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홍선화 기자]
25일 방송된 KBS1 '역사저널 그날–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라 1·21 청와대 습격 사건'에서는 북한 124군부대의 31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침투사건을 재조명했다.
1968년 1월 21일, 전국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한다. 31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것. 31명 중 유일하게 투항한 북한 특수부대원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러 왔다'며 침투 목적을 밝힌다. 잦은 도발과 공격으로 남북 간 갈등과 반목이 극심했던 1960년대 말의 한반도 상황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청와대 습격을 위해 선발된 31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빠른 속도로 청와대 앞 500m까지 침투한다. 그들이 메고 내려온 군장은 무려 20kg였다. 그 속에는 트렌치코트, 양복, 운동화 등 다양한 내용물이 들어있다. 그중 오징어와 엿의 용도는 무엇일까. 제작진이 당시 유일한 투항자였던 김신조 (現 원로목사)를 만났다. 작전 수행 중 만난 민간인 우씨 4형제와의 만남부터 투항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까지 들어본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후 한,미,일의 공조 체제는 강화되지만 사회주의 진영은 갈등을 빚고 있어 북한의 위기감이 고조된다. 베트남 전쟁 중이던 미국이 한반도에 또 하나의 전쟁터를 만들 것이라 생각한 북한의 오판과 북베트남의 호찌민을 돕기 위해 무력 도발을 시도한 김일성을 통해 당시의 국제 정세와 한반도 안보 위기를 살펴본다.
청와대 습격 사건 이틀 후, 동해상에서 미국의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해군에게 나포된다.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한 것은 영해 침범 사실 인정과 사과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과 협상에 나선 미국에게 1·21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아달라고 요구하지만 미국은 거부한다. 미국의 대응에 크게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 과연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분노를 어떻게 잠재웠을까?
◆1·21 사태가 남긴 것
1·21사태는 대한민국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 대표적인 예가 250만 명의 향토예비군 창설이다. 그 밖에 1·21 사태 여파로 생긴 변화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