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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대기자의 '스타 메모리'] '예정된 시간을 위해' 장덕의 장례식 ②

[비즈엔터 홍성규 기자]

▲故 장덕(사진제공=루비레코드)
▲故 장덕(사진제공=루비레코드)

①에서 계속

다음날 이미 고인이 된 장덕을 문상할 겸, 간밤에 있었던 기묘한 일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사진기자까지 대동하고 다시 찾아갔다. 빈소로 들어서서 고인에게 조문을 하고 돌아서는데, 어떤 여성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당신이 장덕 자살이라고 기사 쓴 기자냐”라며 “자살 오보를 쓰고 어딜 뻔뻔하게 문상 왔느냐”라도 했다. 나는 “본의가 아니었다”고 미안함을 표했다.

매니저 김철한도 나서서, “홍 기자님 책임이 아니다”라고 만류했다. 그 여성은 그래도 막무가내로 계속 정정보도 내라고 난리를 쳤다.

이때 도인 같아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다가오셔서 “기자님들”이냐며 “방으로 들어가서 차 한잔하자”고 했다. 이 사람이 바로 장덕, 즉 ‘현이와 덕이’의 아버지 장규상 씨였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꽤 유명한 첼리스트였다. 연세대학교 음대를 수석 졸업하고,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씨의 수제자로, 일설에 의하면 한국전쟁당시 명품 첼로 한 대 들고 다니며, 전쟁터에서 위문 공연을 다녀 외신에도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재미 서양화가였는데, 결국 두 분의 예술성을 ‘현이와 덕이’남매가 물려받은 것 같다.

▲故 장덕(사진제공=루비레코드)
▲故 장덕(사진제공=루비레코드)

장규상 선생은 차를 마시면서, 자신은 “이제 ‘뿐 선생’이라고 불러 달라”면서 “이젠 다 버리고, 인생 마지막으로 ‘뿐철학’이라는 도(道)에 심취해있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허상이고, 실상은 마음뿐이다. 모든 사물에도 말은 안 하지만, 다 마음이 있으니,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울 때도 그 사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접해야 한다’고 했다.

장규상 선생은 간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소상히 설명했다. 딸 장덕이 병원에서 사망 진단을 받고 집으로 왔지만, 당시 영혼은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전국에 있는 도인들을 급히 불러 모았고, 밤을 새워 장덕의 영혼과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었다.

반나절 이상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고 하니, ‘뿐 선생’은 ‘뿐철학’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면 자세히 알려줄 테니,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장규상 선생은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고, 이후 계속 ‘뿐철학’에 정진하다가, 1996년 향년 67세의 나이에 별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는 ‘자유의 세계로 떠난다. 좀 더 사랑을 전해 주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용서해 달라’는 말을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과연 장덕의 아버지는 딸이 떠나간 자유로운 세상으로 갔을까. 세상은 이분에 대해 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이해타산 없이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만은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故 장덕(사진제공=루비레코드)
▲故 장덕(사진제공=루비레코드)

이 인터뷰 기사는 일간스포츠 프론트 페이지 기획기사로 한 페이지 다 실렸다. 이후 모 여성월간지에서는 뿐선생을 인터뷰도 못하고, 기사를 거의 그대로 베껴 쓰기도 했다.

장덕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가수와 연예인들이 찾아왔다. 친오빠처럼 친하게 지내던 의리의 가수 임지훈이 연신 눈물을 닦으며, 주차 봉사를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장덕이 죽기 한 해전 마치 죽음을 예견하듯 남긴 유작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후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이 발매되었고, 매니저 김철한 씨는 자신이 죽기 전 장덕 오마주 앨범을 제작했다. 최근에는 그가 남기고 간 미발표곡들과 비운의 스토리들을 묶어, 영화로 만들고자 하는 재조명 움직임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 장덕은 결코 ‘자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알리고 싶다.

당시 연합통신의 1보 전송 기사를 보고, 성급하게 ‘가수 장덕 자살’이라는 1면 톱기사로 보도되어, 정신적 피해를 입었던 유족들에 대해 뒤늦게 사과를 드린다.

장덕은 본 기자에게조차 많은 곡을 쓸 테니, 곡을 팔아달라고 부탁했을 만큼 삶에 대한 의지가 많았었던 가수였고, 이를 반증하듯 당시 여러 동료 가수들의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단지 장덕은 설암에 걸린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하고 있었고, 생업을 이어 가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겹쳐, 잠이라도 편안히 자기 위해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여러 가지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한 것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됐다.

홍성규 기자 skhong@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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