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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배우 박종환, 어느새, 스며들어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배우 박종환(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배우 박종환(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그러고 보니, 어디를 가든 그가 있었다. 웹 드라마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작품(‘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도, 입소문을 타고 주목받은 독립영화(‘잉투기’ ‘오늘영화-백역사’)에도, 전국 천만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은 상업영화(‘베테랑’ ‘검사외전’)에도, 그리고 광고 완판을 기록할 정도로 떠들썩했던 주말드라마(‘프로듀사’)에도 박종환이 있었다. 배우에게 변신은 숙명이라지만, 이토록 다양한 매체와 장르와 배역을 널뛰기하며 홍길동처럼 둔갑하는 배우도 분명 드물다. 그래서일까. 독립영화 ‘양치기들’로 돌아온 박종환을 만나러 가는 길. ‘스며들다’라는 단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조용히 다가와 우리 곁에 깊숙이 스며든 배우. 아마 박종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남몰래 스며들고 있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Q. 윤성호 감독의 단편영화 ‘백역사(2014)’에서의 당신을 잊을 수 없다. 가죽점퍼와 나팔바지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박종환: 그 나팔바지, 실제 내 옷이다.(웃음)

Q. 설마, 평소에도 즐겨 입는?
박종환: 이전에 즐겨 입었다.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Q 그때 남자 나팔바지가 유행이었나.
박종환: 유행은 아니었는데, 내가 당시(고등학생) 의상에 관심이 많았다. 친구들과의 공통 관심사가 그런 것들이었다. 우리에게 옷은 또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동재산이었다. 7명이 친했는데, 옷을 하나 사면 ‘돌려입기’를 했다.(웃음)

Q. 19금 비디오테이프나 만화책을 돌려본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는데, 옷 돌려입기는 생소하다.(웃음)
박종환: 우리가 조금 유별났다. 다들 관심이 공부 쪽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삶을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무리였다. 여자 친구 무제도 그랬다. 우린의 모토는 모두 함께 행복하자였다. 7명 모두가 행복하려면, 또 7명이 모여 있는 여자 분들을 만나야하는데 그게 확률적으로 쉽지 않지 않나. 그래서 더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열심히 돌아다녀야 한 팀이라도 더 만날 수 있으니까.(웃음)

(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Q. 그 무리들은 지금도 만나나.
박종환: 만난다. 한 친구는 얼마 전에 ‘양치기들’을 보러 왔다. 영화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 안 하고, 뒤풀이 자리에 와서 신나게 놀더라. 나는 먼저 가고, 그 친구는 술자리에 끝까지 남고.(일동웃음) ‘양치기들’ 김진황 감독을 비롯, 배우들과 친해져서 형-동생 하며 지내는 걸로 알고 있다.

Q.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당신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잘 해 주나.
박종환: 별 이야기 안 한다. 내가 나오는 작품을 찾아보긴 하려나. 그게 서운하다거나, 아쉽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린, 그게 더 자연스럽다. 그런 일도 있었다. 오래 전에 친구 한 놈이 코 성형을 하고 나타난 적이 있다.(웃음) 그런데, 끝까지 아무도 코에 대한 언급을 안 했다. 성형한 친구가 잠시 화장실 갔을 때 그런 이야기는 했다. “너, 봤지?” “응. 봤어” 그러곤, 끝.(일동폭소) 아무도 언급을 안 하니까, 성형한 친구가 오히려 안달이 나서 먼저 반응을 물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친구들이 좀 그렇다.

Q. 청춘을 함께 한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가. 배우 일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또래보다 조금 더 젊게 사는 느낌이 있지 않나.
박종환: 그런 게 있지.(웃음) 그런데 그게 직업 때문이라기보다는 결혼의 유무 같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긴 친구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아저씨가 됐다.

Q. 친구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만, ‘양치기들’ 이야기로 넘어가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양치기들’을 관통하는 소재는 거짓말이다. 최근에 한 거짓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박종환: 음. 딱히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너무 사소해서 인지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거짓말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그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받아들이자는 쪽이다.

Q. 그렇다면 연기는 어떤가. 연기라는 것 자체가 거짓말인데,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진정성 있는 연기’라는 말을 하곤 한다.
박종환: 맞다. 그 부분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연기가 거짓말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다가, ‘진짜 감정’ 혹은 내가 느끼는 감정 이면의 것을 더 끄집어내길 바라는 연출자를 만나면 벽에 부딪힌다. 그런 일을 겪으면 한동안 정체기에 빠져든다. 내가 표현하지 못한 감정에 더 집중하면서, 부담이 커지니까. 자신감도 떨어지고.

(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Q. 그런 시기가 언제 겪었나.
박종환: 매번 겪었던 것 같다. 매번 나 자신과 싸우고, 좌절하고, 극복했다가, 다시 고민하고 그런다.

Q. 배우가 원래 꿈이었나.
박종환: 처음에는 연출에 관심이 있었다. 서울예대 연출전공으로 들어갔는데, 다니면서 소질이 없음을 깨달았다. 동기들 사이에서 박탈감을 느꼈다. 재능도, 책임감도 부족해 보이는 내가 부끄러웠다.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래를 고민했는데, 고민하는 시간보다 영화 보는 시간이 더 길더라. 나라는 놈은 결국 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안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찾았는데, 그게 연기였다. 학교 과제로 영화를 찍을 때, 단역으로 연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재미를 조금 더 느껴보고 싶었다.

Q. 조금 더 과거로 가서, 연출에는 왜 관심을 뒀나.
박종환: 군대에 있을 때 영화 연출을 준비하는 고참을 만났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고참이었는데, 그분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그 고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영화라는 건 저런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거구나.’ 느낌이 좋았다. 마침 고참이 영화 관련 수업을 해 주셨다. 세계 영화사, 조명 다루는 법 등을 배웠는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고참 덕분에 영화에 관심이 생긴 거다.

Q. 그 고참은 지금 영화판에 있나.
박종환: 제대 후에 연락이 끊겼다. 작품을 준비하다가 잘 안 됐다는 소문만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모 촬영 현장에 놀러갔다가, 투자사 직원 분을 통해 우연히 그 분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제작사에서 영화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너무 반갑더라. 조만간 찾아뵐 생각이다.

Q. 벌써 연기 8년차다. 연출이 본인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자퇴까지 감행한 입장에서, 연기의 어떤 면이 8년이라는 시간을 달리게 했나.
박종환: 내가 연출자 복이 있다. 운 좋게도 함께 작업했던 연출자분들이 “난, 네가 계속 영화를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런 말씀을 해 주셨던 분들이 영화를 그만 두지 않고 있다는 거고. 그게 나에겐 엄청난 힘이 된다. 나와 비슷한 응원을 받은 배우들은 주변에 많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해 준 연출자가 계속 영화를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Q.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출출한 여자’ ‘오늘영화’ 등 윤성호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인상적인 결과물을 보여줬다. 본격적인 상업영화에 들어온 건, ‘베테랑’을 통해서고.
박종환: 첫 상업영화는 ‘고지전’이다. 화기부소대장이라는 단역이었는데, 수많은 군인들 사이에 묻혀서 안 보인다. 개봉 당시 친구들로부터 “환불해 달라”고 “너 찾다가 영화 내용 뭔지도 모르겠다”는 항의를 받았다.(웃음) 촬영분량도 그렇고, ‘고지전’은 멀찍이 떨어져서 현장을 바라보는 느낌이 강했다. 처음으로 참여자라는 느낌을 갖게 된 상업영화가 ‘베테랑’이다.

Q. 참여자라는 느낌을 가지고 임한 ‘베테랑’ 현장은 어땠나.
박종환: 류승완 감독님은 연출방향이 명확하게 있으신 분이다. 감독님 현장을 겪으며 배우에겐 그만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나는, 현장에서 나를 어필하는 걸 많이 민망해 하는 스타일이다. 너무 민망해하니까 감독님이 “괜찮으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격려를 많이 해 주셨는데, 부담감에 위축이 많이 됐다. 괜히 폐를 끼치고 있는 게 아닌가, 죄송스러웠다. 부담감 때문에 내겐 어려운 현장이었다.

Q. ‘베테랑’ 이후 ‘검사외전’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조금 더 넓혔다. 드라마 ‘프로듀사’에도 출연했고, 이번엔 ‘양치기들’로 영화의 중심에 섰다. 박종환의 파이가 점점 넓어지는 느낌이다.
박종환: 배우로서 희망적인 뭔가가 보인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아직까지는 내가 시장성이 확보된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날 걱정하는 주변 분들에게 조금의 안정이나마 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건 좋다. 어머니도 그렇고, 할머니도 그렇고 내 걱정을 많이 하신다. 특히 내가 다양성 영화 쪽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어른들 입장에서는 ‘연기를 한다고는 하는데, 뭘 하는 거지’ 싶으셨던 것 같다. 아직 보여드려야 할 게 많다.

Q. 캐릭터 하나 잘 만나면 대박이 터지는 게, 이 바닥이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박종환이라는 배우의 5년 후가 기대된다. 당신의 연기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박종환: 안 그래도 사주를 봤다.(웃음) 어머니 때문에 봤는데, 덕분에 잘 풀리고 있는 느낌도 든다. 재작년부터 일이 조금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사주를 봤거든. 사주에서 ‘수수팥단지’를 바다나 강에 가서 뿌리라고 하더라. 강 앞에 내가 쭈그려 앉아 있으면, 어머니가 내 머리 위로 그걸 던지는 거다. 나이만큼 던져야 하는데, 서른 셋 부터 했으니 어머니가 서른세 번을 던지셔야 했다. 주위에서는 다들 낚시를 하고 있는데, 내 머리 위로는 팥이 우수수 막 떨어지고.(일동폭소) 엄마 쪽을 보고 앉아 있다가, 너무 민망해서 강 쪽으로 돌려 앉고 그랬다. 그 와중에 저희 어머니는 너무 진지하게 던지시고. 그런데, 그 기운이 있다고 어머니가 믿으시는 것 같다. 지금은…나도 어느 정도 믿게 됐다. 올해도 갈 예정이다.(웃음)

Q. 먼가, 절실함이 느껴진다.(웃음) 그러고 보니, ‘검사외전’을 중요한 시기에 잘 만난 느낌이다. ‘검사외전’에서 연기한 천식환자 이진석은 사건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박종환: ‘검사외전’ 때는 주위 분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 정말 다양한 분들의 연락을 받았는데, 영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매개가 되는구나, 새삼 까달았다.

(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사진=권영탕 객원기자(sorrowkyt@))

Q. ‘검사외전’이 설날에 개봉을 해서 가족들에게 큰 효도가 됐겠다 싶다.
박종환: 그런데 어머니는 속상하셨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진짜로 천식을 앓았었거든. 가습기를 안 틀어두면 숨을 ‘쉑쉑’ 거리곤 했다. 영화가 끝난 후 어머니 표정이 안 좋아서 물어보니, 그때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

Q. 주연배우로서 ‘양치기들’ GV를 꽤 많이 한 것으로 안다. 어떤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나.
박종환: 완주(박종환)와의 싱크로율을 많이들 물어보더라. 저와 완주가 얼마나 닮았는지.

Q. 그에 대한 답은?
박종환: 완주 같은 사건은 겪지 않았지만, 성격적으로 비슷한 부분들이 있다. 나는 완주가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봤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남자, 과거의 소중했던 무엇인가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 남자로. 그런 부분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나 역시 최근에 뭔가를 놓치고 가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많이 한다.

Q. 어떤 걸 놓치고 가는 것 같나.
박종환: 전화번호부에 저장되는 연락처는 많아지고 있는데, 연락하는 횟수는 오히려 뜸해지고 있다. 시간 장소 불문하고 편하게 만났던 사람들과도 이전처럼 그러기가 쉽지 않고. 그런 것만 봐도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많다는 걸 느낀다. 내가 시간을 집중해서 쓰는 스타일이 못 된다. 가령 내일 촬영이 있으면 그에 대한 부담으로 밖을 나가지 못한다. 아마 그런 내 상황을 모르면 서운해 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결론적으로 내 성향 탓이니 할 말은 없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Q.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한 느낌이다. 반성과 자책도 많이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이걸로 하고 싶다. 당신이 느끼는 당신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박종환: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혹은 팬이 된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위대한 배우들이라고 해서, 굉장히 자신에 차서 연기를 하는 것만은 아닐 거란 생각을. 그럼에도 그들이 그려내는 인물을 보고 누군가는 용기를 얻는다. 그걸 보면서 내가 부족하고 자신감이 크지 않더라도, 나 역시 누군가에겐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이 내 나름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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