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
할리우드에서는 꾸준히 뮤지컬 영화가 제작돼왔다. '사운드 오브 뮤직'(1965)과 같은 고전 명작부터 재즈를 소재로 한 '라라랜드'(2016)까지 수많은 뮤지컬 영화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은 뮤지컬 영화의 불모지였다. 지난 9월 개봉해 116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2022)가 한국 뮤지컬 영화 중 가장 흥행한 영화로 꼽힌다.
이 불모지를 개척하기 위해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이 12월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졌다.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은 2009년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던 '단지동맹'부터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담고 있다. 그런데 이는 대한민국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당연히 새롭지 않은 줄거리다.
'영웅'은 이 첫 번째 난관을 '뮤지컬'로 돌파했다. 윤제균 감독은 오리지널 뮤지컬 넘버들을 스크린에 옮겼다. 단순히 원작 뮤지컬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무대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규모가 큰 장면들을 연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한국 뮤지컬 영화'라는 태생적 한계는 '영웅'이 넘어야 할 두 번째 난관이었다. 대화하다 갑자기 노래하거나, 마치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을 쳐다보면서 노래를 부르는 행동들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관객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윤제균 감독은 원작 뮤지컬에서 13년간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배우 정성화를 선택했다. 정성화의 캐스팅은 그야말로 묘수였다. 그는 '영웅'의 안중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며, '영웅'의 넘버에 익숙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정성화는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청년 안중근의 얼굴과 조선을 무단 침략한 일본을 심판하겠다는 독립군 대장 안중근 의사의 결연한 의지를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대화에서 노래로 넘어가는 순간들은, 처음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성화가 인도하는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웅'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의 마지막 궁녀 '설희' 역의 김고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의 나문희 또한 '영웅'의 완성도를 높였다. 김고은은 뮤지컬에는 없는 솔로 넘버 '그대 향한 나의 꿈'을 비롯해 '당신을 기억합니다', 내 마음 왜 이럴까' 등으로 기대 이상의 가창력을 보여준다. 정성화가 "뮤지컬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다.
나문희는 뤼순 형무소에 수감된 안중근에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그냥 죽으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조마리아 여사의 심정을 노래한다.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이더라도 눈물샘이 터지는 것을 막긴 쉽지 않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 하지만 아들을 사지에 보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애끊는 심정을 진심을 다해 노래하기 때문이다.
윤제균 감독은 '해운대', '국제시장' 등으로 한국 최초의 '쌍천만 감독' 타이틀을 얻었지만, '신파가 과하다'라는 지적을 항상 받았다. 8년 만의 복귀작 '영웅'에서는 그런 부분들을 최소화했다.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지도 않고, 안중근의 죽음을 신파로만 그리지도 않았다. 절박하고 치열했던 독립군 대장,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담백하게 그려냈다.
'영웅'의 마지막 난관은 개봉 후에 기다리고 있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영웅'은 한 주 앞서 관객들을 만나는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 물의 길'과 경쟁해야 한다. 과연 '영웅'은 마지막 난관까지 넘어설 수 있을까.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0분. 12월 2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