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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영감대] ‘군함도’ 독과점, 류승완이라고 마음이 편할까…시스템이란 괴물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류승완 감독(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류승완 감독(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최근 수익계열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다. 이때 ‘파라마운트 판결’을 들어 배급과 상영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는데, 사문화된 70년 전 법으로 현재 한국 영화산업을 재단하는 게 옳은 건가 반문하게 된다. 이런 식의 규제와 통제는 한국 영화산업의 위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난 7월 18일, CJ CGV 서정 대표가 미디어포럼에서 한 말.

좀 뜻밖이었다. 여느 때와는 달랐다. 독과점 논란에 저자세를 취해오던 CGV가, 그것도 대표가 직접 나서 날린 의외의 직구였달까. 다만 시원하게 자리를 잡고 친 직구라기보다는, 수세에 몰린 타자가 마지막 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악물고 친 직구 같아 보이는 면이 있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CJ-롯데 같은 대기업의 ‘배급·상영 겸업 금지’와 ‘특정 영화의 상영 비중 규제’를 고려하는 독과점 제재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논의? 물론 있어 왔고, 매번 수포로 돌아갔다. 다만 이번엔 정부 차원의 국책과제로 지정됐다는 점에서 좀 비상하다. 서정 대표의 이날 발언은 그러한 위기감을 간접 증명한 셈일 게다.

그리고 정확히 8일 후. CGV와 같은 계열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영화 ‘군함도’가 개봉했다. 아니 정정하자. 극장을 뒤덮었다. ‘군함도’의 스크린 수는 2027개. 역대 최다 스크린 수이자, 첫 2000개 개봉 스크린 수이고, 전국 극장의 55.2%에 달하는 상영 점유율이다. 어느 쪽으로든 대.단.하.다.

예상대로 독과점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CJ는 예상했던 카드를 꺼냈다. 좌점율이란, 카드다. 아닌 게 아니라 27일 오전, CJ가 각 언론사에 송고한 ‘군함도’ 흥행(첫날 97만) 관련 보도자료에는 “‘군함도’는 쟁쟁한 경쟁작들을 모두 제치고 52.8%의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다”라는 문장이 새겨져있다. 분명 높은 좌석점유율이다. “선택한 영화가 ‘군함도’ 밖에 없었으니 좌석 점유일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도 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극장입장에서는 솔깃한 수치인 것이 맞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당신이 극장주라면? ‘물 들어왔을 때 노 젓고’ 싶은 심리를 극장주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긴 하다

다만 생각해보고, 논의해 보자는 거다. 취향과 다양성을 다 무시하고 다수가 즐기는 걸로만 밀어버리는 지금의 이 풍경이 과연 합당한가를.

다시 서정 대표의 말로 돌아가자. “규제와 통제는 한국 영화산업의 위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라는 말. ‘군함도’의 엄청난 스크린 수를 보면 당시의 저 말은 무언의 선전포고였단 생각도 든다. ‘독과점 제재 방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이 시점에서 이 얼마나 도드라지는 행보인가.

▲영화 '군함도' 포스터(출처=CJ E&M)
▲영화 '군함도' 포스터(출처=CJ E&M)

지금 이 순간 흥행과 독과점 논란을 동시에 맞고 있는 ‘군함도’의 선장 류승완 감독의 마음은 어떨까. 류승완 감독이라고 지금의 상황이 편할까. 스크린 수는 감독이나 제작자의 힘이 아니라, 상영업자의 이해타산에 의해 정해진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문득 지난 2015년 ‘베테랑’ 천만 돌파 기념 미디어데이에서 만난 류승완 감독의 한숨이 떠오른다. 기쁨을 담기에도 모자란 시간. 그의 표정은 좀 초조해보였다. 그건 생애 첫 천만 돌파 행사를 즐기는 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 ‘부채감’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냈었다. ‘베테랑’이 기대 이상으로 롱런하면서 동시기에 개봉한 작품들이 본의 아니게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 여러 미안함을 느끼는 듯 했다.

당시 류승완 감독은 “동료 감독들이 끌어안으며 축하해 주는데, 그 마음의 진심이 느껴져서 감사하긴 했지만 기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 중에는 시나리오가 안 풀려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동료 감독, 흥행이 저조해서 우울한 시간을 보냈던 감독들도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제작비 6500만원으로 영화를 시작해 거친 바닥을 뒹굴며 버틴 자만이 내쉴 수 있는 한숨이었다. 이제 그는 그런 말조차 쉽지 않을 거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황은 그를 주류에 올려 놓았으니 말이다.

류승완 감독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힘을 빌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감독들의 운명을 떠올려 본 것일 뿐이다. 자본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자본의 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숙명. 게다가 영화라는 것은 혼자가 아닌, 저마다의 목표를 지닌 이들이 뭉쳐 하나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기에 독고다이로 나서서 무언가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오프닝에 (영화를 만든 이들이 아닌, 돈을 대는)투자사 이름을 앞세우는 충무로 관행을 '군함도'로 과감하게 뒤집은 류승완이 이번 독과점 논란에서 대기업의 액받이가 된 듯한 아이러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꺼내게 되는 것이 시스템 정비다. '시스템ㆍ독과점이라는 괴물'을 흥행이라는 욕망 아래 너무 오랜 시간 방치한 건 아닐까.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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