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맹선미 기자]
7일 방송되는 KBS 1TV '동네 한 바퀴'에서는 낮고 넓게 펼쳐진 양천구의 지붕, 신정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한 줄기 여유를 찾아 서울 목동, 신정동으로 떠나본다.
◆도심 속에서 즐기는 숲 뷰! 도토리묵 한 상
신정산 자락 아래 주택가, 산과 맞닿아 있는 곳에 둥지를 튼 부부가 있다. 지대가 낮은 곳에서 수해를 입고 무작정 높은 곳을 찾아 인적도 드물었던 산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는 두 사람. 36년 전, 이사 올 때만 해도 민둥산이었던 산은 어느새 울창한 숲을 이루며 한 폭의 수채화를 완성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어찌 둘만 볼 수 있을까.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절로 힐링이 되는 숲 풍경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아내인 김분숙(69) 씨가 도토리 음식 전문점을 차렸다. 은퇴한 남편 박철호(71) 씨도 함께 거든다. 주택가에 숨어 있어 알음알음 단골손님만 찾아온다는 집이지만, 부부는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있어 오늘도 행복하다.
한때 가방공장만 천 개가 넘어, 가방공장 골목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신월동. 90년대 초반만 해도 한 집 걸러 한 집이 공장일만큼 가방 생산의 메카였지만 IMF 이후 골목을 가득 채우던 재봉틀 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100여 개 공장이 지키고 있다는 동네. 조용해진 주택가에 재봉틀 소리가 흘러나오는 집을 발견했다. 17살부터 가죽 가방 제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최영수(67) 씨와 아내인 박경자(62) 씨. 직원 대여섯을 둘 만큼 규모가 있었던 공장을 접고, 이제는 조촐히 둘만 일하는 실정이지만 패턴부터 시작해 완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자부심으로 묵묵히 인생을 바쳐 왔다. 그들이 있어 신월동은 여전히 활기차다.
◆에펠탑이 서울에? 양천구 목동 파리공원
초가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도심에서 특별한 공원을 만났다.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룬 목동에 작은 프랑스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이곳 파리공원은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7년 문을 열었다. 미니 에펠탑과 무더위를 식혀주는 바닥분수가 반갑게 사람들을 맞이하는 곳, 에펠탑을 만난 동네지기도 인증 사진을 한 장 남겨본다. 오랜 세월 목동 주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준 파리공원에서 잠시 프랑스의 정취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프랑스에서 건너온 에그타르트
파리공원 근처 한 상가, 자신들의 얼굴을 플래카드에 당당히 걸어 놓은 부부가 있다. 미소가 아름다운 두 사람은 다름 아닌 동네 빵집의 주인장이다. 빵을 좋아해 자동차 연구원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남편 김도엽(39) 씨와 빵순이 아내 홍수형(30) 씨. 2년 전 문을 열었다는 이곳의 대표 빵은 에그타르트로, 김도엽 씨가 유학 시절 포르투갈에서 맛본 후 그 맛을 잊지 못해 수백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겉바속촉 원조의 맛을 제대로 구현해 냈다. 서른 살의 나이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전한 일이지만, 후회 없이 행복하다는 김도엽 씨의 가게가 오늘도 목동에 달콤한 냄새를 솔솔 풍긴다.
벽면 가득 약초 술이 들어찬 가게에서 매일 같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주인공은 김정숙(63), 김나언(54) 자매. 1남 6녀 딸부잣집의 둘째, 다섯째로 아홉 살 터울의 자매는 엄마가 딸을 챙기듯, 딸이 엄마를 따르듯 자라왔다. 일찍 작고한 아버지와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 대신 15살 어린 나이부터 물심양면 동생들을 챙겨왔다는 언니 김정숙 씨. 지금도 동생들을 위해 김치며 반찬을 손수 만들어 줄 정도다. 손도 크고 음식 솜씨도 좋은 언니는 유난히 허약했던 동생 나언 씨를 위해 약초 삼계탕을 만들었다. 언니의 동생 사랑을 증명하듯 12가지 약초를 넣어 우려낸 보약 같은 육수는 자매의 사랑처럼 진하다.
◆그리운 기억을 바람에 담아 말리는 할아버지의 옛날 국수
한참을 걷다 문득 고개를 든 곳에서 귀한 풍경을 마주한 동네지기. 햇볕과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는 국수가 정겨운 이곳은 추억의 제면소다. 전국에 몇 군데 남지 않았다는 제면소를 운영하는 임유섭(78) 씨는 40년 동안 이곳을 지켜 왔다. 이제는 장성한 자식들 덕을 볼 법도 한데, 한평생 가족들을 책임지며 바쁘게 살아온 그는 도통 쉴 줄을 모른다. 9년 전, 손발이 되어주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국수가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는 임유섭 씨. 제면소는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지만 아내의 빈 자리가 유독 크다. 아내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국수는 그의 숱한 눈물과 땀으로 말려낸 인생 국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