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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군함도’ 류승완! → 류승완?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나는 ‘감독 류승완’과 ‘사람 류승완’을 모두 좋아한다. 취향이 갈렸던 그의 초기작들을 지지했으며, 최근작들에게 그가 보여준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구워삶는 재능’에 환호했었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과는 다른 방향에서 독자적 노선을 개척한 감독. 액션 키드에서 액션 마스터로, 더 나아가 자기만의 고유성을 주류영화 안에 세련되게 풀어내며 새로운 영역을 품은 장인이라 생각했다. 이쯤이면 예상했겠지만, 기대 요소가 차고 넘치는 ‘군함도’를 가장 기다린 이유는 단연 류승완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아쉽다. 연출 이름을 지우고 ‘군함도’를 보면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류승완의 것’으로 여겨졌던 어떤 인장들이 희미한 것에 놀랐고,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클리셰’라 명명하는 것들의 기시감이란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자기색깔과 자기취향에 대한 고집스러움이 시장과 노련하게 만났던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 ‘베테랑’(2015)의 행보를 생각했을 때 아쉬움은 더 크다.

도입부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엄청나다. 시작과 동시에 시각적 향연이 펼쳐진다. 6개월의 시공을 거쳐 제작됐다는 군함도 세트장이 전하는 위압감이 상당하고, 섬세하게 구현된 의상과 미술들이 관객을 그때 그 공간으로 후송하는 느낌을 안긴다. 큰 돈(제작비)을 들여도 도대체 어디에 썼나 싶은 영화들이 있는데, ‘군함도’는 그렇지 않다. 돈의 쓰임이 너무 자세히 읽힐 뿐 아니라, 그 과정에 녹아든 스태프들의 땀이 엿보여 숙연해지는 부분마저 있다. 특히 가스 폭발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비좁은 갱도 내부의 음습함은 흡사 다큐를 보는 듯한 질감의 현장감을 뿜어낸다. 한국 프로덕션 디자인의 최전선이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본격적으로 사연을 드러내면서 단점들이 하나 둘 노출되기 시작한다. 가장 걸리는 것은, 캐릭터 운용 방식이다. 영화는 조선인 안에 악인을 심어둠으로서 ‘선과 악’의 이분법을 피해가려한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무결한 악인으로 그려진 일본인 캐릭터들 앞에서 힘을 잃는다. 이 영화에서 일본인은 돈과 권력에 환장한 악마이거나, 여성을 희롱하는 잡놈이거나, 조선인을 깔보는 인종차별주의자일 뿐이다.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에 흔쾌히 동조할 수 없는 이유다.

이야기의 부피에 비해 주요 캐릭터들이 많다는 인상도 있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이라는, 무게감있는 커리어를 지닌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그들 각자에게 일정량 이상의 무게감 있는 장면을 부여해 줄 암묵적인 의무감을 지녔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 각자의 사연이 뭉쳐서 비약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분절된 느낌을 안긴다는 것이다. 간혹 동선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사연으로 넘어가면서 편집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류승완 이전 작품들이 인물들 내면의 입체적인 변화를 통해 사건을 이끌어갔다면, ‘군함도’는 반대다. 사건이 먼저 있고, 인물이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어떤 인물을 다소 기획적으로 끼워 맞춰졌다는 인상이 들고, 어떤 행동은 설득력이 허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액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그의 초기 액션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그 특유의 호방함 때문이었고, 최근의 액션이 높게 평가 받은 것은 액션 수위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함도’의 액션은 꼬리를 무는 잔상을 남기지 못한다.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소지섭이 목욕탕에서 펼치는 액션인데, 여기에서도 인물의 ‘감정’보다는 ‘멋’이 먼저 감지된다. 마지막 대규모 탈출신은 그 자체로는 하려하나 그것이 놀랍다는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고생이 역력히 읽히는 몹신(mobscene)에서 미안하지만 묻게 된다. 그래서, 류승완의 인장은 어디에 있는가.

‘군함도’에도 분명 류승완의 영화를 향한 들끓는 에너지가 존재하나, 이전엔 그것이 영화 안에서의 에너지였다면, ‘군함도’는 산업 혹은 역사 안에서의 에너지란 의심이 든다.

그래서 또 류승완이다. 장선우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류승완은 ‘나쁜 영화’(1997)에서 쓰고 남은 16mm 자투리 필름으로 단편영화 ‘패싸움’(액션)을 만들었다. ‘패싸움’에 ‘악몽’(호러), ‘현대인’(세미다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갱스터)를 이어 붙여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인터넷 바다에서 난리가 났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여덟. 제작비 6500만원으로 충무로 지각변동을 예고했던 류승완은 2018년 순제작비 220억원 위용의 ‘군함도’를 지휘하는 감독이 됐다. ‘군함도’는 그의 최고흥행작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최고작품으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 같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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