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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칸시네마] 영화제의 사나이, 영화제에서 잠들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칸 해변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마련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추모 공간
▲칸 해변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마련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추모 공간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적인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분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지난 2009년 5월 23일, 칸영화제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던 인천공항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었다. (중략)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영화제가 혹독하게 탄압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러하다. 아직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제는 비로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지난 5월 9일 자신의 SNS에 남긴 글)

칸의 새벽, 예기치 않은 부고였다. 영화제의 사나이였던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또 다른 영화제에서 눈을 감았다. 황망하고도 황망한 비보였다.

사인은 심장마비. 징조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소 심장이 안 좋았던 고인은 16일 칸국제영화제에 도착 후,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진단은 ‘큰 이상 없음.’ 하지만 병원 진단이 무색하게 심장은 그에게 계속 이상 신호를 보냈다. 결국 고인은 제대로 된 조치도 받을 기회 없이, 18일 새벽, 프랑스 작은 도시 칸에서 눈을 감았다. 병원의 빠른 대처가 있었으면 어땠을 까란 아쉬움. 슬픈 운명 앞에 여러 생각들이 떠오른다.

고인은 1996년 출항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창설 멤버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는 곧 고인의 역사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제가 스물 한 살이 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부산이 아시아 중추 영화 도시로 발돋움 하는 기쁨도 있었지만, 외압과 보이콧이라는 시련도 있었다.

특히 영화 ‘다이빙벨’에서 촉발된 부산국제영화제 논란은 고인을 여러 방면에서 힘들게 했다. 함께 영화제를 이끌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과 전양준 전 부위원장이 부산시의 흠집 내기로 불명예스럽게 영화제를 떠나야 했고, 블랙리스트 논란이 영화제를 흔들기도 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불행 앞에서 고인은 묵묵히 영화제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고인이 어떤 마음으로 영화제를 부여잡고 있었을지, 감히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떠나간 동료들을 위해서, 위태위태한 영화제를 위해서, 인내하고 감내하고 때론 슬퍼했다.

그런 고인에게 새로운 정부 출범은 비이상적으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 혹은 훈풍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너무나 가혹하게, 그의 마음을 일찍 외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인이 떠난 날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지금의 부산영화제를 만든 한 영화인은 법정에서, 또 한명의 영화인은 칸에서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온 슬픈 운명을 통과했다.

현재 칸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칸에서 소개되고 있는 그 어떤 영화들보다 눈물짓게 하는 공간이다. 칸영화제 측도 고인을 추모했다. 칸은 고인을 이렇게 기억한다. “최고의 프로페셔널이자 최고의 프로그래머였고, 볼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보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영화계는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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