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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반 블랭크 “돈은 됐어. 난 사랑을 퍼뜨릴 거야”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래퍼 반 블랭크가 소속된 ‘한량사’는 문자 그대로 ‘한량들의 모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평생을 놀고먹는 한량의 삶을 거부할 자가 세상천지 어디 있겠냐마는, ‘놀기’가 ‘먹기’를 담보해주지 않는 것이 현실 세계의 잔혹한 이치. 어느 순간 놀이가 사라지고 열정이 사라지고 사랑이 사라진다. 남은 것은 먹고 사는 문제 뿐.

“퍽 머니 스프레드 러브(Fuck money, Spread love).‘ 반 블랭크는 자신이 놀이를, 열정을, 사랑을 잊을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많을수록 좋은 것이 돈이라지만 돈 때문에 순수성을 잃지는 않겠다는 각오다. 두 다리에 단단하게 힘을 주고서 반 블랭크가 첫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추신. 반 블랭크는 현재 정규 음반을 준비 중이며 오는 2017년 1월 14일 홍대 인근에 위치한 클럽 재머스에서 공연을 펼친다. 이후에도 신곡과 공연을 통해 꾸준히 관객들과 교류할 예정이다.

Q. ‘반 블랭크’라는 이름은 래퍼보다는 DJ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떻게 작명했나.
반 블랭크:
가장 좋아하는 만화책의 주인공 이름이 ‘반’이다. 처음엔 ‘반’으로 활동을 하다가 음반을 내려고 보니까 이미 ‘반’이란 이름의 뮤지션이 있더라. 그래서 블랭크를 붙인 거다. 블랭크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냥 ‘빈 칸’이다.(웃음)

Q. 가장 좋아했다는 만화책 제목이…
반 블랭크:
‘아일랜드’. 한국 만화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지금은 웹툰으로 연재되고 있다. 반이란 캐릭터는 시크하면서도 ‘츤데레’ 같은 이미지가 있다. 나와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고 닮고 싶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Q. 시크하지만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인물인가.
반 블랭크: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연쇄 살인마로 나오는데, 아직 베일에 싸인 캐릭터다. 아직 완결이 안 나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Q. 이런. 그러다가 반이 악당으로 밝혀지면 어떡하나.
반 블랭크:
나쁜 놈은 아닐 거다. 결국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고 있다.(웃음)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솔로 데뷔곡인 셈이다. 소감이 어떤가.
반 블랭크:
반 블랭크라는 이름으로 내는 첫 곡이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담아 놓은 노래라서 사람들이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해내길’이란 제목 자체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이자 크루 멤버들, 주면 사람들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다.

Q. ‘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욕구의 원천이 궁금하다.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진 않나.
반 블랭크: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 음악이 가장 힙합스럽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내 이야기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거부감이랄까, 부담 같은 것은 크게 느껴본 적 없다. 아마 다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Q. 음반 커버에 대해 “갇혀있는 스스로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설명했다. 당신을 가둬두고 있던 건 무엇이었나.
반 블랭크: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과 유명해져야 한다는 압박감. 그것 때문에 내가 뭘 해야 할 지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압박에서 빨리 나와서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옳다고 느꼈다.

Q. 압박에서 벗어났다는 건 돈이나 유명세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는 건가.
반 블랭크: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욕심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채로 음악을 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돈을 벌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버는 게 중요하다. 제이콜이라는 뮤지션이 이런 말을 했다. “퍽 머니, 스프레드 러브.(Fuck money spread love)” ‘돈은 꺼져, 난 사랑을 퍼뜨릴 거야’ 라는 의미인데, 음악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인드다. 원래는 그 문구로 타투를 새기려고 했는데, “퍽 머니”를 새겼다가 평생 “퍽 머니”가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스프레드 러브”만 새길까 싶다. 으하하.

Q. 개인적으로 “실패가 내 경험이 되는 감옥”이라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실패가 경험이 된다는 얘기는 흔하지만, 그 경험을 ‘감옥’이라고 표현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인 것 같다.
반 블랭크:
실패를 여러 번 겪고 나서 오히려 더 감옥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더 성공과 돈에 집착하게 되고 실패를 빨리 만회하기 위한 무리수를 두게 되더라. 그게 감옥에 갇혔다는 표현으로 나왔다.

Q. “내가 돈과 성공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고 직시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반 블랭크:
음악부터가 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멋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더라. 내가 이러려고 음악했나 자괴감이 들고.(웃음) 한 번 더 “퍽 머니 스프레드 러브”를 되새기면서 작업한 노래가 ‘해내길’이다.

Q. 지금 당장 ‘해내길’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반 블랭크:
가장 소박한 목표는 내년에 부모님 건강검진 시켜드리는 것, 그리고 차를 사는 것이다. 운전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는데 운전의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음악하면서 평생 먹고 사는 거. 큰돈을 바라진 않는다. 물론 많이 벌면 좋겠지만,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로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가장 큰 목표다. 그걸 이루기 위해 하나씩 디테일하게 목표를 잡아서 이뤄나가고 있는 중이다.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부산 출신이라고 들었다. 서울에 온 건 언제인가.
반 블랭크:
2013년 12월 31일. 새해를 서울에서 맞이하고 새 출발을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2인조로 활동할 때인데 당시 부산에서 정규 음반을 발매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잘 만들어진 음반이라 ‘이걸로 서울에서 활동해보자’는 심산으로 올라왔다.

Q. 와보니 어떻던가.
반 블랭크:
차갑더라. 뒤통수를 많이 맞았다. 공연을 하고도 출연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올해까지 활동해보고 잘 안 되면 부산에 내려갈 생각도 했다. 지금은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Q. 처음 서울에 온 날의 각오는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은데.
반 블랭크: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그 후 한동안 위축이 되어 있기도 했는데 최근에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쓰는 곡마다 만족스럽고 스스로 더욱 발전했다고 느끼고 있다.

Q. 기복은 없나. 만족이라는 게 객관적인 수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만족과 자책을 오갈 것도 같은데.
반 블랭크:
기복은 거의 없다. 작업할 때 외에는 생각 없이 사는 편이다.(웃음)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다. 짜증 낼 일도 없고 화낼 일도 없다.

Q. 의외다. 래퍼들에게 ‘분노’는 미덕에 가까울 것 같은데.
반 블랭크:
그렇지 않아도 다음 음반에서 하려는 얘기가 ‘화’에 대한 것이다. 평소에는 짜증,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데 작업을 할 때만 격해진다. 음악적인 영역에서 느끼는 설움, 이를 테면 ‘내 음악은 분명 훌륭한데, 너희들은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 하는 감정이 가사로 잘 나오더라.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듣고도 느끼지 못하는 ‘막귀’들, 다 사라져라” 같은 느낌? 하하.

Q. 많은 인디 아티스트들이 느끼는 온도 차이지 않을까 싶다.
반 블랭크:
이제 점점 (온도 차를)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리 구린 음악이라도 방송 한 번 잘 타면 이슈가 되지 않나. 처음에는 씁쓸했는데 지금은 인정하고 있고, 나도 미디어에 적응해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한다.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힙합을 널리 노출시킨 사례는 Mnet ‘쇼미더머니’가 대표적이다. 단숨에 유명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일정 부분 담보하고 있지 않나.
반 블랭크:
‘쇼미더머니’에 나가서 잘 되고 싶은 마음, 당연히 있다. 다만 그 이후의 행보가 중요한 것 같다. 결국 음악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하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하는 것.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Q. 아주 유명한 회사에서 “너를 스타로 만들어줄 테니 우리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라”고 제안한다면 그 땐 어떡할 텐가.
반 블랭크:
그러면 고민을 해볼 것 같다. 으하하하. 타협을 안 하겠다는,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어느 정도 선에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Q. 어려운 문제다. 낮은 유명세 때문에 좋은 음악이 묻히는 건 분명 슬픈 일이지만, 유명세를 얻기 위해 음악적인 영역에서 타협해야 한다는 것 역시 안타깝다.
반 블랭크:
맞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많다. 내가 낸 음반들은 다 좋다고 생각하는데 음원사이트에 노출하기가 참 힘들더라. 딜레마다.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반 블랭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음악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
반 블랭크:
늦은 편이다. 군 제대 후 일본 유학을 갔다 와서 제대로 음악을 시작했다. 스물여섯 살 때쯤인 것 같다. 음악으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그 때부터 했다. 그 전에는 취미로만 했다. 음악 하는 ‘척’이었다.

Q. 유학까지 다녀왔을 정도면 진지하게 준비하던 일이 있었던 것 아닌가.
반 블랭크:
그렇지는 않다.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군대에서 전역하고 나니 군 휴학 3년 중 1년이 비더라. 더 넓은 세상을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일본에 가게 됐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간 건 아니었지만 많이 배워 왔다.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내 자신을 봤다.

Q. 유학 경험이 음악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에 영향을 준 건가.
반 블랭크:
처음에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다. 일본에서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는데, 정말 즐거웠다. 아예 바텐더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뭘까. 나는 뭘 할 때 즐거운가.’ 그 때 음악을 직업으로 삼자고 결심했다.

Q.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만 해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당신은 반대겠다.
반 블랭크:
현실적으로는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해라’는 말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로 돈까지 벌면 더없이 행복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는 낫지 않을까 싶다.

Q. “좋아하는 일로 돈까지 벌면 더없이 행복하다”라….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논리다. 그런데 생계에 대한 책임이 따르면 좋아하는 마음이 훼손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덜 순수해진다거나.
반 블랭크:
맞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때도 있었다. ‘해내길’의 가사에도 “순수를 논하던 시절의 나로 되감고”라는 내용이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돈을 연구하지 말고 펜과 음악을 연구하자’, ‘퍽 머니 기브 스프레드’의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Q.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기대했던 당신의 모습과 지금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비슷한가.
반 블랭크:
조금 다르지만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 오히려 더욱 성숙해진 상태에서 내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고 있지는 않아도 지금의 방향으로 가는 게, 나는 더욱 재밌다.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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