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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판도라’를 열면 기시감이 우수수…현실이 우르르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NEW 제공)
(사진=NEW 제공)

사고가 발생했다. 대통령은 상황 파악을 못한다. 실세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허수아비 취급한다. 경제 논리와 정치 알력 다툼 속에서 진실은 은폐된다. 언론 통제가 이뤄진다. 정부의 무능은 그렇게 국민의 피해로 돌아온다.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이야기? 맞다. 그런데 이건 ‘판도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판도라’는 어쩌다보니 현실이 된 영화다. 아니, 영화 같은 현실인가.

원자력발전소 직원 재혁(김남길)은 어릴 적, 원자력 사고로 아버지와 형을 잃었다. 어머니와(김영애)와 형수(문정희)는 그가 믿고 의지하는 가족. 든든한 여자 친구 연주(김주현)도 그에겐 가족이나 다름없다. 평화롭던 어느 날, 한반도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에 노출된 원자력발전소는 속수무책이다. 폭발로 인해 방사능은 유출되고, 전국은 공포에 빠진다. 하지만 대통령(김명민)과 정부엔 뾰족한 방안이 없다. 2차 폭발을 막을 유일한 방안은 결국 국민이다.

‘판도라’는 단점이 적지 않은 영화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해운대’ ‘아마겟돈’ ‘연가시’ 등이 튀어나온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판도라’만의 특징이라 부를만한 개성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이 영화. 지나치게 공식적이고 편의적이다. 코미디로 문을 연 후, 가족애를 버무리고, 영웅을 만들어 뭉클함을 안기려 한다. 마지막 장면에선 어김없이 최루성 신파가 등장, “이래도 안 울래?” 타이르는 느낌이다.

지나치게 계몽적이고, 과도하게 설명적이란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원자력의 폐해를 내내 설파하던 영화는 마지막 순간 ‘한국은 원전 밀집도 1위 국가’라는 자막까지 띄운다. 21세기 어울리지 않는 1980년대스러운 연출이다.

그럼에도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면, ‘판도라’가 대중오락영화로서 관객을 리듬에 태울 줄 알기 때문일 게다. 신파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며 공식에 충실한 것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다. 그 안에서 대중적인 호흡을 조율할 줄 알면, 적어도 그렇다. ‘판도라’는 그 호흡을 어느 정도 살려낸다. 가족애와 소시민 영웅, 우정과 희생, 대규모 몹신(mob scene) 등을 시의 적절하게 뒤섞은 영화에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눈물을 적시며 극장을 빠져나올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판도라’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것은 편집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금’이다. 제작부터 개봉까지 4년. 4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화 속 가상 이야기는 현실이 됐다. 시국과 맞아떨어져 ‘재난영화를 찍었는데 다큐가 돼 버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상황. 외부 요건과 결부해서 작품을 판단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도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개봉 시기는 여러모로 절묘하다, 할 수 밖에.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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