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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환 일병 구출작전 45년 만의 귀가 '죽은 자의 생존 신고'(꼬리에꼬리를무는 그날이야기)

[비즈엔터 맹선미 기자]

▲'꼬꼬무'(사진제공=SBS)
▲'꼬꼬무'(사진제공=SBS)
국군포로 장무환 씨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 소개됐다.

최근 방송된 SBS '꼬꼬무'의 10번째 이야기 '45년 만의 귀가 : 죽은 자의 생존 신고'에서는 4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장무환 씨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1998년 8월, 제철소 중장비 기사로 일하는 장영욱 씨에게 의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처음 듣는 목소리의 중국 교포다. 도청 위험이 있으니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장영욱 씨의 신상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를 데리고 있다라며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면 일주일 내로 중국으로 오라고 말했다. 이어 전화를 넘겨받은 남성은 본인이 아버지라며 일주일 내로 자신을 꼭 구하러 와달라고 당부했다.

장영욱 씨의 아버지인 장무환 씨는 45년 전 이미 사망한 사람. 이에 가족들은 45년 동안 꼬박꼬박 제사도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영욱 씨는 사촌 형에게 아버지가 맞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고민 끝에 장영욱 씨는 어머니와 함께 그 남자를 찾아 중국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두만강 국경마을의 한 허름한 주택이었다.그리고 노쇠해 보이는 72세의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놀랍게도 사망한줄 알았던 아버지 ‘장무환’은 살아있었다.

장무환 씨는 가족들에게 지금까지 자신의 행적을 공개했다. 지난 45년간 북한에 갇혀있다가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왔다는 것. 그는 목숨을 걸고 죽기 전에 고향에 가서 가족들과 아내, 아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두만강을 건너 중국 국경 마을에 숨어들었던 것이다.

장무환 씨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부인 박순남 씨였다. 그녀는 23살의 젊은 나이에 홀로 남겨져 돌도 안 된 아들을 억척스럽게 키우며 살아왔다. 그렇게 45년의 세월이 흘러 만난 남편 앞에서 아내 순남 씨는 40분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아내는 긴 시간 침묵하다 힘겹게 입을 열어 북에 아내와 자식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장무환 씨는 북한에서 결혼은 했지만 자식은 없었다고 했고, 이에 아내는 그제야 미소를 되찾고 살아 돌아온 남편을 살갑게 대했다.

만남의 기쁨도 잠시, 장무환 씨를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미 사망자로 처리된 탈북자를 데리고 나오는 일은 시작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결국 가족들은 중국 공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비밀스럽고도 치밀한 작전을 세웠다. 일명 '장무환 구출 작전'이었다.

장무환 씨는 주중 대사관에 연락을 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한숨과 도와줄 수 없다는 것뿐. 믿기 힘든 조국의 거절에 장무환 씨와 가족들은 절망했다.

이어 기차를 타고 항구가 있는 도시로 가서 배에 올라 인천으로 가는 방법을 생각했다. 첫 번째 관문은 은신처를 벗어나는 것. 그런데 갑자기 은신처의 집주인이 장무환 씨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만 달러(당시 한화 1400만 원의 가치)를 내놓지 않으면 공안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고 가족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돈을 지불하고 탈출을 감행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차역에 도착했고 기차에 무사히 오른 장무환 씨는 18시간이라는 장거리 여행에 그간 북한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털어놓았다.

국군포로로 북한으로 끌려간 장무환씨는 아오지 탄광으로 향해 60세까지 노역을 치렀다. 겨울 기온은 기본이 영하 30도, 옷 한 벌로 사계절을 나고, 먹을 것도 제대로 없어 쥐를 잡아먹는 병사도 있고 산에서 아무거나 뜯어먹다가 급사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항구도시로 향한 장무환 씨. 하지만 인천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필요한 여권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들과 조카는 여권을 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각 부처를 돌아다녔으나 정부의 대답은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무환은 북한 주민이므로 그의 입국에 정부가 도움을 주는 것은 자칫하면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며 가족들이 알아서 처리하라 일렀다. 그런데 의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은밀하게 장무환의 여권을 건냈다. 가족들이나 취재진은 아직도 그 남자의 정처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여권을 들고 중국으로 간 조카는 삼촌과 함께 배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 심사를 마쳤고 그렇게 북한에서 탈 줄 한지 50여 일만, 한국을 떠난 지 45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는 입국 이후 신분 복원을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또한 면역식을 통해 45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맹선미 기자 msm@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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