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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래원, 이제서야 알게 된 것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김래원은, 상당히, 신중했다. 대화를 편하게 즐기기보다는 한 마디 한 마디 아끼는 쪽이었고, 내 뱉은 단어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으면 다시 돌아가 바로잡거나,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대답은 어떻게든 보충하려했다. 좋은 의미로 던진 질문들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 안에서 한 번 걸러서 곱씹는 쪽이었다. 정중한 동시에 예민한 면모가 김래원에겐 있었다.

그런 김래원을 보며 그의 지난날을 떠올려봤다. 어느덧 연기 인생 20년. 그러니까, 김래원의 신중함은 20년 세월 동안 외부의 바람에 깎이고 깎이며 터득한 그만의 어떤 방식일 텐데, 개인적으로 이런 그의 태도가 어른스럽다 여겨지면서도 일견 애틋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성숙해진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장애물들 앞에서 단단해진 사람의 면모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스스로를 늘 의심하고, 부족한 점들은 받아들인 후, 고쳐나가려 한 시간이 쌓여 지금의 김래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프리즌’으로 돌아온 김래원은 어떤 틀 안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배우다.

Q. 피곤해 보인다.
김래원:
잠을 잘 못 잤다. 내가 생각을 한 번에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어제 밤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을 뒤척였다. 오랜만에 내놓는 영화라 그런 것 같다.

Q. 생각들은 좀 정리가 됐나.
김래원:
특별한 답은 못 구했다. 그냥 쭉 열심히 달렸구나, 싶었다.

Q. 아닌 게 아니라, 쉼 없이 달렸다. 드라마 ‘닥터스’와 ‘프리즌’ 외에도 곽경택 감독의 ‘부활’을 촬영했다.
김래원:
이렇게 빡빡하게 작품을 한 건 처음이다. 내가 보통 3년에 두 편 정도를 하는데, 이번엔 2년 동안 세 편을 달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런 분위기가 잘 만들어졌던 것 같다. 나는 작품에 들어가면 현장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이다. 지방촬영이면 핸드폰을 서울에 두고 가기도 한다. 현장에 젖어 있다고 표현하면 좀 이상할까. 중간에 촬영 외의 일을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면 흐트러지는 게 있다. 촬영 초반에는 특히 더 그렇다. 한석규 선배님 표현으로는 ‘달 떠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 폭이 이전보다 많이 줄긴 했다.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쌓인 건가.
김래원:
노력이다. 원래 좀 벼락치기 스타일인데 촬영 초반 어색한 느낌이 너무 싫더라. 촬영 전부터 시나리오를 보고, 연출자에게 묻고, 계속 녹아 들어가려고 한다.

Q. 20대 초반의 김래원은 또래 배우들 중 자신이 가장 연기를 잘한다는 자신감이 충만했었다.(웃음) 지금은 어떤가?
김래원:
하하. ‘도토리 키 재기’다. 그때는 그냥 자신감으로 할 때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운도 있어야 하고, 본인 열정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했으니, 오래했다. 함께 연기를 시작한 동료 중에 지금 주인공을 하는 친구가 거의 없다.

Q. 잘 버텨 온 걸까.
김래원:
버틴다는 생각은 안 했다. 중간에 살짝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소신껏 달렸다. 보여 지는 것들에 치우친 적도 있다. 지금은 아니다.

Q. (다른 질문을 하려고 하자, 잠시 멈춰 세우며)
김래원:
아, 잠깐. 이야기가 너무 내가 잘 했다,에 집중된 것 같아서…(웃음) 이야기 수습을 잘 못한 것 같다.

Q. 그렇다면 조금 더 들어가 보자. 보여 지는 것들에 치중했던 시기에 대해 묻고 싶다.
김래원:
예쁘고 멋있는 척을 했던 것 같다. 그럴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20대 배우 중 많은 이들이 그렇고, 시청자들도 그런 모습에 환호해주시니까. 그런데 난 이제 그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김래원하면 떠오르는 게 ‘옥탑방 고양이’다. 그때 생활 연기를 굉장히 잘 소화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김래원:
그때는 오히려 꾸밈이 없었다. 멋을 내거나 예뻐 보이려 안달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진정성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 땐 가끔 오해도 받는다. “왜 이렇게 신경 안 쓰냐”고, “연기 좀 하라”고. TV의 경우 시청자의 몰입이 흐트러지기 쉽다.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과장되게 해야 하는 게 있다. 영화와는 다르다. 좋다-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인 성향 상, 나는 꾸며진 연기는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오해를 받기도 한다. 모든 걸 느끼면서 연기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Q. ‘닥터스’의 대사, “결혼했니? 애인 있어? 그럼 됐다.” 이건 좀 멋있던데.(웃음)
김래원:
아, 맞다! 그건 조금 신경을 썼다. 인정한다.(일동웃음) 조금 젊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연기할 때 과하게 웃는다든지 목소리 깔진 않았다.

Q. 말랑말랑한 ‘닥터스’ 이후 ‘프리즌’을 통해 다시 거친 세계로 돌아왔다.
김래원:
‘프리즌’은 일단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한석규 선배님과 함께 한다는 것도 끌렸다. 무엇보다 나현 감독님을 만나고 ‘이 분이라면 나를 좋은 도구로 잘 활용할 수 있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좋은 도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원래 유건은 좀 눌러져 있는 캐릭터였다. ‘꼴통’이 아니라 ‘악질’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회의하고 수정하면서 지금의 유건이 됐다. 영화를 보면 중간 중간 미소를 드릴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데, 그게 모두 수정 과정에서 나온 거다.

Q.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했다.
김래원:
음산하고 싸늘한 느낌이 있었다. 실제로 춥기도 했고. 그 공간에 익숙해지기 위해 현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촬영 전에 일찍 가서 죄수복 입고 농구도 하고 그랬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시간들이 공간에 녹아 들어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Q. 아직 엔딩 신을 못 봤다고 들었다.
김래원:
가편집으로 봤는데 바뀌었다고 하더라. 그냥 안 보려고 한다. 보고 나면 아쉬움이 남고 계속 생각 날 테니까. 가장 미련한 게 과거에 대해 고민하는 것 아닌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계속 붙잡고 있으면 힘들어진다. 사실 감독님 붙잡고 부탁을 드린 장면이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덩치 큰 애를 심문할 때 “담배 있냐? 그냥 펴”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담배 있나?”가 안 들리더라. 사실 그 신이 재미있거든. “담배 있냐?”가 들려야 “그냥 펴”가 재미있는데, 앞 대사가 안 들리니까 뒤가 의미 없어져 버리더라. 너무 아쉬워서 “딱 1초만 늘려 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웃음)

Q. 엔딩 신을 못 봤다고 하니 이야기 해주고 싶은데, 감시탑 장면은 정말 뜨겁다. 한석규-김래원 두 배우가 정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연기하는구나 싶었다. 마치 좁은 링 위에서의 혈투 같았다.
김래원:
아, 그런가? 생각해 보니,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 정말 그렇네. 감시탑 계단으로 올라가면 문 양쪽으로 의자가 하나씩 놓여진 좁은 공간이 나온다. 한석규 선배님이 저 쪽, 나 이쪽. 그리고 스태프들이 그 사이를 오갔다. 잘은 모르지만, 선배님과 나 사이에…뭔가가 있었겠지?

Q. 팽팽한, 긴장감?
김래원:
(혼잣말) 아, 이거 말을 잘 해야 해…선배님은 굉장히 여유가 있으셨는데↗(일동 웃음)

Q. 아까부터 느낀 건데, 말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곱씹어서 하는 것 같다.
김래원:
나 때문에 누가 불편해 지는 게 싫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잘 울지도 않았다.

Q. 한석규 씨와는 친분이 원래 두터운 것으로 안다. 저음인 두 배우가 함께 하니, 묘한 느낌도 있었다.

김래원: 나는 그래도, 선배님을 만나고 많이 빨라진 편이다. 선배와 알고 지낸 지 7-8년 됐다. 선배님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친구들이 나를 대할 때 이런 마음이었구나’(웃음) 그건 농담이고. 사실 말투도 그렇고 여러 가지를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연기 호흡도 이전보다는 빨라지는 추세니까.

Q. 한석규 씨와는 낚시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낚시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김래원:
그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여유도 있고. 호수낚시, 바다낚시 가리지 않는다. 낚시계의 ‘끝판왕’이라는 갯바이낚시도 한다. 그건 정말 폐인들이 목숨 걸고 하는 낚시다. ‘닥터스’ 끝나고 한 달 동안 섬에 들어가서 낚시를 하기도 했다. 거의 섬사람이었다.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낚시 인증샷도 올리던데. 잡은 물고기가 크더라.
김래원:
어종마다 다르다. 감성돔낚시가 베이스인데, 우리 매니저가 52cm 크기를 잡은 적이 있다. 골프로 치면 홀인원, 야구로 치면 장외 홈런 몇 번 친 것에 비견되는 크기다. 나는 49cm 밖에 못 잡았다. 참돔-홍돔 같은 건 90cm도 잡아 봤다.

Q. 김래원 하면 유행어들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 대사들이 특이해서가 아니라, 김래원 특유의 ‘쪼’가 더해져서 명대사가 된 게 아닌가 하는.
김래원:
어? 나에게 ‘쪼’가 있나?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큰일 났다. 앞으로는 그것까지 신경 써서 연기를 해야 할 것 같다.

Q. 좋은 뜻으로 이야기를 한 건데, 반성모드다.
김래원:
뭐 하나에 갇히고 싶지 않으니까. 앞으로 계속 연기를 해야 하는데 똑같은 건 싫다. ‘프리즌’ 안에서도 진폭을 크게 가려고 한 이유다.

Q. 그래서 일까. ‘옥탑방 고양이’ 같은 로맨틱 코미디, ‘해바라기’ ‘강남 1970’ ‘프리즌’ 같은 액션, ‘천일의 약속’ ‘닥터스’ 같은 로맨스 장르를 이물감 없이 오간다.
김래원:
구분 없이 해왔다. 사실 처음에는 느와르 쪽 장르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게 어울리나? 나에게?’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남자 영화도 꾸준히 하게 됐는데, 대신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

Q. 초반의 김래원과 지금의 김래원은 어떤 게 가장 다를까.
김래원: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밸런스다. 때로는 내가 너무 돋보이지 않아야 한다. 상대가 돋보여야 한다. 가령 상대가 악역이다? 악역이 커져야지, 내가 악역을 꺾었을 때 그 느낌이 더 커 보인다. 그렇지 않고 내가 악역을 계속 누르면서 가면, ‘그깟 악역 이겨봐야’가 될 거다. 20년 연기 하면서 최근에야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너무 쉽게 하면 안 되는데. 20년이나 걸려 터득한 건데…그런데, 뭐. 모르는 사람은 얘기해도 모르긴 한다.(일동 웃음) 그리고 안다고 해서 그게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밸런스 문제다. 그런 밸런스 조절을 이제 좀 알았으니까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나에겐 지금 가장 큰 숙제다. 그래야 감독에게 좋은 도구로 쓰여지는 거다. 아직은 아주 좋은 도구는 아닌 것 같다.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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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배우는 도구라는 이야기를 자주 언급한다.
김래원:
예전에는 배우의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연기를 하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바뀐다. 영화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배우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전달하는 좋은 도구로 쓰이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제가 고집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공동작업이다. 지금은 감독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느냐를 이해하려고 하고 그 밸런스를 맞추려고 한다.

Q. 도구로서 아직 쓰이지 않은 모습이 있을 텐데, 그걸 제대로 꺼내 써 주는 연출자를 기다리기도 하겠다.
김래원:
물론이다. 그건 죽을 때까지.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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