 자신 있어요. 그리고 내가 음악보다 더 잘하는 일이 있다는 건 남들 생각이에요. 하지만 제 삶은 제가 행복해야 해요. 그래야 ‘다른 사람 때문에 이 일을 선택했는데, 불행해’라고 탓하지 않게 되고요.

Q. 가수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에요?
퓨어킴:
행복? 저는 감사한 때라고 얘기할래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히 만족해요. 그런데 가끔 제 음악을 듣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고맙죠. 예쁘고 장하고. 행복한데,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행복한 건 감정이잖아요. 감정은 항~상 변해요.

Q. 그럼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퓨어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거요. 그래서 저는 힘들어도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열심히 해요.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Q. 흔히 결핍이 있을 때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부족한 게 없는 사람처럼 보여요.
퓨어킴:
세상에 결핍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다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죠. 괜찮다가도 죽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 아니겠어요? (결핍은) 다 있죠. 계속 단단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게 마음에 들어요. 얼굴만 안 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늙겠지.(웃음)

Q. 영감이 차올라야 작업을 한단 얘기도 했어요.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퓨어킴:
정확하게 따질 수 없어요. 기사 쓸 때 ‘커피를 마시면 100% 마음에 드는 기사가 나온다’ 그런 거 있어요? 없죠? 저도 영감이 어떻게 차오르는지 몰라요. 그냥 기다리는 거예요. 그리고 한편으론 ‘안 되면 어쩌겠어’라는 생각도 있어요. 그동안은 그냥 (음악이) 됐을 뿐이에요, 가만히 있는데. 조바심도 안 냈고요. 내가 무슨 행동을 한 게 아니라서 앞으론 음악이 안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못하는 거죠. ‘이고 뮤직’ 가르치면서 좋은 남자 만나 아기 낳고 잘 살고 있어야지, 뭐. 하하. 어쩔 수 없잖아요.

Q. 당신이 29세 때 했던 인터뷰를 봤어요. 당시 서른 살이 되는 게 기대된다는 얘기를 했죠. 서른을 넘긴 지금, 어때요?
퓨어킴: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점점 더 여유로워지긴 해요. 하나의 현상을 다면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더 넓은 차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힘든 일을 견디는 힘도 커지는 것 같아요. 엄마가 말씀하시길 신체적으로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나이를 잘 먹으면 좋대요. 지금까지 잘 해왔다면 지금이 좋을 때라고요. 정말 그래요.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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