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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아수라’ 멱살 잡고 끌고간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에겐 꿈이 없었다…”(‘비트’ 오프닝 내레이션) 20년 전, ‘비트’의 열아홉 청춘 민이(정우성)는 오토바이 핸들을 잡아야 할 손을 하늘로 치켜든 채 눈을 감고 질주했다. 착지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궤도를 벗어나버린 청춘. 민이가 현실을 살아냈다면 어땠을까.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행복해졌을까. ‘아수라’는 이 물음에 대한 가장 비극적인 결말일 것이다. 청춘을 대변했던 아이콘 민이=정우성의 육체를 빌어 ‘아수라’의 한도경=정우성이 읊조린다.

“인간들이 싫어요…”(‘아수라’ 오프닝 내레이션) ‘아수라’는 말한다. 지금 이 사회는 발버둥 칠수록 빠져드는 칠흑의 늪이라고. 이곳엔 꿈이, 진짜 없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과, 뼛속까지 나쁜 놈만’이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 안남시.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하수인이다. 박성배의 구린 일을 뒤처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말기암 환자인 아내 병원비가 필요해서다. 가난이 면죄부는 될 수는 없다. 그는 이미 악과 손을 잡았다. 그 선택은 비극을 부른다. 한도경의 약점을 파고든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박성배를 엮을 증거를 가지로 오라고 한다. 검사가 압박해오고, 박성배가 충성을 요구한다. 졸지에 이 남자, 한도경. 현대판 ‘밀정’이 됐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오는 법. 박성배의 수하로 들여보낸 동생 같은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와의 관계에도 틈이 생긴다. 구질구질한 삶이다.

날것, 거친, 모진, 강렬한, 끝까지 가는…제목을 배반하지 않는 뜨겁고도 차가운 영화다. 악이 득실거리는 안남이라는 가상의 도시에 김성수 감독은 영웅주의를 소환할 생각이 없다. 지옥도로 멱살을 잡아끌고 갈 뿐이다. 영화는 결코 통쾌하지 않다. 음습하고 절망적이다.

이는 ‘아수라’라는 제목을 명징하게 새기며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태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불교의 오래된 6도 설화 중 하나인 ‘아수라도’에서 따온 ‘아수라’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의 세계. 그러니까 이 세계에는 선(善)이 기댈 구석이 없다. 빠져나갈 출구가 사방으로 막혀 있다. 환경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 파괴된 운명들만이 들끓는다. 내가 너의 등에 칼을 꽂지 않으며,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지 모르는 비정한 세상. 동정 따윈 없는 세계를 극대화 위해 감독은 ‘작정하고’ 관객들을 코너로 몰고 간다.

촬영/음악/액션/미술 모든 게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통증을 안기는 ‘아수라’는 확고하다. 통쾌함보다 통렬함이 목표점이다. 느와르 특유의 쾌감이나, 인물들의 멋들어진 액션을 기대하고 ‘아수라’와 마주한다면 당혹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선입관을 걷어내고 감독이 규정한 극단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강렬한 영화적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게 ‘아수라’이기도 하다.

아쉬움이라면 ‘강약조절’이다. 이로 인해 영화는 ‘액션의 과잉, 허세’라는 말로 공격받는 분위기이기도 한데, 열광하는 쪽이든 외면하는 쪽이든 영화 전반에 녹아 있는 음습한 기운의 기묘함과 다각도로 시도된 카메라 앵글, 치열하게 계산된 공간 활용, 빛과 어둠을 배합하는 솜씨에 대해서는 탄식할 만하다.

무엇보다 ‘아수라’에는 ‘저렇게까지, 가능해?’ 싶은 기획을 타협 없이 밀어붙인 만든 이들의 동력이 엿보인다. A급 배우들이 나락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아수라’를 만나는 건 일견 보기 드문 경험이기도 하다. ‘아수라’가 그리는 지옥은 비현실적이고 냉혹한가. 뉴스를 보라. 현실은 더 지독한 아수라장인 것을.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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