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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칼럼] '비극의 역사'를 다룬 영화, 왜 지금 대세일까

[김동하 교수]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사진=CJ E&M)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사진=CJ E&M)

'남한산성', '아이캔스피크', '대장 김창수', '택시운전사', '군함도', '박열', '재심', '대립군', '보통사람' 등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대작들은 공통점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미래 가상세계를 주된 소재로 하고 있다면, 한국 영화들은 대부분 가슴 아픈 역사와 인물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최근 개봉한 '남한산성'은 중국과의 치욕의 역사를, '군함도', '아이캔스피크', '대장 김창수', '박열', '대립군' 등은 일본과의 비극적 사건들을 소재로 다뤘다. '택시운전사', '보통사람', '재심', '브이아이피' 등은 한반도 내의 비극의 역사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비극의 역사는 최근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도 눈에 띄게 다뤄지고 있다. '김광석', '공범자들', '노무현입니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 등 모두 가까운 과거의 아픈 사건들을 취재하고 편집해 제작됐다.

반면, 할리우드 영화는 어떤가. 올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한 '스파이더맨', '분노의 질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미이라', '스파이더맨', '킹스맨 골든서클', '트랜스포머' 등 대부분이 미래 가상 현실에서의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현재 상영 중인 '블레이드 러너 2049', '지오스톰'도 미래 가상현실을 그리고 있고, '토르3' 역시 역사와는 무관한 미래 전투 이야기다.

할리우드는 대규모 자본을 투하한 컴퓨터 그래픽이 가능하고 우리는 그렇지 않아서일까? 한국 영화의 질적 수준으로 보나,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블록버스터의 후반작업에 많이 참여하는 걸 보면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시선과 시점에 있어서 한국과 할리우드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 영화들이 과거와 현재 사이를 바라보고 있다면, 할리우드 영화는 대부분 현재와 미래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수입된 영화들은 또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 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께' 등 최근 수입된 영화 제목만 봐도 일본 영화의 시선은 과거와 미래, 나와 너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얼마 전 일본 로맨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성공에서 보다시피, 한국 로맨스물이 부진한 틈을 일본의 달달한 로맨스물들이 메우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흥행은 어땠을까. 비극의 역사를 다룬 대작 영화 중 '택시운전사'는 올해 유일하게 1000만을 넘기며 박스 오피스 1위(1218만6198명)를 차지했고, '박열'도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하지만 '군함도'와 '남한산성'은 수익을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렀고, '대립군'과 '보통사람' 등은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올해 초 '공조'와 '더킹'을 시작으로 '범죄도시', '청년경찰', '보안관', '프리즌' 등과 같이 일부 잘 만들어진 오락 액션물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다른 장르의 영화들은 거의 흥행에서 소외되는 모습이다. 올해 '느와르 액션물'을 표방한 개봉작 중 '브이아이피'는 137만명에 머물렀고, '불한당'은 100만명, '리얼'은 50만명을 밑돌며 흥행에 참패했다. 웹툰 원작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주춤하긴 마찬가지. '장산범'은 130만 명에 만족해야했고, 최근 개봉한 '희생부활자'는 30만 명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정치라는 쉽지 않은 장르영화를 선보인 쇼박스의 '특별시민'은 촛불 대선시기에 정교하게 맞물려 개봉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영화 <박열>의 장면(박미령 동년기자)
▲영화 <박열>의 장면(박미령 동년기자)

요컨대, 올해 한국 영화의 주된 트렌드는 역사적 비극이요, 성공한 영화는 하나 같이 전형적인 오락 액션물이다. 영화계에 오래 몸담은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트렌드의 배경으로 한국 관객 특유의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성향을 꼽는다. 역사적 사건에 기초할 경우, 비록 창작물일지라도 고증이 불가피하고, 매서운 검증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웹툰 소재 영화의 경우에도 원작과 방향이 다를 경우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 쉽다. 많은 관객들이 현실성하고는 아예 담을 쌓은 할리우드 영화는 눈요기의 퀄리티에 집중하면서, 한국사를 다룬 영화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과 호불호의 극단적 수용태세를 드러내고 있다. 적폐 청산의 의지가 작품에도 반영되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표출돼야 할 역사적 울분이 많이 남아 있는 우리 사회가 아픔을 털어내는 긍정적 해소과정으로 보고 싶다.

하지만 비극의 역사에 놓인 고통 받는 사람들, 또는 폭력으로 악당을 때려잡는 영웅물을 제외하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소비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나리오가 쓰여지고 캐스팅, 촬영, 후반작업, 마케팅, 배급까지 최소 2~3년은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한 동안은 이런 트렌드의 역사물 제작이 계속될 것 같다.

당장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중에도 '1987', '안시성' 등의 블록버스터급 대작이 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역사를 다룬 좋은 시나리오, 좋은 배우, 좋은 감독으로 중무장한 대작들도 흥행을 전혀 보장할 수 없는 세상이 돼 버렸다. 주지할 점은 올해 한국영화 전체적인 흥행 스코어가 최근 몇 년간의 호황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이다. 2014, 2015년 각각 두 편씩 배출했던 국산 '천만 영화'는 지난해와 올해 1편씩으로 줄었지만, 영화의 제작비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저 예산의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잘 만들어지고 잘 소비되는 선 순환 구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또 다시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올 지 모를 일이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동하 교수 2nomd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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