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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人] 시장은 변해도 길은 있다…‘슈퍼배드3’·‘오버워치’ 김연우 성우

[비즈엔터 라효진 기자]역사 속 수많은 혁명들은 인류를 진보케 했다. 각종 문화혁명이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켰다면 산업혁명은 육체의 한계를 지워 나갔다. 그러나 제4차까지 진행됐다고들 일컫는 산업혁명의 경우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이로 인해 새로 생겨나는 직업의 수보다 사라지는 직업이 더 많은 탓이다.

또 무엇이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는 삶 속의 온기를 잃을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성우’다. 가상의 존재와 동화(同化)되어 이를 보는 이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은 축적된 경험과 섬세한 지능 없이는 불가능한 분야다.

사실 목소리 연기가 반드시 필요한 애니메이션 시장의 규모 및 형태가 축소와 고립을 향해 가고 있는 한국에서 성우는 ‘사라져 가는’ 직업으로 생각될 지도 모르겠다. 유독 한국에는 더빙 작업된 콘텐츠를 꺼려하는 소비자들이 많기도 하다. 때문에 각 방송사에서도 주기적으로 방송하던 더빙판 영화들을 없애는 경향까지 목격된다.

이처럼 성우의 길은 험난해지고 있지만, 젊고 유능한 인재들은 계속 배출되고 있다. 김연우는 지난 2013년 대원방송 성우극회 4기 공채 성우로 데뷔해 올해만 ‘슈퍼배드3’, ‘어드벤처 타임: 비밀의 아일랜드’, ‘오즈: 신기한 마법가루’, ‘빅풋 주니어’ 등의 굵직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를 뽐냈다. 인기 FPS게임 ‘오버워치’의 23번째 영웅 솜브라 역을 맡아 “Boop!”이라는 명대사(?)를 만들기도 했다.

▲김연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김연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성우라는 개념이 없던 어렸을 때부터 만화 영화를 좋아했어요. 어느 순간 캐릭터는 다른데 목소리가 똑같은 경우를 발견하고 이것이 성우의 목소리라는 걸 인식하게 됐죠. ‘유리가면’ 같은 만화를 보면서 연기에 대한 로망은 갖고 있었지만, 진로로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대학교에서 성우 동아리를 가입했고 더빙 공연을 진행했는데, 졸업반이 돼서도 그게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대원방송 공채에 지원하게 됐죠. 게임 캐릭터 연기를 했어도 게임을 잘 하지는 못해요. ‘오버워치’도 제가 등장하니까 한 번 해 보려고 했지만….(웃음) 성우가 되고 나서 애니메이션 극장판에 출연할 기회를 몇 번 얻었는데, ‘슈퍼배드3’을 통해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처럼 큰 제작사의 작품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영광이었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스타 마케팅의 일환으로 애니메이션 더빙을 연예인에게 맡기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슈퍼배드3’에서 김연우 성우가 맡은 마고 역도 전편에서는 걸그룹 멤버가 연기했다. 이러한 흐름 탓에 성우들의 입지가 다소 좁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전문 성우들이 더빙을 하는 추세다. 연예인 기용이 투자 비용 만큼의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언급했듯 우리나라는 더빙판보다 자막을 입힌 원본 영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이에 대해 김연우 성우는 “이해할 수 있는 취향의 문제”라고 소신을 밝혔다.

“접하는 순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더빙판이 아닌 것이 오히려 어색할 수도 있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자막판이 더 접하기 쉽죠. 또 예를 들어 BBC 드라마 ‘셜록’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목소리 때문에 팬이 된 분들도 많잖아요. 그런 경우는 선호도의 차이가 있다고 봐요. 그래도 더빙판 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많이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연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김연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성우 이전에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김연우 성우는 더빙판의 매력을 정서의 반영으로 꼽았다. 우리나라의 정서가 가미된 더빙판이 극의 이해를 돕고, 공감을 자아낸다는 논리다.

“저는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해서 대학 시절 교재를 전부 원서로 썼는데, 개인적으로는 번역본이 훨씬 좋았던 기억이예요. 원문의 표현들을 공부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만, 무슨 뜻인지를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더빙판은 우리말의 입길이를 비슷하게 맞추고, 정서에 맞게 번역만 잘 되면 보시는 분들이 소화하기 더욱 쉬울 것 같아요. 시선을 자막에 분산시키지 않고, 우리말로 들을 수 있는 더빙판에도 더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그는 성우 연기의 특수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경향에 업계 내부에서도 고민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성우들은 유아동용 애니메이션 더빙을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고, 때문에 원본보다 과장된 연기를 한다는 오해들이 적지 않다.

“한 선배님이 트위터에 의견을 내신 적도 있는데, 무대 연기, TV 연기, 성우 연기가 저마다 다른 장르라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냐는 내용이었어요. 일반적인 연기를 잘 하는 것과 그림에 맞춘 연기를 잘 하는 것은 다른 문제죠. 그래도 작품에 어울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우로서 배우의 더빙이 어색하게 느껴졌을 때도 있지만, 굉장히 좋게 본 경험도 많아요.”

김연우 성우는 화면 속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했던 노력에 대해서도 밝혔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이 하는 연기는 대본을 보고 어느 정도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지만, 그림의 경우는 다르다는 설명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오빠가 ‘그림에 답이 있다’는 조언을 해 준 적이 있어요. 나름대로 캐릭터를 해석하다 보면 저 자신이 반영될 때가 있는데, 그림은 이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캐릭터는 제가 아니니까, 똑같은 상황에서 ‘나라면 이럴 것이다’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대신 그림이 없는 드라마 CD 더빙의 경우는 저의 생각을 넣기도 하죠.”

더빙판을 제작하는 콘텐츠의 경우 영미어권, 일본, 한국 작품이 대부분이다. 각기 다른 세 언어를 작업할 적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신인이라 다양하게는 못 해 봤지만,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을 떠올려 봤을 때 차이는 있었어요. 일본 만화는 캐릭터의 속성과 부합하는 연기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작중 의도가 세죠. 영미권 만화는 TV 시리즈의 경우 일본과 다르게 발랄하고 웃긴 느낌인데요, 극장판은 최대한 편안하게 가요. 우리나라 작품도 캐릭터성이 중요한 편인데, 극장판으로 가면 담담한 연기가 선호되는 것 같아요.”

▲김연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김연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이처럼 다각도의 분석과 노력으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김연우 성우는 자신이 맡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개인 블로그에 상세히 게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콘텐츠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성우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소비자들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도 시장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한 달에 한두 개 정도 포스팅을 하는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짧게 올릴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려고 해요. 제가 출연하는 작품들이 뭔지 직접 전부 보시진 않을테니까요. 최근에는 크지는 않아도 성우들이 팬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프라인 이벤트도 진행해요. 팟캐스트나 아프리카, 유튜브 방송을 하시는 것도 많이 봤어요. ‘오버워치’ 겐지 목소리를 연기하시는 김혜성 성우님도 ‘겐지혜성TV’라는 방송을 하고 계시고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성우들이 TV나 인터넷 방송에도 등장하고 SNS도 활발히 한다는 점이죠.”

미래라는 것은 항상 변하는 것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변화들이 있을지 몰라도, 언제나 활로는 존재한다. 성우 업계도 마찬가지다. 어떤 장르가 흥하고 쇠하는 동안, 다른 장르들이 생겨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연우 성우가 그리는 청사진은 구체적이었다.

“7080 세대는 라디오 드라마가 부흥했던 시기고, 1990년대와 2000년대는 TV 애니메이션이 최고로 활성화됐던 때잖아요.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애니메이션도 드라마적인 느낌을 담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수입이든 창작이든 아예 어린이들을 공략한 만화들이 많죠. 이렇게 시장은 바뀌고 있지만, 꾸준히 더빙을 필요로 하는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어요. 게임도 그렇고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낭독도 중요하죠. 새로운 분야라고 한다면,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을 들 수 있습니다. 전부 사람 목소리가 들어가야 해요. 사물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안내 등을 성우들이 작업하게 되죠. 라디오 드라마가 아닌 오디오 드라마 시장도 작지만 존재하고요.”

그와의 대담에서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김연우 성우는 어떤 성우로 기억되고 싶냐는 마지막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박영남, 양정화, 김서영 등의 대선배들을 떠올렸다.

“닮고 싶은 성우가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오랫동안 잘 활동하시는 선배님들 보면 모두 독보적이고 자기관리를 잘 하시는 분들이죠.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요. 처음에 성우 지망생일 때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지만 공부하다 보니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요즘 나만의 메인 분야가 뭘지 고민해 봤는데, 한 선배님께서 ‘꼭 메인이나 서브가 있어야 하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 역할이든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녹아드는 성우가 되고 싶어요.”

라효진 기자 thebestsurplu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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