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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콘]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한스 짐머가 부린 마법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슬로우라이프 슬로우라이브'(사진=프라이빗커브)
▲'슬로우라이프 슬로우라이브'(사진=프라이빗커브)

영화 ‘라이언 킹’의 OST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를 부른 뮤지션 레보 엠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한스 짐머를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세차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적 망명자였다. 한스 짐머는 자신의 투어 공연에서 레보 엠을 소개할 때마다 “진짜 ‘라이언 킹’”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단순히 그의 출신이나 이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그의 출신과 이력을 한 데 품은 레보 엠의 영혼이 그의 노래 안에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리라.

길고 긴 추석 연휴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던 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는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SLOW LIFE SLOW LIVE 2017, 이하 슬로슬라)’가 열렸다. 매해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프라이빗커브가 올해 처음 선보이는 페스티벌로, ‘여유로운 삶의 발견’을 테마로 한다. 올해는 영화 음악 감독 한스 짐머와 저스틴 허위츠가 출연해 프로그램을 꾸몄다.

▲저스틴 허위츠가 지휘하는 '라라랜드' 필름 콘서트(사진=프라이빗커브)
▲저스틴 허위츠가 지휘하는 '라라랜드' 필름 콘서트(사진=프라이빗커브)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토크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공연이 막을 열었다. 저스틴 허위츠는 이날 오후 4시 30분 경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마주했다. 프로그램은 저스틴 허위츠가 음악 감독을 맡은 영화 ‘라라랜드’ 상영에 맞춰 스페셜 밴드·디토 오케스트라가 OST를 연주하는 필름 콘서트 형태로 꾸려졌다. 상영 초반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배우들의 노래와 무대 위 연주자들의 실연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소리는 이내 균형을 찾았다.

극 중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이 연주하던 피아노는 물론이고,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서는 제 소리를 마음껏 내지 못했던 콘트라베이스가 신이 나서 매력을 뽐냈다. 은근하고 달콤하게 귓가를 간질이다가도 리드미컬하게 현을 퉁기며 관객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허위츠가 리트머스 종이처럼 장내를 물들였다면 짐머는 순식간에 관객을 빨아들였다. 음악으로 마법을 부렸다. 음악 안에서 텍스트를 발굴해내는 것이 나의 일 중 하나이지만 종종 음악의 위대함 앞에 무력해지는 때가 있는데, 이날 본 한스 짐머의 공연이 그랬다. 연주자가 악기를 도구 삼아 음악을 들려주는 것인지 악기가 연주자를 도구 삼아 제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인지 구분이 희미해졌다.

▲한스 짐머(사진=프라이빗커브)
▲한스 짐머(사진=프라이빗커브)

한스 짐머의 공연은 10여 분의 인터미션을 두고 1막과 2막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막은 짐머가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isy)’의 테마곡을 피아노로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좋은 밤입니다. 여러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넨 짐머는 자신이 직접 선별한 19인조 밴드를 한 명 한 명 소개하며 공연을 이어갔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기는 것은 제게 언제나 중요한 일입니다”라던 한스 짐머의 말을, 악기 모두가 착실히 따르는 것 같았다. 1부 공연에서 연주된 모든 노래가 연주자의 회고록처럼, 악기들이 나누는 영적인 대화처럼 들렸다. 모두들 당당하고 장엄했다. 거스리 고반의 기타가 들려주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 테마곡은 고단할지언정 스스로에게 떳떳한 어느 여행자의 이야기 같았고 첼리스트 티나 구오가 연주하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테마곡은 위풍당당한 선장의 무용담 같았다. 그리고 레보 엠. 레보 엠과 그의 딸 레피가 함께 부른 ‘서클 오브 라이프’는 그들의 삶과 영혼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평화로우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첼리스트 티나 구오(사진=프라이빗커브)
▲첼리스트 티나 구오(사진=프라이빗커브)

2막에서는 악기들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한층 웅장했다. 영화 ‘천사와 악마’, ‘맨 오브 스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인터스텔라’ 등 블록버스터 작품의 테마곡 연주가 이어졌다. 고반의 기타 속주는 어느 현악기보다 부드럽고 섬세한 소리를 들려줬고 구오의 첼로는 가장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순간 가장 매혹적으로 변했다. 한스 짐머는 마계로, 전쟁터로, 우주로 관객들을 데려갔다.

영화 ‘다크나이트’ 테마곡 무대에는 배우 이병헌이 깜짝 등장해 노래에 얽힌 한스 짐머의 이야기를 대신 들려줬다. 조커 역을 연기한 배우 히스레저의 자살, ‘다크나이즈 라이즈’ 상영 도중 벌어졌던 총격 사고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합창단 친구들에게 전화해 가사가 없이도 바다 건너 유가족들에게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노래를 하자고 제안했고, 그 곡이 바로 지금 여러분이 듣고 계신 겁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힌 노랫말과 스산한 목관악기의 연주가 그제야 장송곡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공연장을 빠져 나가는 길, 오늘이 내게 역사적인 하루로 기록될 것 같다는 직감과 함께 프라이빗 커브가 꽤나 엄청난 일을 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로슬라’의 첫 경험이 너무나 황홀해 다음 공연 또한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힘들고 고되어도, 또한 자주 한계에 부딪혀도, 내년까지 가요 기자로 일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역시, 음악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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