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성미 기자]
12일 방송되는 KBS 1TV '동네 한 바퀴'에서는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도시 천안으로 떠난다.
◆천안 명물을 담은 제과 명인 부부의 화과자
서울로 치면 명동과 같은 천안 원조 신도심, 신부동에 17년째 한자리를 지키며 고소한 빵과 과자를 굽는 제과점이 있다. 일본에서 제과 학교를 졸업한 아내 최경미 씨와, 서울의 유명 빵집에서 바닥부터 제빵을 배운 남편 유상모 씨가 함께 꾸려가는 이 과자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알록달록한 색감과 앙증맞은 모양의 ‘천안 화과자 세트’. 호두과자 가게가 많은 천안에서 좀 색다르게 천안의 맛을 알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호두를 주재료로 하되, 입장 포도, 능수버들, 성환 배 등 천안의 명물들을 예쁘게 형상화한 화과자를 만들게 되었다. 제과 명장 부부가 정교한 손품을 들여 빚어내는 아기자기한 천안 화과자 세트로 달콤한 눈요기 입요기를 한다.
천안 구도심의 전통시장인 중앙시장 골목길을 걷다가,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한 가게로 들어간다.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이 가게는 4대째 대를 이어서 운영한다는 기름집이다. 3대 아버지와 어머니, 4대 아들이 함께 운영한다는 이 기름집은 무려 95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디딜방아로 시작해서 현재는 최신식 기계를 들이는 변화는 있었지만 기름 한 방울도 속이지 않는 신용과 성실은 변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손님 역시 대를 이어 단골이 된단다.
개성에서 기름집을 하던 1대 故 현재성 씨가 천안에 자리 잡으며 시작된 가게는 2대 故 현석민씨, 그 뒤 3형제 중 맏이인 현원곤 씨가 이어받았고 지금은 현원곤 씨 부부와 그의 아들 현상훈 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4대인 현상훈 씨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 출신. 나이 드신 부모님이 힘들게 가게를 이끌어 가시는 걸 보고 가업인 기름집을 잇기로 결심, 교직을 그만두고 10년 전, 기름 짜는 일에 뛰어들었다.
천안 성남면의 한적한 시골 마을 길을 걷다, 새끼 젖소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는 청년을 발견한다. 아버지 김호기 씨와 축산학을 전공한 둘째 딸 김남영 씨는 젖소를 관리하고, 어머니 이선애 씨와 조리학과를 나온 막내딸 김남윤 씨는 치즈를 만들고 그 치즈와 잘 어울리는 음식을 개발하고 있단다.
결혼 후 남편과 목장을 하게 된 선애 씨는 우유 생산량이 많아 헐값에 나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에 남는 우유를 활용할 방편으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을 모시며 목장 일을 하고 치즈도 만드는 게 힘들었지만, 즐거운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네덜란드 등 치즈의 본고장에서 치즈를 배워 제대로 된 치즈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염도를 낮춰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치즈까지 만들어 냈다. 특히 한국에서는 직접 만드는 이가 거의 없는 네덜란드 정통 고다치즈가 이 목장의 자랑거리다. 손수 짠 우유로 당분을 첨가하지 않은 건강한 치즈와 요거트를 만드는 꿈의 목장에서 부부와 두 딸의 손길과 정성으로 만든 건강한 치즈와 요거트를 맛본다.
◆천안 토속의 맛, 새뱅이장뚝배기와 호두비빔밥
세종시와 접한 성남면의 공기 좋은 산길을 따라 걷다가 산속에 딱 한 채 있는 집을 발견한다. 마당에 200여 개의 항아리가 가득한 이 집은 씨 양봉석 김양순 씨 부부의 보금자리이자 예약제로 운영하는 식당이다.
안양에 살다가 15년 전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 집을 사서 내려왔다는 부부. 공기 좋은 이곳에서 3년을 지내고 시어머니가 편안히 눈을 감으신 뒤, 전남 영광 출신인 아내 양순 씨는 시어머니에게 배운 충청도 토속 음식으로 식당을 시작했다.
충남 지역에서 예로부터 비 오는 날 즐겨 먹던 토속음식인 ‘새뱅이장뚝배기’, 천안의 명물 호두를 활용한 호두비빔밥과 호두쌈장, 호두콩장 등 천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한 상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이좋고 유쾌한 부부가 함께 차려내는 구수한 한 상을 맛본다.
◆기억해야 할 우리의 뜨거운 역사, 독립기념관
마침 8.15 광복절을 앞둔 시점, 천안을 찾은 김에 목천읍 독립기념관에 들른다. 독립기념관에는 의미 있는 공간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만기의 발길이 닿은 곳은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이다. 일제가 한국인의 자유를 빼앗고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세운 식민 통치의 핵심 기관 조선총독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고, 철거된 건물 부재들이 독립기념관에 옮겨졌다. 전시공원을 둘러보며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배로 유명한 성환 읍내 골목길을 걷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서 기이한 외관의 낡은 집 한 채를 발견한다. 폐가인가 싶었는데 이 집은 천안에 단 한 채만 남은 120년 된 ‘적산가옥’이란다. 적산가옥이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후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을 말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적의 재산’을 뜻한다.
120년 된 일본식 가옥에 살고 있는 집주인은 올해 86세의 임성택 어르신 부부. 일제강점기, 인근에 사금 광산을 갖고 있던 일본인 지주가 지었다는 이 집에 노부부가 살게 된 사연은 6.25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사였던 임성택 어르신의 아버지가 피난길에 위험에 처한 한 산모를 처치할 공간을 찾다가 빈집으로 방치된 이 집을 발견했고, 그걸 계기로 성환에 의사가 없으니 이곳에 정착해 달라는 지역 주민들의 요청으로 이곳에 간단한 병원 시설을 갖추고 전쟁 중 다친 군인을 비롯해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용했던 병원 침대며 각종 의료도구, 진료기록 등이 2층 다락방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이곳에서 한평생 환자를 돌보던 아버지는 세상을 뜨기 전 이 집을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일본식 다다미방이라 겨울엔 춥고, 오래되어 복도가 꺼지고 창문도 잘 안 열리는 등, 불편한 점은 많지만 노부부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라는 주변 지인과 자식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지난 세월의 역사와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이 집을 지켜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