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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글로벌 특선다큐' 현충일 특집-한국전쟁 1부. 공산주의를 만나다

[비즈엔터 홍지훈 기자]

▲EBS '글로벌 특선다큐' (사진제공=EBS)
▲EBS '글로벌 특선다큐' (사진제공=EBS)
EBS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 전쟁의 역사와 의미를 다룬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2부작을 현충일 특집으로 '글로벌 특선다큐'에서 방송한다.

‘한국전쟁’은 희귀하고 생생한 당시의 자료 영상과 전문가의 인터뷰를 담아 전쟁을 경험하지 않는 전후 세대들도 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더욱 멀게 느껴지는 북한과의 상호공존 및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한다.

▲EBS '글로벌 특선다큐' (사진제공=EBS)
▲EBS '글로벌 특선다큐' (사진제공=EBS)
6일 방송되는 ‘한국전쟁 – 공산주의를 만난다’(원제 : Bullet Points Ep.2 Korean War (Discovery)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념의 충돌이 낳은 결과와 한국 전쟁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바라본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땅에 불과했던 한국에 왜 미국에게 중요하게 됐는지, 한반도에 얼마나 큰 피해가 있었고, 오늘날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등을 살펴본다.

6.25 발발 전까지 미국에게 한국은 그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땅에 불과했다. 따라서 미국은 이전에 한국에 군사적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에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충돌로 현재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전쟁 발발 후, 초반에는 북한군의 거침없는 남하가 이어졌다. 이에 미국은 서둘러 주일 미군을 파견하고 UN군을 이끌며 한국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미 대통령 트루먼은 재빨리 UN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맥아더를 UN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여 주일 미군 400명을 파견했다. 한반도가 공산권에 넘어가면 극동에서 미국의 지위가 불안해지기 때문이었다.

▲EBS '글로벌 특선다큐' (사진제공=EBS)
▲EBS '글로벌 특선다큐' (사진제공=EBS)
1950년 7월 5일, 미군은 북한군과 처음으로 오산에서 맞붙었고, 이후 대전 전투로 남하 속도를 늦추게 된다.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해 부산을 지키며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을 시작, 서울 수복 후에는 북진을 계속해 압록강 변까지 나아갔다. 이후 장진호, 미그앨리, 지평리전투 등 전쟁은 계속되었다. 미군은 한국전쟁에 연인원 180만 명을 파병해 3만 6천 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고 한반도는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의 1/5이 피해를 입으며 남의 일처럼 느껴지던 냉전의 영향을 직격타로 맞는다. 작은 땅에서 일어난 이념의 충돌이 낳은 결과는 실로 참혹했다.

결국 전쟁은 끝이 아닌 휴전에 들어갔고 미국은 2차 대전 같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자유세계의 수호자임을 과시할 수 있게 된다. 분단 이후 남한, 대한민국은 쓰린 전쟁의 기억을 딛고 일어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세계에 우뚝 선 눈부신 발전의 대표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한국 전쟁으로 어떻게 세계의 형세가 바뀌었는지 그리고 한국 전쟁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홍지훈 기자 hjh@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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