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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아키라’, 예견된 종말 그리고 희망

[비즈엔터 라효진 기자]

(사진=영화 ‘아키라’ 스틸컷)
(사진=영화 ‘아키라’ 스틸컷)

1988년 7월 16일, 한 줄기 섬광과 함께 도쿄는 순식간 암흑 속에 갇혔다. 순간이었다. 화염과 유혈로 범벅된 아비규환은 없었다. 제3차 세계대전, 그리고 영화 ‘아키라’의 시작이었다.

이야기는 도쿄가 무너진 지 31년 후, 재건된 2019년의 네오 도쿄를 그린다. 번쩍이며 밤을 물들이는 네온사인과 고층 빌딩들이 그럴싸한 모양으로 세워졌지만 이 거리를 잠식한 것은 낯설지 않은 대혼란이었다. 30번째 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린다는 사실도 축제 분위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실업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청소년들은 학교 대신 뒷골목으로 호출됐다.

카네다가 이끄는 소년 갱은 개조된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며 폭주를 하거나 이유 없이 도시를 파괴하고 다닌다. 그러던 중 갱단 일원이자 카네다의 친구 테츠오는 우연히 무정부주의자들의 폭동에 휘말리고, 노인의 얼굴을 한 의문의 아이와 부딪히는 사고로 크게 다친다. 테츠오는 이를 수습하던 정부에게 끌려간다.

카네다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무정부주의자 무리에 합류하고, 정부가 암암리에 시행 중인 비밀 프로젝트의 실체에 다가간다. 네오 도쿄의 수뇌부는 31년 전 세상을 날려버렸던 거대한 힘을 ‘아키라’라 부르며 이를 제어하고 독점하려 하고 있었다. 테츠오는 이 프로젝트의 희생양이 돼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절대적인 힘에 대한 동경으로 폭주해 다시금 네오 도쿄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공교롭게도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중거리 탄도 미사일 화성-12형을 예고 없이 발사해 세계를 불안 속에 몰아 넣었다. 당장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위태로운 형국이다. 오는 2020년에는 도쿄에서 제32회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하니, ‘아키라’의 예언이 맞아 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영화 ‘아키라’ 스틸컷)
(사진=영화 ‘아키라’ 스틸컷)

극 중 각성 후 테츠오가 보여 주는 욕망의 결과들은 현 국제 정세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 떨어진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킬 힘을 갈급한다. 이것이 탐욕으로 변질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필요 이상의 힘을 원하고, 이로써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세계의 종말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역사 속 수많은 전쟁들을 통해 학습해 왔다.

‘아키라’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 아키라를 뭇 인간 안에 잠재돼 있는 것으로 설정한다. 또 이는 아메바에 비유되기도 한다. 아메바에게는 지능이 없어 그저 주변에 있는 것들을 먹어 치울 따름이다. 건드려서는 안 되지만 건드릴 수밖에 없는 이 힘은 갖고 있는 인간의 제어 없이는 종말의 단초에 지나지 않는다. 테츠오를 제거하려 정부가 꺼내 든 무기 SOR은 힘을 제어하기 위해 또 다른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러나, 절망을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희망도 인간 안에 있음을 영화는 주장한다. 테츠오 만큼 대단한 힘을 자신 안에서 불러 내지는 않았지만, 카네다는 이 거대한 재앙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사이버 펑크의 고전과도 같은 ‘아키라’는 지난 1991년 국내에서 홍콩 영화로 위장해 개봉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 문화의 유입이 법으로 금지돼 있던 탓에 거짓 심의가 발각된 ‘아키라’는 개봉 일주일 만에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때문에 지난 8월 31일 개봉은 약 30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선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키라’의 세계관은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 등 수많은 SF 걸작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제작 후 30년이 지난 현재의 애니메이션과 견주어 봐도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완성도는 전율까지 일게 한다.

라효진 기자 thebestsurplu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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