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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썰] 공간을 드라마化하다…SBS A&T 미술감독 허정필 ①

[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SBS 새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에 등장하는 레스토랑 세트(사진=SBS)
▲SBS 새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에 등장하는 레스토랑 세트(사진=SBS)

스타가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정갈하게 차린 밥상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빛나는 작품, 빛나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비즈엔터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화요일 ‘현장人사이드’에서 전한다. ‘현장人사이드’에는 3개의 서브 테마가 있다. 음악은 ‘音:사이드’, 방송은 ‘프로듀:썰’, 영화는 ‘Film:人’으로 각각 소개한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듣는 엔터 · 문화 이야기.

방송은 공간, 즉 ‘세트’의 집합체다. 교양, 예능, 드라마 등 수많은 TV프로그램의 장르 속에서도 세트는 늘 중요한 배경이자 무대가 된다. 때로는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살려주고, 때로는 작품의 캐릭터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토요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와 18일 첫 방송된 SBS 새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의 세트 디자인을 담당하는 SBS A&T 허정필 미술감독은 이 분야에서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 2002년 8월, 당시 SBS 아트텍에 입사해 방송 미술에 입문한 뒤로 ‘인기가요’ 및 다양한 예능, 교양 프로그램의 무대세트 디자인을 거쳐 ‘호박꽃 순정’, ‘냄새를 보는 소녀’, ‘리멤버 아들의 전쟁’, ‘미세스캅’, ‘낭만닥터 김사부’ 등 유수 작품의 세트 디자인을 총괄했다. 허정필 미술감독을 통해 방송 미술 속 세트 디자인 세계를 엿봤다.

Q. 그동안 맡았던 작품들을 소개해주세요.
허정필 미술감독(이하 허정필):
현재는 ‘조작’의 후속작인 ‘사랑의 온도’를 맡아 진행 중입니다. 그 외에는 ‘언니는 살아있다’, ‘낭만닥터 김사부’, ‘원티드’, ‘리멤버 아들의 전쟁’, ‘미세스캅’, ‘엔젤아이즈’, ‘냄새를 보는 소녀’, ‘호박꽃 순정’ 등을 맡았습니다. ‘주군의 태양’도 일부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Q. 여러 드라마를 해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
허정필:
일단 ‘사랑의 온도’는 제 기념비적인 작품이에요. 신승준 아트디렉터와 함께 하게 된 10번째 작품이거든요. 그것 말고 기억에 남는 건 ‘낭만닥터 김사부’예요. 디자이너 입장에서 메디컬 장르와 오래된 병원 느낌을 살리는 건 경험하기 쉽지만은 않은 장르니까요.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의 온도’도 공을 들인 세트여서 잘 나올 것 같아요(웃음).

▲허정필 미술감독이 세트 디자인을 맡아왔던 ‘낭만닥터 김사부’, ‘리멤버-아들의 전쟁’, ‘원티드’, ‘사랑의 온도’(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사진=SBS 캡처)
▲허정필 미술감독이 세트 디자인을 맡아왔던 ‘낭만닥터 김사부’, ‘리멤버-아들의 전쟁’, ‘원티드’, ‘사랑의 온도’(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사진=SBS 캡처)

Q. ‘언니는 살아있다’에는 다양한 세트가 나옵니다. 나대인의 집부터 구회장의 저택, 민들레의 집, 공룡그룹 내 루비화장품 사무실과 설기찬의 컨테이너 하우스, 김은향의 집 등 그 수 또한 많은데요. 세트마다 인물 캐릭터에 맞게 분위기나 색채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미리 구상했던 부분이 있다면요?
허정필:
보통은, 집을 구상하기 전에 시놉시스나 초기 대본을 받고 분석을 해야 하는데 ‘언니는 살아있다’의 경우 시놉시스를 받기 전에 미술 쪽 미팅이 이뤄졌어요. 촬영방식에 대한 논의를 하고, 주말드라마인 만큼 밝게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눴죠. 일단은 기본적인 집의 콘셉트는 작가가 먼저 잡아서 전달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대인(안내상 분)은 교감 선생님이니 집은 한옥마을로 가고, 구회장(손창민 분)은 큰 그룹의 회장이니 대저택으로, 민들레는 퇴물 여배우 캐릭터이니 고급 빌라나 타운 하우스로 이미지가 잡혔어요. 이런 걸 토대로 그림을 잡아가게 됐죠.

Q. 나대인 집은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특징적인 것 같습니다.
허정필:
일단 나대인의 집은 한옥이에요. 나대인 캐릭터가 짠돌이다 보니 집의 규모를 작게 만들었는데, 촬영을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공간이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실제 방송에 나가는 집은 굉장히 잘 사는 집의 한옥이에요. 대형 스튜디오 카메라가 들어가는 자리만 해도 최소공간이 4.5m 정도가 필요하거든요.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면 큰 집인 편이죠. 하지만 학교 교감선생님 캐릭터가 너무 어마어마한 집에 사는 건 조금 어색해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방의 개수를 줄이진 않고 마당을 조금 작게 보이도록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캐릭터 상 말도 많고 활발하며 경쾌한 성격이어서 보통 한옥집보다 채도와 색의 대비가 강하게 설정했어요. 나무는 더욱 광이 나도록 했죠.

Q. 나대인 집과 대비되게, 구회장의 집은 가구도 고풍스럽고 색채도 더 어두운 것 같아요. 디자인에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허정필:
구회장은 굉장히 차갑고 냉혈한 사업가 캐릭터로 설정돼 있었어요. 그런 사람의 집인 만큼 나대인 집과는 조금 다르게 흑과 백,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공존하도록 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부드럽겠지만, 사업가여서 딱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집에는 대리석과 나무 느낌, 시멘트와 돌 느낌이 섞여 있어요.

Q. 대저택인 만큼 가장 규모가 큰 세트인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 주력한 요소은 어떤 건가요.
허정필:
다른 세트와 차별을 둔 부분은 서재의 위치예요. 거실의 바로 뒤, 항상 구회장이 앉는 자리 뒤쪽에 위치해 있어요. 계단으로는 다섯 칸 정도 올라가있어서 이 집의 중심이 되는 구조예요. 위치를 통해 그 집에서의 구회장의 지위를 보여주려 했죠. 집안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어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서재를 지나게끔 배치했죠. 서열상으로 구회장보다 아래인 자녀들과 여동생이 구회장의 시야 밖에 벗어나면 안 되도록, 서재에서 구회장이 감시를 하거나 동선을 파악할 수 있게끔 서재를 중심부에 배치했어요. 사군자(김수미 분)의 방을 제외하곤 모든 이들의 방이 다 2층에 위치해 있거든요.

▲상반된 느낌을 주는 ‘언니는 살아있다’의 나대인 집(위), 구회장 집(사진=SBS ‘언니는 살아있다’ 캡처)
▲상반된 느낌을 주는 ‘언니는 살아있다’의 나대인 집(위), 구회장 집(사진=SBS ‘언니는 살아있다’ 캡처)

Q. 구세경-구세준 남매의 방에도 어떤 특징점이 있는 것 같아요. 색채가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편인데.
허정필:
색채도 그렇지만 일부러 구세경(손여은 분)과 구세준(조윤우 분)의 방을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붙여놓는 구조로 배치했어요. 둘의 사이가 좋아서가 아닌, 서로 등을 진 경쟁관계여서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서로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거죠. 이들의 방을 가르고 있는 벽은 각각 색을 다르게 썼어요. 세준이 방 쪽의 벽은 짙은 남색이고, 세경이 방은 밝은 회색 벽이에요. 모양이 같은 벽을 캐릭터에 맞게, 색만 다르게 해 갈등 관계를 보여주려 했는데 아쉽게도 세경이의 방 쪽 벽에 장롱이 배치돼 색깔이 많이 가려졌죠.

Q. 색깔의 부분도 일부러 설정을 한 건가요?
허정필:
기본적인 컬러는 저희가 콘셉트를 잡아요. 구세경은 레드, 구세준은 블루가 캐릭터의 포인트가 되는 컬러죠. 하지만 이걸 꼭 어느 하나에 지정해서 배치하기 보다는 캐릭터의 시간적, 장소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표현돼요. 세경이의 방에는 빨간색 그림이 있다던가 하는 거죠.

Q. 예를 더 들어본다면….
허정필:
세경이가 앉아있는 카페 밖으로 빨간색 차가 지나가도 되고, 빨간 우체통 옆에 세경이가 서있어도 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캐릭터에 저마다의 포인트 컬러가 있죠. 물론, 촬영이 빠듯해지면 이런 디테일이 가려지는 경우도 생겨요. 바쁜 스케줄에 세세한 부분까지 살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Q. 세트 디자인 업무에 대해서도 질문 하나 할게요. 사실 일반 대중이 아는 세트 디자인의 영역은 일부분에 국한돼 있어요. 초반에 기본적인 세트 메이킹을 마친 뒤에는 어떤 수정과정을 거치게 되나요?
허정필:
아무래도 처음 리허설을 할 때와는 또 다르게 카메라에 담기는 그림이 다른 경우가 많아요. 세트나 소품, 의상, 조명 등 다양하죠. 또, 도면 협의 후 3D프로그램을 통해 세트를 그려놔도 실제로 구현된 실물 세트는 느낌이 많이 달라요. 공간의 가로 폭이 넓거나 혹은 좁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천장이 높아 보일 수도 있는 거고요. 물론 다 수정을 할 수는 없지만 협의를 거쳐 고칠 부분은 고치게 돼요. 지금 맡고 있는 ‘사랑의 온도’도 카메라 리허설과 드라이 리허설을 거치면서 몇 가지 수정을 거쳤어요.

▲SBS 새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 스틸컷(사진=SBS)
▲SBS 새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 스틸컷(사진=SBS)

Q. 이미 작업한 결과물을 수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앞서 언급했던 서재의 위치처럼, 디자이너만의 생각이 포함된 부분을 고치는 건 아쉬움이 많이 따를 수밖에 없을 텐데.
허정필: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어요. 저희가 하는 일은 연출가가 요구하고 생각하는 공간과 가장 근접한 세트를 만들어주는 거니까요. 디자이너의 자부심과 예술 세계도 있겠지만, 순수 예술보다는 조금은 상업적인 방송 미술을 하는 거니만큼 작가의 의도와 연출가가 원하는 방향을 최대한 맞춰주는 게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물론, 디자이너의 생각과 의미가 담긴 결과물인 만큼 수정 전 연출가와 협의를 하죠. 하지만 저희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건 ‘만족’이기 때문에, 저는 자신의 그림을 해치지 않는 부분에서 연출가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정을 해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Q. 업무가 곧 ‘협의’의 연속이네요.
허정필:
맞아요. 그게 잘 안 되면 다음에 작품을 같이 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미술 관련자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잘 됐는지의 여부는 연출가와 카메라 감독님들의 의견이 굉장히 중요해요. 저희가 대중을 상대로 하는 미술인만큼 작가, 연출가의 의도가 우선인 거죠. 제가 이후에도 ‘언니는 살아있다’의 최영훈 감독님과 작품을 하게 된다면, 이번 작품의 협의가 잘 됐다는 의미일 것 같아요(웃음).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의를 못할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 개인이 중점을 둔 부분은 쉽사리 바꾸기 어려울 것 같은데.
허정필:
제겐 그 부분이 바로 서재의 위치였어요. 서재가 구회장 집의 중심이 되는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은 대리석 느낌이 아닌 목재 같은 소재를 썼어요. 돌 같은 느낌의 집에 짙은 밤색의 나무 느낌을 배치한 거예요.
그리고 최영훈 감독님께도 동선과 서재의 위치 등을 말씀드렸더니 좋다고 해주셨어요. 실제로도 세트를 보신 뒤 제 의도를 이해해주셨죠. 제가 엉뚱한 걸 고집한다면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지만, 충분히 이해를 시킬 수 있을 만한 논리적인 제 의도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렇게 절대적으로 포기할 수 있는 부분 외에 다른 부분은 어떤 거라도 수정이 가능한 쪽으로 협의를 하거나 하고 있어요.

Q. 민들레의 집은 어떤 느낌으로 고안을 해낸 건가요?
허정필:
민들레 집은 분당의 타운하우스가 배경이에요. 그래서 집도 복층 형태가 됐죠. 외경에 맞게 세트 디자인을 하는 게 순서라 생각하거든요. 원래의 집은 거실의 천고가 높았는데, 세트로 활용하기 좋게 부엌만 천고를 높게 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조금 아쉬운 결과물이에요. 철이 안든 퇴물 여배우 캐릭터여서 알록달록한 벽지와 다양한 컬러를 쓰려고 했는데, 제가 다 소화를 못했거든요. 그 부분이 너무 아쉬워요.

Q. 이제 새롭게 ‘사랑의 온도’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사랑의 온도’에서는 어떤 느낌을 살리고자 했는지 살짝 소개해주세요.
허정필:
시놉시스를 본 뒤 연출가 미팅을 가졌는데, 미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장르물도 아니고 극단적인 상황이 나오는 것도 아닌, 잔잔한 두 남녀주인공의 감정 멜로니까요. 그래서 화면을 집중적으로 보게 되니 세트의 디테일을 많이 강조하시더라고요. 실제 집 같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많이 나왔어요. 촬영할 때 조금 불편하더라도 실제 같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하셔서 섬세한 디테일 묘사에 많이 신경썼어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배경을 볼 수 있을 거예요(웃음).(인터뷰 ②로 이어집니다)

김예슬 기자 yey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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