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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지석, 결핍→갈증→인정 “사랑받고 싶다”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배우 김지석(사진=제이스타즈)
▲배우 김지석(사진=제이스타즈)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해 보인다. 배우 김지석 말이다. 180cm를 넘는 키와 군살 없는 몸매, 조각 같은 외모는 아니더라도 남녀노소 누구나 호감을 가질 만한 얼굴. 게다가 ‘뇌섹남’이니 ‘엄친아’라느니, 하나만 가져도 영광스러울 호칭이 김지석에게는 여럿 매달려 있다. 성격은 또 얼마나 유쾌한지 가진 자의 여유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온다. “저는 모나고 가시 많은 사람이에요.” 도대체 뭐가 부족하기에?

김지석은 여전히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고 말했다. 관심에 대한 갈증은 그에게 가장 큰 결핍이자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한 꺼풀씩 천천히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벗겨내며 김지석이 다가온다. 모나고 가시 많은 모습이나 밝고 유쾌한 모습 모두, 이제는 감추고 포장할 이유가 없다. 언젠가는 맨몸의 김지석으로도 인정받고 사랑받는 날이 올 것이기에.

Q. 지난달 16일 MBC 월화드라마 ‘역적’이 종영했다. 작품이 끝난 것이 실감 나나.
김지석:
하루하루 다르다. 첫날 기자들을 만났을 땐 시원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두 번째 날은 서운하더라. 오늘은 짠하다. 함께 했던 사람들, 같이 살 부대끼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금방 잊힐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지나고 나니 작품만 남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짠했다.

Q. 연산은 많은 작품을 통해 다방면으로 다뤄진 인물이다. 부담이 작지 않았을 것 같다.
김지석:
김지석화된 연산을 보여주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했다. 사료에 기반을 두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모 폐비 윤씨의 죽음으로 인해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도구적으로 가져가되, 열등감의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했다. 길동은 가진 것 없는 씨종의 아들이었지만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다. 반면 연산은 왕자이지만 어머니는 안 계시고 늘 눈치만 보는 인물이다. 다른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대립각, 다 가진 것 같지만 가지지 못한 왕과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다 가진듯한 민초의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했다.

Q. 김지석에게 연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시청자는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김지석:
부모님도 의심하셨다. ‘네가 (연산을)?’라는 반응. 아니, 응원해주진 못할망정 어떻게 놀라느냐고.(일동 웃음) ‘나 잘할 수 있는데?’에서 ‘잘할 수 있을까?’가 되는 거다. 그런데 감독님이 ‘갸우뚱하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 네가 느끼는 희열이나 우리 드라마가 받는 힘이 더욱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배우 김지석(사진=제이스타즈)
▲배우 김지석(사진=제이스타즈)

Q.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이 연산을 택하게 만든 건가.
김지석:
연기 변신에 대한 갈망,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처음 감독님이 나를 부르셨을 때는 나도 궁금했다. 내가 연산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감독님 저 왜 캐스팅하셨어요?” 물으니 ‘또 오해영’에서 내가 잔뜩 들뜬 상태로 있는걸 보고 ‘밝은 모습을 비틀고 뒤집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단다. 사실 위험한 도박이다. 보통 비슷한 역할로 쓰기 마련인데 역으로 뒤집어 쓸 생각을 한다는 건 굉장한 용기다. 그 용기에 내가 부합을 해야 하는 건데 어~찌나 부담이 되던지. 흐흐.

Q. 연산을 연기한다는 건 당신에게도 도박이지 않나.
김지석:
도전이다. 그래서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 혹시나 싶어 처용무를 꽤 오래 배웠다. 곁다리로 장구도 배우고. 연산이 쓴 시를 하나 풀이한 책이나 심리학적으로 연산을 분석한 자료를 찾아보며 왜 연산이 폭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형상화하려고 했다. 연산과 윤 씨의 묘에도 가서 감정을 느껴보고 내 안에 욱여넣었다.

Q. 현장에서 다들 치열하게 연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덕분에 배우들 모두 ‘인생 연기’를 펼쳤다는 호평을 얻었다.
김지석:
연출에게서 배려를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마지막 회에서 녹수의 꽃신과 돌무덤을 보고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는 장면. 촬영 전에 “무덤이 어디에요?” 하면서 찾으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못 보게 했다. 촬영을 하면서 무덤을 처음 봤다. 감정이 막 터지는 거다. 내가 준비해간 것, 계산해간 것과 다르게 감독님의 디렉션에 홀려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신경쇠약 걸리고 악몽 꾸고…. 완전히 연산화 됐다.

Q. 안방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과 현장에서 직접 분위기를 느끼는 배우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온도 차가 존재할 것이다. 이를 테면 시청자들이 ‘쟤는 왜 저렇게까지 흥분하고 슬퍼하지?’라고 느끼지 않게끔 작품을 끌고 가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다.
김지석:
그 또한 감독님의 역량이었다. 김진만 감독님은 내겐 ‘인생 감독님’이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역량 이상의 것들을 끌어내주셨다. 작가님이 대본으로 기가 막힌 레시피를 만들어주셨다면 감독님은 요리사다. 배우라는 재료를 버무려서 원래 갖고 있던 것 이상의 풍미를 내주신다. 우리를 풀어놓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걸 놓치지 않는다. 감독님, 스태프들의 덕을 많이 봤다 사실.

▲김지석이 언급한 마지막회 장면. 연산은 '능상을 척결하라'고 거듭 외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사진=MBC '역적')
▲김지석이 언급한 마지막회 장면. 연산은 '능상을 척결하라'고 거듭 외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사진=MBC '역적')

Q. 작품 전체를 놓고 보자면 연산의 폐위는 정의 실현 쪽에 가까웠다. 연산을 연기한 당신의 입장에서는 그의 몰락이 어떻게 다가오던가.
김지석:
나는 완전히 연산의 감정이다. 사실 엔딩 장면이 한 번 바뀌었다. 마지막 지문을 받았는데 연산이 길동의 설교를 들으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고 나와 있었다. 리딩 연습을 해보려니까 안 되는 거다, 연기가. 1회부터 30회까지 내가 죽여라 살려라 능상척결이다 해왔는데, 심지어 나를 왕 위에서 몰아낸 길동이 설교를 하는데 ‘띵!’ 깨우치는 게 돼? “작가님 저 안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 두 장면이 바뀌었다. “죽을 때도 눈 감고 못 죽겠어요. 눈 뜨고 죽을게요.” 그래서 나만 눈 뜨고 죽었다. 작가님의 배려 아래 잘 바뀌었다. 누군가는 연산을 지지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내 감정을 따라왔을 수 있었다고.

Q. 그랬다면 더더욱 감정 소모가 컸을 것 같다.
김지석:
마지막 회를 찍고 나서 술 많~이 먹었다. 연산이 너무 짠하고 불쌍했다. 꼭 내가 죽은 것 같고. 연산이라는 인물을 미화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다른 모습을 보고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연산을 느껴본 입장에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다. 혼자만의 추도식처럼.(웃음) 그렇지 않아도 요즘 감정이 너무 극과 극을 달린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외로웠다가 신났다가. 나도 버겁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캐릭터를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는 걸 보면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끝나면 끝난 거지!’ 했는데 이제 알겠다. 내가 그때 진심으로 안 했던 거야.

Q. 연산을 통해 배우 김지석, 혹은 인간 김지석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김지석: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이미지가 생각보다 한정적이더라. 나는 사람들이 보든 안 보든 수십 가지 캐릭터를 해왔는데 시청자들은 기억하고 싶은 작품만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많이 해왔으니 된 것 아닌가’ 생각하던 찰나에 ‘역적’을 만난 거다. 기대치를 벗어나거나 그에 더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더란 말이다. 이제 한 번 묘미를 봤으니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는 작품, 좋은 캐릭터를 많이 만나고 싶다. 관객 없는 무대에서 명연기를 펼치면 뭐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Q. 반대로 배우는 명연기를 펼쳤는데 운이 안 따라서 관객들이 안 드는 경우도 있다.
김지석:
글쎄. 내가 좋은 연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면…. 자기만족인 것 같다. 내가 연산 연기를 집에서 연습했는데 너무 잘했어, 근데 현장에서 꽝이야. 아무 의미 없다. 그런데 집에서 연습을 잘했어, 현장에선 더 잘했어. 그건 완전 의미 있다. 초연했다? (시청률을) 등한시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배우 김지석(사진=제이스타즈)
▲배우 김지석(사진=제이스타즈)

Q. 연산은 다 가진 것 같지만 결핍이 있는 인물이다. 김지석 역시 많은 것을 가진 배우처럼 보이는데 당신에게도 결핍이 있나.
김지석:
갈증이다. 인정받고 싶다. 만약 누군가 연산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줬다면 그 사단이 났을까. 나 역시 배우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직업인데,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오롯이 지켜낼 수 있을까. 연기로서 인정받고 싶은 갈증이 내게 동력이 되고 자양분이 된다. 사랑이 필요하다.

Q. 이번 작품을 통해 그 갈증 해소 됐나. 아니면 새로운 갈증이 생겼나.
김지석:
두 가지 다 해당한다. 맛을 들인 거다. 계속 한식만 먹다가 일식을 한 번 맛 본 느낌. ‘일식이 이런 맛이야? 한식하고 다르네. 그럼 중식 혹은 이태리는 어떨까?’ 지금 내가 그 상태다. 내가 여러 가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Q.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있나.
김지석: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연산이 워낙 세서… 뭐가 있을까. 7개월 간 연산으로 압축돼 살다보니까 밝은 로맨틱 코미디를 찍고 싶다. 며칠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내 앞으로의 계획이 나왔다. (웃음) 다음 작품으로 사극은 안 할 것 같다. 바로 새 작품에 들어갈 건 아니기 때문에 차기작은 가을이나 초겨울쯤으로 추정된다. 나는 외로우니까 밝은 로맨스물이 되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레 추정해본다.

Q. 얼마 전 인터뷰를 보니 ‘나는 모나고 가시 많은 사람이다’고 말한 내용이 있더라. 이 또한 김지석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 중 하나인가.
김지석:
이제 슬슬 나를 보여주려고 한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또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기억하는 이미지가 대체적으로 밝고 유쾌한 모습 아닌가. 그 밸런스를 유지 못하거나 이미지를 깨뜨리면 사람들이 놀라고 어색해 한다. 연산을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이미지를 깨본 거다.그랬더니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더라. 내가 기존에 갖고 있는 착하고 밝고 유쾌한 이미지를 조금씩 줄여도 되겠다고 느꼈다. ‘문제적 남자’에서 내가 조금 덜 웃겨도 되고 진지하게 문제를 풀어도 되겠구나. 연기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기대에 부응하되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Q. 배우로서 당신의 자세가 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지석:
자세가 달라진 건 꽤 됐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교복 입는 역할을 못하게 됐다. 나이 때문에든 물리적인 상황 때문이든,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이 생기기 시작했다. 20대 때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위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지금은 위도 보고 옆도 보고 아래도 봐야 하니까 (할 수 있는 역할이) 점점 좁아진다. 그러니 내가 맡은 캐릭터가 얼마나 소중하겠나. 물살이 엄청나게 센 곳에 내가 지나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발견한 느낌이다. 그래서 매 작품이 훨씬 소중하고 치열하고 심지어 경건하다. 그런 마음으로 임해야 계속 일할 수 있게 됐다. 실수 혹은 허투루 연기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때가 온 거다. 예전에는 ‘에이~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했는데 이제 다음이 없다니까? 무서우면서도 자세가 달라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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