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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①]‘부산행’을 세 번 봤다. 영화는 매번 달랐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부산행’을 처음 봤다. 그때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공유가 연기한 석우의 감정에 집중했고, 그래서 사실 영화가 많이 아쉬웠다. 100억 원 대 제작비의 영화를 이끌어야 할 주인공의 감정 선이 지나치게 납작하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끼어든 석우의 과거 회상씬, 그러니까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그려진 플래시백에선 주인공에 대한 감독의 배려가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았다. 딸을 지켜내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석우의 부성애가 영화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이긴 하나, 저렇게까지 도식적인 방법으로 감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감독 연상호라는 이름에서 오는 거대한 기대감도 아쉬움을 키우는데 한몫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에서 독창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선보인 연상호 감독이다. ‘선과 악’ ‘믿음과 불신’의 경계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던 연상호 감독을 떠올렸을 때, ‘부산행’의 평면적 캐릭터와 몇몇 최루적 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다. 본격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서 작가적 야심을 누른 게 아닌가란 아쉬움이 따랐던 게 사실이다.

두 달이 지나고 국내 언론시사회에서 ‘부산행’을 다시 봤다. 그땐 이 영화가 지닌 장르적 재미가 크게 다가왔고, 그것이 내러티브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부산행’은 속도감이 상당한 영화다. 좀비의 실체를 일찍이 공개한 영화는, 신체훼손/신체변형 장면 등 ‘본격 좀비물’로서의 DNA를 거침없이 뿜어내며 내달린다. 치밀한 계산 하에 액션의 완급을 조율하고, 공간을 영리하게 활용한 덕에 작품 전반에 활력이 넘친다. 사지가 꿈틀대는 좀비의 모습을 구현한 CG와 분장도 수준급. 연상호 감독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좀비 이미지가 스크린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난 인상이었다.

무엇보다 ‘부산행’에는 마동석이라는, ‘캡틴 코리아’라 불러도 무방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대중이 기대하는 카타르시스를 온 몸으로 승화시키는 마동석의 위력은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른다. 배우 개인이 지닌 매력이, 특정 캐릭터를 만나 폭발한 경우로, 영화에게도 배우에게도 최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볼 수 있다.

결국 ‘부산행’은 장르적 클리셰로 인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여름용 블록버스터로서 관객을 만족시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사실 그러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부산행’은 무려 좀비물. 한국 관객이 킬러 콘텐츠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한데, 그런 의미에서 ’부산행’이 한국 장르영화의 보폭을 넓혔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부산행’을 다시 한 번 보게 됐다. 이번엔 ‘기차’가 은유하는 대한민국 사회가 눈에 들어왔다.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를 환기시킨다. 국가 재난 앞에서 정부가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무능함, 친구를 잃고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우는 고등학생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가 감지된다. 열차 안 풍경에 감정이입 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 사회가 그만큼 '후지다'는 것에 대한 탄식에서 기인할 것이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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