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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우리는 연애를 할 때, 스스로가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지를 깨닫죠”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김종관 감독 제공)
(사진=김종관 감독 제공)

단 하루 동안에 서울 서촌과 남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한 여자와 그를 둘러싼 세 남자의 이야기.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관계와 관계가 얽히면서 인간의 다양한 면모들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남자들이 그들 각자의 시간을 들고 왔다’는 생각에 들면서, 나는 이들의 서사가 더욱 흥미롭게 읽히기 시작했다. 이별한 남자 운철(이희준)은 과거의 시간을, 교제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는 흘러가는 현재의 시간을, 그리고 오늘 만난 남자 료헤이(이와세 료)는 어쩌면 미래일지 모를 시간을 들고 은희(한예리)의 공간에 침투한 건 아닐까. 그러니까 은희가 마주하는 건 각기 다른 남자이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연애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악의 하루’에는 막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이 보일법한 설렘과 배려도 있지만, 연애가 찢어지는 순간 남녀가 통과하게 되는 저열함도 엿보인다.

거짓말은 전자에도 후자에도 존재한다. 전자는 상대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후자는 상대방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거짓을 말한다. 과연 어떤 거짓이 더 나쁜가, 혹은 그 거짓들은 진짜 나쁜 것인가. 적어도 순간의 감정엔 솔직했으니, 저 거짓들은 어쩌면 진실이지 않을까. 멜로영화가 현실적인 결을 포기하지 않고도 흥미로울 수 있음을 보여준 이는 김종관 감독이다.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이 그랬듯, 장편 ‘조금만 더 가까이’(2010)와 그의 많은 글들이 그랬듯, 이번에도 김종관 감독은 익숙한 공간 속에서 흐르는 삶의 시간을 포착해 낸다.

Q. 2010년 개봉한 첫 장편 ‘조금만 더 가까이’는 5개의 에피소드를 묶은 영화라는 점에서 단편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악의 하루’가 본격적인 첫 장편영화로 읽히기도 합니다.
김종관:
그런 셈이죠. 그동안 여러 장편 영화들을 준비했는데, 기회가 안 닿았어요. 상업영화는 투자 문제 등이 걸려 있잖아요. 여러 기회들이 엇갈리면서 결국 ‘최악의 하루’가 본격적인 첫 장편 영화가 됐어요.

Q. ‘최악의 하루’를 내놓기까지…그 시간들은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김종관:
원하는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심사숙고해서 하고 싶었어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로요. 장편영화를 발표하지 못했을 뿐 단편영화를 통해 창작 활동은 꾸준하게 했어요. 단편 작업들이 외적으로 뭔가를 주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내적인 재산은 됐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 영화적 스타일 등을 실험하면서 저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시간이었거든요.

Q. 결국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투자-제작사와 적당히 타협을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김종관:
어느 정도의 타협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타협이라는 것도 저 스스로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가 통과 돼도, 캐스팅이나 투자 과정에서 어그러지는 일도 있었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솔직하게 쓴 제 칼럼이 있어요.(웃음) 영상자료원에 기고한 글인데,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겪은 무수히 많은 시도와 실패 등 오만가지 과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최악의 하루' 촬영현장(사진=CGV 아트하우스 제공)
▲'최악의 하루' 촬영현장(사진=CGV 아트하우스 제공)

# <최악의 하루> 제작기’라는 이름으로 쓰인 김종관 칼럼 中 일부
『“매일 하나 이상의 시도와 실패가 있다. 내 안에서의 시도와 실패 혹은 선택되지 않았거나 거절당했거나 떨어졌다는 외부에서 오는 실패의 소식들을 듣는다. (중략)그런 시간이 지나고 힘겹게 내가 손에 넣고 품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성공이나 성과로 불리는 것들은 되지 못한다. 수많은 실패의 무덤들을 지나 기회를 하나 얻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만들 기회, 또는 보여줄 기회를 귀하게 얻고는 그 기회를 품에 안고 잠이 든다. 다음날 눈을 떠도 그 기회가 남아있기를 바라고 그 기회로 하나의 시도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Q. ‘조금만 가까이’와 ‘최악의 하루’ 사이에 산문집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서른두 편을 모은 글)을 출판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책이에요.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더군요.
김종관:
산문집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은 ‘최악의 하루’와 연관이 있어요. 산문집도 서촌에 거주하면서 쓴 글들이에요. ‘최악의 하루’처럼 실제 하는 공간 속에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하죠. 인간사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자기모순’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도 연관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최악의 하루’의 근간이 된다고도 볼 수 있죠.

Q. 말씀처럼 ‘최악의 하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기모순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럼에도 얄밉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종관:
은희는 관계에 따라 성격을 달리 하는데, 그건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 자체가 아주 균형 잡혀 있다고 보지 않거든요. 상대방과 어떤 관계냐,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이죠. 그런 인간의 속성을 극적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가령 현오-운철과의 관계에서 은희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요. 그들에게 은희는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죠. 하지만 료헤이에게 은희는 좋은 사람일 수 있어요. 세 사람을 대하는 은희는 모두 거짓일 수도, 모두 진심일 수도 있죠.

Q. 판단은 결국 관객 각자의 몫이겠지만, 감독님은 어떤 스탠스를 지니고 인물들을 그린 건가요.
김종관:
관계에 따라 연기하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그게 또 진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태도입니다. 사회적인 모순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많은데, 저는 자기모순을 이야기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랬을 때 연애이야기가 재미있는 게, 사람은 연애를 할 때 ‘내가 얼마나 모순돼 있는지, 내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를 깨닫잖아요. 연애 초반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관심에 몰두해요. 하지만 연애가 끝나면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들을 갖죠. 연애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속성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될 수 있으면 밉지 않게. 내 안에 있는 모습을 너무 능멸하면서 바라보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으니, 그런 속성을 밝게 다뤄보려고 했어요.

Q. 사랑하는 사람의 모순을 발견하는 건…일견, 귀여워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김종관:
네. 저는 다 귀엽다고 생각해요.(웃음) 현오-운철은 나이 대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여러 타입의 남자 중 두 부류인 것 같아요. 은희와 투닥투닥하는 현오는 솔직한 한 듯하지만, 이기심도 적지 않게 드러내는 남자입니다. 반면 눈치가 없는 운철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하는 타입의 남자죠. 헤어지더라도, 좋은 모습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해서 끝내려고 남자. 운철은 꼭 연애가 아니라도, 사회생활에서 만날 법한 유형의 사람이에요. 상대방의 눈치 없음 때문에 내가 괴로울 때가 있잖아요?(웃음) 그런 관계의 속성들을 연애를 빌어 설계해 본 거죠.

Q. ‘최악의 하루’에 등장하는 세 남자 중, 누구에게 조금 더 애정이 가나요.
김종관:
저는 아무래도 은희에게 애정이 가죠.(웃음) 영화 자체가 은희의 방황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영화에서 은희는 열심히 걸어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걷고, 화를 다스리기 위해 걷고, 도망가기 위해 걷고, 길을 찾아주기 위해 걷고. 길을 걷는 은희의 심리는 무엇일까. 저는 눈 오는 어두운 길을 생각했어요. 외롭고 쓸쓸한 심리일 것 같아요.

Q. 개인 페이스 북에 종종 꿈 이야기를 올리는 걸로 압니다.(웃음) 캐스팅 관련 꿈을 많이 꾸시는 것 같더라고요. 혹시 ‘최악의 하루’ 배우들도 꿈에 출몰한 경우인가요.
김종관:
하하. 그건 아닙니다. 재미있는 게 희준 씨-예리 씨-권율 모두 영화에서 못난 연기를 하는데, 사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포지티브 한 이미지를 조금 네거티브하게 쓴 거예요. 권율은 사석에서 보여주는 편안하고 위트 있는 모습을 활용했어요. 이희준은 은근히 멜로를 잘 하는 배우잖아요?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서 보여 준 호소력 있는 모습을 약간만 변칙하면 캐릭터를 귀엽게 무너뜨릴 수 있겠다 생각했죠.(웃음) 예리 씨는 한국영상자료원 40주년 기념 프로젝트인 ‘아카이브의 유령들’을 통해 만났는데, 그녀 특유의 또랑또랑하고 차분한 말투가 있어요. 그 특색을 이용하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꿈은…하하하. 뭔가 강박이 있다 보니까, 그게 꿈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코를 곯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이전에 쓴 시나리오 중에 비슷한 대사를 쓴 적도 있어요. “잠을 깊게 못 자서 그래. 코를 곯아서”(웃음)

Q. 은희와 료헤이는 영어로 대화를 하죠. 긴 대화는 못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아요.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통법이 영화의 결을 풍부하게 하는 효과를 주는 듯해요.
김종관:
료헤이와 은희가 대화하는 장면들은 고민을 꽤 많이 했어요. 언어가 전달하는 포지션이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은희는 대화를 깊게 할 수 있는 한국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오히려 소통하지 못합니다. 거짓말도 하죠. 그런데 료헤이와의 관계에서는 심플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깊게 교감을 해요. 영어 대사가 관객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전달되기를 원했는데, 배우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해 줬어요.

Q. 감독님 영화에서 공간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서촌은…
김종관:
제 ‘나와바리’죠.(웃음)

Q. 하하하. 서촌의 어떤 면모가 좋은 건가요? 서촌 사는 지인들을 보면, 모두 그렇게 서촌 애찬을 하더라고요.
김종관:
이곳은 아름답기도 하고, 그래서 쓸쓸한 공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서촌에 이어 익선동 요즘 많이 변하고 있어요. 익선동은 골목도 예쁘지만, 좁은 골목에 줄지어진 화단들이 정말 예쁜 공간이에요. 할머니들이 화단에 물을 많이 준 덕이죠. 그런데 이곳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카페가 들어오는 골목이 됐죠. 옛날 것들을 지켜서 아름다운 공간인데, 그 아름다움 때문에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머니들이 화분을 예쁘게 키워서 골목이 아름다워졌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이것들이 없어졌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것 자체를 나쁘게만 보지는 않아요. 어쨌든 변화라는 건 있는 거니까요. 결정적으로 그런 변화의 시기가 주는 이 동네의 자극들이 있어요.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제 스스로가 가지고 있고요. 그런 지점들이 ‘최악의 하루’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Q. ‘조금 더 가까이’ 당시, “좋아하는 공간에 가을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번 영화는 익숙한 공간에 캐릭터를 담아냈다고 보면 될까요.
김종관:
공간에 대한 저의 취향은 그대로 머물러 있어요.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과 다르게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사람 속성을 이야기 하고 탐구하는 게 재미있어요.

Q. 공간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과거(운철과의 관계)와 현재(현오와의 관계)와 어쩌면 미래(료헤이와의 관계)일지 모를 관계들이 ‘같은 공간-같은 시간’에 우연히 얽히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요.
김종관:
그럴 수 있네요. 공간마다 지니고 있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의 전형적인 랜드마크가 아니라, 골목에 흐르는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죠. 골목은 바쁘게 흐르는 도시의 일상과는 다르잖아요. 결국 일상적인 공간이 비일상적인 틈으로 인해 생기는 어떤 분위기가 생기길 바랐어요. 엔딩도 마찬가지에요. 아주 판타지로 가지는 않지만, 뭔가 판타지 같은 비일상적인 어떤 틈이 보이는 ‘톤 앤 매너’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사진에도 애정이 있으신 걸로 알아요. 사진에서 포착하고 싶은 건 시간인간요, 공간인가요.
김종관:
두 개 다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어떤 인상’인 거죠. 그런데 사진은 사각의 한정된 프레임 안에 피사체를 담아야 하기에, 제가 눈으로 본 그대로를 담을 수는 없어요. 아름답지만 사진으로 못 찍는 게 훨씬 많죠. 그럼에도 제가 본 감흥을 남기고 싶을 때는 찍어보는 거죠. 담을 수 없는 것들은 글로 표현하기도 하고요.

Q. 흥미로운 차기작을 준비하고 계시던데, 그 작품 역시 공간과 시간이 중요하게 기능한다고요.
김종관:
촬영은 끝났어요. ‘더 테이블’(임수정,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주연)이라는 작품인데, 내년에 개봉 할 것 같아요. 역시 저예산 영화고, 한정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요. 걷지는 않아요.(웃음) 대화로만 진행이 됩니다. 테이블 하나를 두고 차를 마시며 벌어지는 컨셉이거든요.

Q. 영화를 만드는 것, 사진을 찍는 것, 글을 쓰는 것. 세 행위는 어떻게 다릅니까.
김종관: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봅니다.

Q 그럼에도, 언제 가장 솔직해지는 것 같나요?
김종관:
솔직함은 어디에나 있지 않을까요. 가령 배우인 은희는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하는 직업이에요. 소설가 료헤이 또한 직업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이거든요. 영화라는 것도 거짓말을 그리지만, 솔직함을 담고 있다고 봐요. 점점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창작자에게 가장 메리트가 없는 건, 스스로를 포장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나를 아름답게 봐 주길 원하는 것에는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Q 나를 아름답게 봐 주길 원한다는 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가요?
김종관:
저는 배우들이 추한 모습을 연기에서 스스럼없이 보일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해요. 자기 아름다움을 포기할 때 말이죠. 창작도 그런 것 같아요. 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을 때, 내가 뭔가 필터링을 안 할 때, 그럴 때 조금 더 재미있는 게 나오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솔직함이라는 게 일기장 같을 필요는 없죠. 영화는 픽션이니까요.

Q. 그런 면에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에 대한 인상이 워낙 강한 탓인지, ‘김종관의 영화는 감성적’이라는 일부의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단편영화 ‘드라이버’ ‘기다린다’ 등에서 감성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날것의 연출의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산문집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역시 거친 대사와 강렬한 묘사들이 이어지고요. 여러 작업을 해 온 입장에서, 말랑말랑하다는 시선에 대한 억울함은 없으신가요.
김종관:
‘폴라로이드 작동법’만 보고 저를 안다고 한다면 억울하겠죠. 영화 하나로 그 감독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만든 영화는 훨씬 많고, 책도 있어요.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한두 개를 보고 나에 대해서 안다고 한다면 틀린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사람이 만든 작품의 궤적 안에서, 이 사람의 필모그래피를 면밀히 볼 때, 비로소 이 사람의 드라마가 보이는 거니까요. 어쨌든 그건, 제가 창작 작업을 꾸준하게 하면 풀릴 오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려면 누군가가 저를 계속 깊이 봐줘야 할 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또 꾸준한 노력을 계속 해야겠죠.

Q. 서촌을 걷다가 은희 같은 여자를 만난다면, 어떨 것 같아요?(웃음)
김종관:
하하. 글쎄요. 매력 있는 여자라고 생각해요. 귀엽고.

Q. 연애할 때 많이 바뀌는 스타일인가요?
김종관:
저도 어떤 관계에서는 ‘내가 굉장히 나쁘 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나이에 따라 계속 바뀌었던 것 같고요. 여러 타입의 남자 행세를 해 왔으니까요.(웃음)

Q. (웃음) 그게, 영화 캐릭터에 모두 반영이 됐겠죠.
김종관:
그렇죠. 그런데 개인적인 경험들은 어떤 가상의 이야기와 설정에 섞이면 본질은 없어져요.

Q 20대의 연애와 30대의 연애는 다른가요? 개인적으로 연애 경험이 늘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성장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종관:
그렇죠. 사람은 쉽게 성장하지 않죠. 좋은 영화를 많이 보면 성장할 것 같지만, 영화 많이 보는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좋은가요? 좋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거든요. 책 많이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훌륭한 것도 아니고요. 저 역시 좋은 모습일 때가 있었고 나쁜 모습일 때도 있었죠. 시간이 지나 스스로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됐을 때, ‘그러지 말아야 겠다’ 반성을 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어떤 부분에 대한 결핍을 메우고 균형을 찾고 나면, 다른 부분에서 생기는 어떤 모순과 구멍과 아킬레스들이 있죠. 나이에 따라 덜 실수할 수도 있지만 나이를 먹음으로 해서 더 실수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요. 그러면서 사람은 자꾸 모나지고, 어떤 부분은 나아지죠. 계속 그럴 것 같아요. 인간은 변화가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게 아니니까요.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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